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수첩/양연희] 故이희호 여사가 진정한 ‘여성운동가’였다면 북한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PenN수첩/양연희] 故이희호 여사가 진정한 ‘여성운동가’였다면 북한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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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희 PenN 기자
양연희 PenN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국내 언론은 일제히 고인을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 ‘한국 여성운동의 거목’으로 추앙했다.

일각에선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성과 인권이었다’며 ‘정치인 김대중을 돕는 과정에서 여성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며 평생 동안 차별받는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했다’고 평가했다. 일견 타당한 평가다.

그러나 기자는 고(故) 이희호 여사가 진정한 ‘여성 운동가’였다면 북한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녀가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면 북한 김씨 정권과의 ‘공존’과 ‘평화’가 아니라 독재정권의 붕괴를 위해 행동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희호 여사는 1950년대에 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 지식인이었다. 1950년 서울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2년 여성계 지도자들과 함께 ‘여성문제 연구원’을 조직해 남녀차별 철폐 운동을 벌였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 램버스대학, 스캐리대학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귀국 후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연합회’ 총무로 여성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그녀가 펼쳤던 여성인권운동에는 ‘혼인신고를 합시다’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김대중 씨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여성부(현 여성가족부)’를 처음으로 창설했다. 그러나 그녀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에 의해 가장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북한여성들에 대해서는 평생 동안 침묵했다.

북한인권 단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탈북자의 60~70%는 여성이다. 최근 영국의 한 민간단체는 탈북여성의 약 60%가 중국에서 인신매매에 의해 ‘성 노예(sex slave)’로 팔려가며, 이 가운데 약 50%는 매춘업소에, 30%는 중국 남성과의 강제결혼에, 15%는 사이버 섹스 산업에 팔려간다고 밝혔다. 탈북여성들은 적게는 우리 돈 5천원(30위안)에 매춘을 강요당한다. 9살 소녀가 카메라 앞에서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남성들의 대다수는 놀랍게도 한국인이다.

또한 북한여성들은 중국 변방에서 짐승처럼 팔려 강제결혼을 당한다. 그들은 중국인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궁핍, 강제북송에 대한 협박으로 항시 두려움에 떤다.

탈북 작가이자 북한인권 운동가인 지현아 씨는 최근 펜앤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중국에는 약 25만 명의 탈북여성들이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북송된다”고 밝혔다. 혼혈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정권은 임신부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앉았다 일어나기’ 100번을 시키거나 태아의 머리에 직접 주사를 놓아 낙태를 시킨다고 한다. 세 차례나 강제북송을 당했던 그녀는 북한정권에 의해 마취 없이 태아를 산 채로 뜯어내는 강제낙태 수술을 받았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한국을 비롯한 자유세계로의 탈출뿐이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이 취임 후 처음 만난 남측 인사는 바로 이희호 여사였다. 그녀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북한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의 시체가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상주였던 김정은을 조문했다.

금수산기념궁전이란 어떤 곳인가. 1990년대 말 북한에서 약 300만 명이 굶어죽는 동안 독재자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이 3년 동안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들여 김일성 시신을 보관하는 금수산기념궁전을 리모델링했다. 이희호 여사는 북한주민들의 핏값으로 지어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독재자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다.

그녀의 삶이 보여준 역설을 기자의 작은 머리로는 미처 다 이해하기 어렵다. 평생토록 ‘독재자와 싸운 민주화 투사’ ‘여성인권 운동가’ ‘평화운동가’로 추앙되는 그녀는 어째서 남편과 함께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연장시켰던 것일까. 탈북민들은 한결같이 한국에서 보낸 쌀과 물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오히려 한국정부가 지원한 쌀로 북한관리들에게 배급이 돌아가 북한주민들은 더욱 억압과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신앙과 종교의 자유는 모든 인류가 누려야할 인권이다. 이희호 여사가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면 세계 제1의 기독교 탄압국 북한에서 주민들이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애썼어야했다. 그녀가 진정한 인권운동가였다면,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했다면, 북쪽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지상 최악의 폭압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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