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영훈 前 서울대 교수] 나는 김용옥을 역사의 법정에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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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10 12:18:13
  • 최종수정 2019.07.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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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은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살해 지령을 이승만이 내렸다는 그의 주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과연 이승만은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살해범인가? 과연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에서 무고한 양민의 학살을 지시하였는가? 김용옥은 그의 주장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편집자 주]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 박사가 김용옥 씨를 사자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 김구의 살해를 지시했으며, 여수 순천 반란사건 당시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는 학살 명령을 내렸으며, 미국이 한국을 분할통치하기 위해 데려온 '미국의 괴뢰'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고령으로 거동이 편치 않은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에게 고소 대리인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고, 이영훈 교수는 이에 동의하여 고소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이영훈 교수가 펜앤드마이크에 보내온 '김용옥 고소에 동참한 변(辨)'이다.  

 

지난 5월 24일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 씨가 김용옥 씨를(이하 경칭 생략) 사자(死者)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였다.

김용옥은 지난 1월 28일 『우린 너무 몰랐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는 매주 토요일 KBS1 TV의 “도올아인 오방간다”라는 강연에서 강사로 출연하였다. 책과 강연에서 김용옥은 이승만 대통령이 정적(政敵) 여운형 등의 살해를 지시했으며, 여수·순천사건 당시 “어린아이까지 다 죽이라”는 학살 명령을 내렸으며,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이 한국을 분할통치하기 위해 데려온 ‘괴뢰’였다고 비판하였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허위사실의 유포로서, 유족의 입장에선 사자 명예훼손의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 소행이다. 그런데 이인수 씨는 88세의 고령인데다 건강상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나에게 고소 대리인으로 역할해 주기를 부탁했으며, 나는 이승만학당의 설립 취지와 부합하는 일이라 여겨 쾌히 승낙하였다.

김용옥은 KBS 강연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 말에 격분하여 그것을 반박하는 강의를 “화적토벌”이란 제목으로 이승만TV에서 행하였다. 그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셨다.

5월 24일 고소를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동 사건의 수사를 서울 혜화경찰서에 지시하였다. 지난 6월 25일 나는 고소 대리인의 자격으로 동 경찰서에 출두하여 고소의 사유를 진술하였다. 그에 대비하여 나는 김용옥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정독했으며, “고소 대리인으로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 사람을 그냥 두어서는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소 대리인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몇 사람의 지인이 메시지를 전해 왔다.

“김용옥 그 사람, 쓰레기 아닌가. 그런 사람을 무엇 때문에 상대해.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무어야.”

그런 메시지였다. 책을 정독한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김용옥은 평가할만한 데가 있는 학자라기보다 요란하게 울려서 허명을 구하는 깡통과 같은 존재로서, 그 정신상태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비루한 욕설을 섞은 그의 말과 글은 시정배보다 천박하다.

공산주의에 우호적임을 숨기지 않는 김용옥

그가 철학자로서 또는 역사학자로서 처음 알아냈다고 호언하는 바는 기실 논리와 실증에서 증명된 적이 없거나, 증명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자처하는 그의 방약 무도한 태도는 치료를 요하는 일종의 정신 병리이다.

그렇지만 쓰레기는 그냥 두어서는 그 악취가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온 동네의 정상적인 후각을 마비시킨다. 쓰레기 더미에서 생겨난 구더기가 점점 불어나 온 동네의 골목을 스물스물 기어 다닌다. 결국은 그 더미에서 악질의 전염병이 발생하여 온 동네를 황폐시키고 만다. 그래서 쓰레기는 하루빨리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부터 김용옥의 책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고 내가 그를 쓰레기로 판정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김용옥은 공산주의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런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군대 내에 빨갱이가 있으면 안 되나? 혹자는 이를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날 꾸짖을 것이다. 본시 군인이 된다는 것과 좌우의 신념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275쪽)

이렇게 큰소리로 빨갱이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한 입장에서 김용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역사를 반(反)제국주의 민중항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으로 생긴 공백에서 일어난 새로운 냉전질서의 패권투쟁을 산발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한국의 6·25전쟁, 그리고 인도차이나전쟁, 월남전쟁에 이르는 1945년부터 1975년까지, 그러니까 일본제국의 패망에서 미제국의 패퇴 시점까지의 동아시아 역사를 동아시아 30년 전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6·25전쟁은 동아시아 30년 전쟁의 한 국면이었다.”(46쪽)

이처럼 김용옥에게서 동아시아 현대사는 제국주의 미국을 적으로 하여 동아시아의 민중이 벌이는 ‘30년 전쟁’이었다. 그가 책의 주제로 다루는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규정되고 있다. 그것은 의로운 민중항쟁이었다. 김용옥은 일본을 대신하여 등장한 새로운 제국주의 미국을 “일본과도 전혀 다른, 일본보다도 무지막지하게 막강하고 참으로 무지스러운,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전혀 별종의 양아치”(156쪽)라고 매도하고 있다.

반면 김용옥은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에게는 높은 수준의 경의를 표하고 있다.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극동 소련군사령부에 북한에 독자의 정권을 세우라고 지시하였다. 스탈린은 그해 연말 모스크바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전승국 외상 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로 만들기 위한 정치공작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그해 연말까지 북조선공산당이 건립되고, 1946년 2월에는 사실상의 정부로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스탈린의 비밀지령이 밝혀지는 것은 1992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모스크바 공문서관이 열리고 나서였다.

새롭게 발굴된 스탈린의 비밀문서는 해방 이후 분단을 향해 먼저 달린 쪽이 국제 공산세력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 같은 스탈린의 비밀지령을 두고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소련은 한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한국인 스스로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사회변화적이고 가치론적이고 철학적이었다. 미국은 오직 한국을 영토적 관심에서만, 즉 군사기지적 관심에서만 바라 보았다.”(145쪽)

요컨대 스탈린의 비밀지령은 한국인을 위한 진보적이고 철학적인 조치였다. 반면 미국은 오로지 영토나 군사기지에 대한 야심에서 괴뢰정권을 세우는데 분주했지, 한국인의 삶을 위한 가치 지향적인 조치는 하나도 취하지 않은 양아치 제국주의였다. 이 같은 김용옥의 주장을 두고 여기서 조목조목 반박할 요량은 없다. 그럴 수고가 아까울 정도로 유치한 엉터리 주장이기 때문이다.

북한 공산화를 '위대한 변화의 출발'이라고 미화찬양

1946년 2월 북한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들어선 이후 무상몰수와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행해졌다. 뒤이어 중요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공산체제로 향하는 여러 개혁이 차례로 실시되었다. 그것을 두고 김용옥은 ‘위대한 변화’의 출발로서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143, 226쪽)

그 모든 변화를 주도한 김일성에 대해 김용옥은 “만주벌의 신화적 독립투사의 이미지”를 지닌 사람으로서 다른 적격의 인물이 없어서 스탈린에 의해 발탁되었으며, 스탈린과 충분히 사전조율이 이루어진 가운데 “새로운 비전의 국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혁명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132쪽)

대조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김용옥의 평가는 듣기 민망할 정도로 모욕적이다. 이승만은 “야비한 품성의 정치 모리배”로서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이며(132, 289쪽), 그로 인해 “가는 곳곳에서 분쟁을 일으킨 싸움꾼”이자,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잘도 하여 사람을 현혹시키는 “진실로 거룩한 사기꾼”이었다.(151쪽)

김용옥은 이러한 사람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실로 전 민족이 사기에 걸려든 것과 다를 바 없는 비극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만은 어떻게 하여 그렇게 형편없는 모리배, 싸움꾼, 사기꾼이 되고 말았는가. 그에 대해 김용옥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를 거룩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낯선 외국 토양에서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질적인 아이덴티티 상실과 그것을 메꾸는 기독교라는 보편자 의식, 한마디로 예수쟁이의 신념과 배타성과 절대자에 대한 호소로써 정당화되는 도덕 관념의 상실 등등의 인격 요소이다”(151쪽)

다시 말해 미국에 오래 빌붙어 살면서 조선인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위선의 종교인 기독교에 귀의하여 예수쟁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열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용옥은 제주도 곳곳에 분포한 토속신앙의 1만 8000개 신을 “모든 종교의 가장 진화된 가장 진실 된 모습”으로 평가한다.(187쪽) 그와 달리 유일신의 기독교는 세상의 탐욕스러운 정치 권력과 결합한 악폐의 종교이다.

김용옥의 이승만 평가에는 이 같은 종교철학이 깃들어 있는데, 그 역시 너무 유치하여 여기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 천하의 사기꾼과 싸움꾼 이승만이 해방 후 동경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보냈으며, 맥아더가 그에 감동하여 이승만을 남한을 통치할 미국의 괴뢰로 발탁하였다. 바로 거기서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이어진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우린 너무 몰랐다』를 관통하는 김용옥의 주장이다.

김용옥, 이승만을 여운형, 송진우 살해범으로 몰고가다

내가 김용옥 고소에 동참한 것은 이상과 같은 그의 황당설을 척결할 필요성에 밀려서만은 아니다.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그러한 자유는 김용옥에게도 베풀어져 있다.

그런데 김용옥은 그의 자유를 향유함에 있어서 그 도가 지나쳤다. 나의 자유와 권리는 남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김용옥은 이승만 대통령을 조롱하고 매도함에 있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훌쩍 넘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을 희대의 살인자와 학살자로 매도하였다.

그것이 정녕 사실이 아닐진대 한 인간의 명예를 그처럼 심각하게 훼손하는 다른 일은 없을 터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김용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승만학당은 존속할 가치가 없다. 문을 닫아야 한다.

김용옥에 의하면 1945년 이후 벌어진 주요 정치테러는 모두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그의 도당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는 1947년 7월의 여운형 암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여운형은 중도적 포용성, 조직 관리 능력, 대중적 카리스마, 도덕적 청결성, 탁월한 웅변능력을 구비하였다. 여운형은 조직과 실력을 갖춘 진정한 민족의 리더였다. 이승만이 여운형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실력대결로 말한다면 언제고 자기를 뒤엎을 수 있는 인물! 여운형은 1947년 7월 19일 오후 1시경,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을 혜화동로터리에서 저격된다.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126쪽)

이렇게 김용옥은 여운형을 살해한 사람이 이승만임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열한 이승만이 자신의 최대 정적인 여운형을 내버려 둘 리 없음이 그러한 상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김용옥은 같은 상식의 논리로 1945년 12월에 있었던 송진우 암살의 배후도 이승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송진우를 암살하여 체포된 사람은 김구가 주석으로 있는 한독당의 당원이었다. 살해당하기 몇 시간 전 송진우는 김구와 언쟁을 벌였다. 이 이유로 송진우의 암살은 대개 한독당 열혈분자의 소행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김용옥은 이 같은 통설을 부정한다. 김구가 그런 우매한 짓을 할 까닭이 없는 가운데 그런 일을 당연히 저지를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관련하여 김용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거룩한 사기꾼의 미소이다. 송진우의 죽음(1945.12.30.)→여운형의 죽음(1947.7.19.)→장덕수의 죽음(1947.12.2.)→김구의 죽음(1949.6.26.). 이 연쇄 살인의 배후에는 상식에 속할 수밖에 없는 유기적 맥락이 있다. 하여튼 송진우의 죽음의 최대 수혜자는 이승만이었다.”(178쪽)

이승만은 ‘거룩한 사기꾼’이다. 그래서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살해는 모두 그의 지시에 따른 그의 도당의 소생이다. 이것이 김용옥이 이승만을 살인자로 단죄하는 근거의 전부이다. 나는 이것으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조악한 형태의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김용옥은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라 

같은 논리로 김용옥은 이승만을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에서 벌어진 ‘학살’의 책임자로 몰고 있다. 두 사건은 남로당 계열의 무장 세력이 대한민국의 성립에 저항하여 일으킨 반란이다. 미군정과 대한민국이 두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책임은 미군정과 대한민국에만 있지 않다. 무고한 양민을 선동하여 폭도로 동원하거나 인질로 삼은 공산주의자들의 책임이 더욱 크다. 어느 나라건 건국 과정에서 그러한 비극을 피하지 못하였다. 김용옥은 그러한 역사의 비극을 모두 이승만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그가 이승만을 단죄하는 결론적 문장은 다음과 같이 준열하다.

“진실로 이승만은 거룩한 사기꾼이다. 승만처럼 권좌를 탐하여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인 자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단군 이래 이승만처럼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살인공작·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 자아! 이런 얘기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속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151쪽)

이제 김용옥은 이 같은 그의 주장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과연 이승만은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살해범인가? 과연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사건에서 무고한 양민의 학살을 지시하였는가? 김용옥은 그의 주장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는 그의 주장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 그의 상식은 합당한 근거로 증명되지 않았다. 이후라도 합당한 근거를 제시할 경우 그는 이 나라의 법이 허락하는 자유의 한계에서 그의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그의 자유는 한계를 넘은 방종으로서 이 나라의 법이 형사 책임을 묻을 사자 명예훼손의 범죄에 해당할 터이다.

이승만학당의 교장으로서 내가 김용옥 고소에 동참한 변은 이상과 같다. 나는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이 소송을 역사의 신(神) 클리오의 법정에서 역사의 진실을 끝까지 추급하는 학구적 자세로 임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 이념과 독립·건국의 업적에 공감하는 전국의 자유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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