[독자의 소리/김종현] 靑민정수석 조국이 놓치고 있는 것들
[독자의 소리/김종현] 靑민정수석 조국이 놓치고 있는 것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현 독자
김종현 독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조국이 그의 페이스북에 2018년 일제의 징용 배상 대법원 최종 판결을 부정하거나 비난, 매도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므로, 이에 동조하는 한국 사람은 친일파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그가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결과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 3억불은 전쟁 범죄에 대한 배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법률적으로 배상과 보상의 차이를 언급하며, '배상'은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보상'은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인데,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도 한일협정 당시 받은 돈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었지 불법에 대한 배상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2012년 대법원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논리를 다시 상기시켰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청구권 인정 논리를 만들기 위해 첫째로는 일본 식민지배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들고, 둘째는 당시 징용자들이 일본 기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불법적인 것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미에, "'1965년 일본에서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는 류의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 근본적 문제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라고 하면서, 마치 자신의 논리가 엄밀한 법적 정당성을 갖는 것처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 면, 곧 역사 인식과 국제법상 몇 가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첫째, 그는 2차 대전 종전 협약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은 조약에 한국은 연합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조선은 식민지 과정에서 일본과 전쟁을 한 적이 없고, 또 식민지배 이후에도 일본에 대항해서 국가적인 투쟁을 벌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도 국제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단체였기 때문에 전후의 대한민국은 전쟁 배상을 받을 수 있었던 전승국의 지위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국제법상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 하에 있었다는 것이 정말 불법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적으로 강점한 불법적인 것으로 보지만, 보호조약에 대한 강제적 체결의 부당성 문제 제기는 피지배국의 입장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당시의 질서였다. 억울하면 무력으로 항전하여 방어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이미 영일동맹이나 가스라테프트 조약, 그리고 러일전쟁에 승리한 후 러시아와 체결한 조약 등에서 조선을 이미 국제적으로 일본의 관할에 둘 것임을 양해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조선이 불법적으로 일본에 강점되었음이 증명되려면, 이토 히로부미가 1905년에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인천 앞 바다에 발을 내디뎠을 때, 고종은 그를 환대하지 않고 조선 군대를 동원해서 저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면,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결사항전이라도 했었어야 했다.(을사조약 후, 황현이나 민영환 등 경향각지의 수많은 지사들이 자결한 것에 비추어 보면, 당시 외교권을 비롯한 국사의 최종결정권자였던 고종은 당연히 죽음을 각오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토 히로부미를 환대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보존(정확하게는 사직의 보존)에만 관심이 있었고, 조선이란 국가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그래서 조선후기 경제사를 연구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기본적으로 조선은 가산제 국가였다고 말한다. 즉, 조선은 왕족과 일부 양반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씨족 공동체이며, 성리학에 기반한 소중화로서의 사대주의적 부족국가였다.)

결국 사직의 보존이란 명분을 살려주기 위해 박제순이나 이완용 등이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 사이의 중재를 떠 맡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서 소위 을사오적으로 몰리자 5대신들은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당시의 쇠잔한 조선의 운명을 절규하였지만, 고종은 자신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고 5대신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발뺌을 했다. 그리고, 이후에 고종 자신은 조약의 최종 재가를 하지 않은 것처럼 의뭉스럽게 처신한 것은 입헌군주제를 외면하고 제왕적 군주제를 고집했던 고종의 이율배반적 행태였다.(이후에 고종과 왕실은 일본의 왕공족으로 봉하여져서 일본 왕실의 녹을 받지 않았는가. 오늘날 역사가들이 소위 을사오적의 상소문과 이에 대한 고종의 반응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고, 조선패망의 원인을 마치 을사오적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역사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셋째는 강제징용자들이 일본 기업에서 징용되어 일하면서 숱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일 따름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서 강제 징용 피해를 고발한 사례가 거의 없다가 느닷없이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부터 이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실제로 일제 시대의 한국 경제사나 일본의 징용 실태를 조사한 객관적이고 실증적 연구에는 실제로 일본이 본토인과 조선인을 거의 차별하지 않았다는 사료들이 많다. 어떤 근거로 대법원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나.

물론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 식민지 역사는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들이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은 전쟁 과정에서의 불법적인 여러 만행에 대해서이지 식민지배 자체를 불법으로 놓고 사죄한 사례는 없다.

때문에 조국의 논리대로 보상 아닌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거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질서를 무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처한 결과가 엄청난 국익의 손실에 직면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논리에 어긋나면 매국적 프레임을 씌우는 이분법적 편가르기는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종현 독자 (한의사/캐나다 밴쿠버 거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