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대통령 문재인의 6.25 망언, 대한민국 부정의 심리구조
[김용삼의 현대사 추적] 대통령 문재인의 6.25 망언, 대한민국 부정의 심리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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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역사관은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론이 그 뿌리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장하는 논리의 배후에는 대한민국은 반민중·반민족·반민주의 반혁명 세력이 외세와 결탁하여 만들어낸 분단정권으로서, 민중·민족·민주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불의(不義)의 체제라는 의미가 저변에 잠복해 있다.
지난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 의회에서 6.25와 관련하여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연설하여 물의를 빚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지난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웨덴 의회에서 6.25와 관련하여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연설하여 물의를 빚었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연이어 말로 사고를 치고 있다. 현충일에 호국영령 앞에서 북한 체제 성립의 일등공신이자 6·25 남침의 주역이었던 김원봉과 조선의용대를 국군의 모체라고 발언하질 않나, 6월 14일 스웨덴 방문 과정에서는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전쟁을 부정하는 연설을 한 것이다.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과 경악이었다. 남북이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니! 그렇다면 북한 김일성 집단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을 받아 기습 남침전쟁을 벌인 6·25는 허깨비란 말인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우리가 언제 북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나? 단지 우리는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을 당하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위적 차원에서 국군·경찰·학도병·청년단을 비롯하여 심지어 여성들까지 입대하여 총을 들과 싸웠을 뿐이다.

유엔의 결의에 의해 탄생하고, 유엔의 승인을 받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탄생한 유엔의 아들 대한민국을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 공산집단이 불법적으로 침략하자 유엔이 직접 나섰다. 유엔은 북한 공산집단 및 그들을 돕는 소련,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격퇴하기 위해 사상 최초로 유엔군을 구성하여 우리 국군과 함께 싸워 적을 격퇴시켰다.

게다가 스웨덴은 6·25 당시 1개 야전병원단을 파견했던 참전국이다. 스웨던 야전병원단은 6·25 남침전쟁이 벌어지자 1950년 9월부터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도왔다. 6·25 전쟁에 파견된 의료지원부대 중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많은 중환자를 치료해주었다. 게다가 스웨덴은 덴마크, 노르웨이 등 6·25 당시 의료지원국이었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과 힘을 합쳐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지어준 고마운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反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과 박헌영, 스탈린과 모택동이 공모한 6·25 침략전쟁을 ‘서로의 총부리’를 겨눈 ‘쌍방과실의 역사’로 교묘하게 물타기 하여 면죄부를 주었다. 또 저들의 기습 남침으로 200만 명의 인명피해와 32억 달러의 물적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을 쌍방과실의 한 당사자로 전락시켜버렸다. 그것도 6·25 당시 야전병원단을 파견하여 한국을 도와준 참전국 의회 연설에서 말이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명백하게 반(反)대한민국적임이 또 한 번 만천하에 드러났다. 북한의 6·25 남침까지 전면 부정하고 남북의 쌍방 과실이라고 발언한 것은 명백한 이적행위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실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180도 다른, 비틀리고 고장 나고 왜곡된 역사인식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냉정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적 뿌리, 이념적 본향은 한길사가 발간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다. 총6권이 발간된 이 저작의 핵심 논리를 설명하는 논문이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4권에 수록되어 있는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 논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초판본에는 최장집·정해구 공저로 되어 있었는데, 최신판에는 최장집의 이름이 빠지고 정해구 단독 논문으로 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판본에 의거하여 논문을 저자를 최장집·정해구로 표기한다.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정해구는 문재인 정부에서 촛불헌법안 작성의 주역이었고, 국정원 적폐청산의 주인공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현재 청와대와 국가 핵심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의 사관 및 현실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준 중요한 논문이 바로 정해구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다.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저자 최장집·정해구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지배체제는 고유의 모순 구조로 인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이 요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원했던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①혁명주체세력인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이 인민정권을 수립한다.
②이들이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식민잔재 척결을 위해 친일파·민족반역자를 처벌한다.
③일제 및 친일 매판자본들이 보유했던 재산과 기업을 국유화하여 식민 잔재세력의 물적 기반을 박탈하고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약화시킨다.

최장집·정해구가 논문에서 언급한 혁명주체세력은 노동자·농민·기층민중 세력이고 이들의 정치적 구심점이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이다. 이들은 남로당으로 합당하여 좌익세력을 형성했다.

반면에 그들이 타도해야 할 반(反)혁명 세력으로 규정한 집단은 미군정을 중심으로 한 지주계급·매판적 자본가·친일·친미파다. 이들은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을 통해 우익세력을 형성했다.

좌익은 善, 우익은 惡의 구도로 해방공간 날조

저자는 해방공간을 혁명 대 반혁명 구도로 가른 다음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황당무계한 주관적 시각으로 혁명세력(좌익·공산주의 추종자)은 선(善), 반혁명세력(우익·자유민주주의 추종자)은 악(惡)의 구도로 설정했다. 즉 해방 전후사의 기본 축을 혁명적 한국 민중과 미 제국주의의 대립 구도로 설정하고, 북한을 민족의 ‘민주기지’로 평가했다(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47쪽).

1946년 7월 말 박헌영이 미군정을 상대로 파업·폭동·무장공격에 나선 것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장집·정해구는 스탈린이 박헌영을 모스크바로 불러 신전술을 지령했고, 그 지령에 의해 1946년 9월부터 파업·폭동에 나섰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해방공간에서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은 새 정부 수립에 있어 국가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놓고 격돌했다. 최장집·정해구는 이 과정에서 미소공동위원회의 합의를 거쳐 조선민주주의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연합군이 이 정부와 협의하여 5년간 신탁통치를 실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한에 주둔한 미 점령군은 반민족적인 지주·자본가·친일관료·친미세력을 동원하여 혁명세력을 탄압·분열·약화시켰고, 무력을 동원하여 민중조직역량을 파괴하는 반혁명 분단정책을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미국은 분단정권 수립을 공개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유엔을 동원했다. 분단정권 수립이 분명해지자 남한의 정치세력은 분단 지지세력(반혁명세력)과 분단 반대세력(혁명세력)으로 재편되었다고 주장한다.

분단 반대세력은 남로당을 중심으로 미군정에 저항하기 위해 1946년 10월 대구에서 발생한 대구 ‘10월 인민항쟁’을 벌였다. 또 단선단정(單選單政)을 저지하기 위해 ‘2·7 구국투쟁’, ‘4·3 제주민중무장봉기’, ‘5·8 총파업’을 일으켰다(‘ ’ 안의 용어는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의 공동저자인 최장집·정해구가 사용한 것이다).

그들은 해방 공간에서 발생한 대구폭동(1946), 제주 4·3폭동(1948), 여수순천 반란사건(1948) 등 일련의 폭동·반란은 ‘민중들의 가열찬 투쟁’으로, 이를 진압하는 행위는 ‘미군정의 폭력적 진압’(최장집·정해구,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최장집 외 지음, 『해방전후사의 인식4』, 한길사, 1993, 27쪽)으로 정의했다.

최장집·정해구는 남한에서는 미군정의 폭력적 탄압으로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이 실패한 반면, 북한에서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들의 혁명열기가 소련군의 후원이라는 유리한 조건 속에서 식민 잔재와 봉건 잔재를 척결하는 혁명 성공으로 이어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주장한다.

소련으로부터 공산화 법률을 제공받아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기독교인들을 숙청하고, 주민 재산을 국유화한 미증유의 공산화 정책을 정해구·최장집은 ‘민주개혁’이라고 우겨댔다(최장집·정해구,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최장집 외 지음, 『해방전후사의 인식4』, 한길사, 1993, 30~31쪽).

6·25 남침? 그따위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혁명세력은 미군정에 무장투쟁으로 저항했으나 실패했고, 그 결과 민족이 분단되고 대한민국이 성립했다고 말한다. 이런 황당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한을 반혁명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민족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민주기지’라고 주장한다. 해방공간의 상황을 이런 식으로 분석·기술하는 논리의 종착역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최장집·정해구는 자기들이 꾸며낸 황당무계한 기준에 의해 선악구도로 도배질 된 좌익 사관을 발표했고, 이런 ‘가짜 현대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를 구성한 인사들의 머릿속에 들어와 박힌 것이다.

정해구·최장집이 쓴 논문의 결론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은 정의롭지 못한 반혁명세력이 외세를 등에 업고 당시 국민들의 뜻과는 달리 분단정권을 수립한 ‘정의롭지 못한’ 행위라는 것이다. 반면에 해방 공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폭동·반란은 단선단정을 막기 위한 의롭고 숭고한 투쟁이 된다.

정해구·최장집은 이 논문에서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을 위해 인민정권을 세우고자 했던 혁명세력(좌익세력)은 분단정권이 수립되자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 ‘한국전쟁’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6·25에 대해서도 김일성의 남침이니, 스탈린의 음모 따위는 다 내던지고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전쟁은 일제하부터 시작되어 해방과 분단과정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던 국내적 갈등의 최종적 판가름”(최장집·정해구,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최장집 외 지음, 『해방전후사의 인식4』, 한길사, 1993. 33쪽)이라는 것이다.

즉 6·25는 김일성과 박헌영, 스탈린과 모택동의 남침 전쟁이 아니라, 남한의 반혁명·반민족 정권과 북한의 혁명적·민족적 ‘민주기지’ 정권이 군사적으로 충돌한 행위가 된다(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44쪽).

최장집, 정해구 공저로 되어 있는 문제의 논문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 실려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4권. 이 논문에서 조자들은 해방공간에서 좌익을 선, 우익을 악으로 설정하고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전쟁 발발 책임의 문제가 과대하게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은 “국내외적인 갈등이 심화된 결과이지 단지 어느 한 쪽이 총을 먼저 쏘아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우연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6.25 역사관이다.
최장집, 정해구 공저로 되어 있는 문제의 논문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이 실려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4권. 이 논문에서 조자들은 해방공간에서 좌익을 선, 우익을 악으로 설정하고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전쟁 발발 책임의 문제가 과대하게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은 “국내외적인 갈등이 심화된 결과이지 단지 어느 한 쪽이 총을 먼저 쏘아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우연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6.25 역사관이다.

그 결과 저자들의 인식 속에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를 따지는 행위는 졸렬하고 의미 없는 시간낭비 행위다. 정해구·최장집은 해방공간에서 좌익을 선, 우익을 악으로 설정하고 “남침이냐 북침이냐의 전쟁 발발 책임의 문제가 과대하게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쟁은 “국내외적인 갈등이 심화된 결과이지 단지 어느 한 쪽이 총을 먼저 쏘아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우연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최장집·정해구,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최장집 외 지음, 『해방전후사의 인식4』, 한길사, 1993, 36쪽)이라고 주장한다.

분단은 스탈린과 공산주의가 주범이다

최장집·정해구는 3년에 걸친 전쟁을 계기로 혁명세력인 북한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완결했고, 자립적 민족경제 정책으로 나갔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는 단일 지도체제, 사상적으로는 자주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주체사상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반혁명세력인 남한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종속적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반공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좌익사관과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주관적인 인식체계, 북한을 두둔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 날 것 같은 불안한 심리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사람이 문재인과 그 정부 핵심 요인들이다.

때문에 참전국 의회에 가서 “반만년 역사에서 남북은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 슬픈 역사를 가졌을 뿐”이라고 망언을 하고도 그것이 망언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병든 심리상태를 갖게 된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 역사학은 남한의 미군정과 그 협력자들이 분단의 책임자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비밀 해제된 구소련 문서들로 인해 이런 주장은 완벽 사기극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구소련 문서들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과 그 협력자들이 남쪽보다 훨씬 일찍 확고부동하게 독자적인 공산화 된 분단국가 건설에 총력전을 전개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정식 교수의 「냉전의 전개과정과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 라는 논문(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1』, 책세상, 2006, 13~56쪽에 수록되어 있다)은 그 내용증명에 해당하는 기념비적인 논문이다.

이정식 교수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발굴한 사료, 구소련이 망한 다음 러시아가 공개한 소련 기밀해제 문서, 전현수 교수가 번역하고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쉬띄꼬프 일기』 등에 의하면 해방 공간에서 한반도에 분단정권을 수립한 원흉은 스탈린과, 그에 협력한 북한 공산주의자들, 그들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서 소련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협력한 남로당 세력이다.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이 먼저 38선 이북 지역에 “분단된 공산정권 수립”을 지령했으며,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공산단독정권을 수립했다. 

문재인을 비롯하여 그의 정치적 동지였던 노무현은 최장집·정해구 등 좌파 학자들이 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탐독하고 운동권이 된 인물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2003년 3·1절 기념식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대한민국에 모욕을 퍼부었다. 노무현의 이 문제 연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도덕적 가치와 정통성을 명백하게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대한민국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이 분단정권으로 세워낸 이 나라를 뒤집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善)의 행위’가 된다.

모택동 신민주주의 혁명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

이영훈 교수는 최장집·정해구의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 논문에 대해 “그들이 주장하는 해방공간은 북한 정권의 주장을 옮긴 것일 뿐 사실이나 사료로 입증되지 않는 허구이며, 저자들은 그러한 사료의 수집과 분석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이 쓴 논문은 저자들이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사안을 그렇게 믿고, 선전하고 있을 뿐이며, 따라서 역사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았음을 후세에 알리는 좋은 징표”라는 지적이다(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44~45쪽).

이영훈 교수는 자신의 논문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에서 최장집·정해구의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논문은 1930~40년대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신민주주의혁명(neo democratic revolution)’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이란 무엇인가? 중국은 소련이나 서구 국가들과 달리 노동자 계급이 발달하지 못해 대부분의 국민이 농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마르크스나 레닌이 주장한 대로 노동자 착취로 인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노동자 중심의 혁명이 일어날 토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모택동은 혁명 역량이 무르익지 않은 중국에서 혁명에 성공하려면 두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첫째 단계는 민주주의 혁명 단계다.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조직하여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지식인, 소부르주아, 민족 부르주아, 애국적 민주인사, 진보적 민족주의자와 연합하여 정권을 탈취한다. 그 후에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당의 지도하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한다는 전술전략이다. 이것이 이른바 ‘모택동 사상’이라고 불리는 신민주주의 혁명의 핵심 본질이다.

이러한 ‘신민주주의 혁명’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주제가 사회구성체 논쟁이다. 사회구성체 논쟁은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①한국 사회는 미 제국주의 지배 하의 식민지다.
②남한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나, 민족분열이 고정화되고 자립적 민족경제의 기본이 파괴되었다면 반봉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③이러한 남한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민족 전체적’ 시각이 요구된다.
④북한 사회주의 건설 과정의 철학적 기초가 된 주체사상을 남한 변혁을 위한 사상적 기초로 삼는다.
⑤남한에서의 변혁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제1단계로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다(조희연, 「80년대 사회운동과 사회구성체논쟁」, 박현채·조희연 엮음, 『한국사회구성체논쟁』1, 도서출판 죽산, 1989, 27~28쪽 참조).

이처럼 논리구조의 연장선에서 해방 당시의 혁명 정국을 계승하여 1980년대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혁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미 성취한 북한의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친일파 단죄’를 만능의 무기로 동원

이러한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1980년대에 한국의 자칭 진보적 정치 세력과 지식 계층이 북한의 수령 체제를 민족사의 정통으로 자리매김하고, 그로부터의 협조와 지도하에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겠다는 깃발을 높이 내걸었던 기이하기 짝이 없는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야 좋은가?”라고 강력 비판했다(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책세상, 2006, 49쪽).

1980년대 사회구성체론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유토피아적 몽상, 조잡한 논리체계, 세계사의 흐름에 기이할 정도로 무지했던 세력들의 수구적·퇴영적 사관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그들은 구소련 붕괴, 동구권 해체라는 사회주의·공산주의 폭망의 위기가 닥치자 민주화, 인권, 반핵, 탈원전, 환경운동 등의 위장막을 뒤집어쓰고 학계·문화계·법조계·언론계·종교계 등으로 침투했다.

그들은 한국 사회 곳곳의 진지를 점령하고, 급기야 촛불난동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에 깊이 뿌리박은 ‘친일파 단죄’라는 한국인들의 원초적 본능을 만능의 무기로 동원했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인식은 근본적으로 반(反)대한민국·반미·반일·반자유민주·반시장적인 동시에 친북·친중국·친사회주의적이다. 또 자신들의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을 동학란→3·1운동→상해 임시정부→4·19→5·18→촛불시위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역사적 정통성에 입각하여 그들은 대통령 문재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고 전범 집단이자 역사적 퇴행·수구세력인 북한을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주의적 인식체계를 동원하여 미화·옹호·두둔·찬양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논리의 배후에는 대한민국은 반민중·반민족·반민주의 반혁명 세력이 외세와 결탁하여 만들어낸 분단정권으로서, 민중·민족·민주혁명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불의(不義)의 체제라는 의미가 저변에 잠복해 있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끝없는 6·25 망언과 대한민국 부정의 심리구조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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