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세 칼럼] 노르망디 상륙 75주년을 맞아 '자유의 북한상륙'을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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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6.07 10:04:09
  • 최종수정 2019.06.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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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엄습한 나치의 족쇄를 끊어버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에 못지않은 의미 큰 6.25 인천상륙작전
자유 유지하려면 자유를 위한 희생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 대비해야
부서진 소총 탓하며 망연자실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 찾아 용기낼 것인가?

75년 전인 1944년 6월 6일, D-Day (디데이) 아침, 해롤드 바움가튼 (Harold Baumgarten) 일병이 탄 상륙정이 ‘오마하’ 해변에 닿았을 때, 바로 옆 상륙정에 독일군의 포탄이 명중했다. 나무조각과 쇳조각,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옆 소대원들의 핏덩이 조각들이 해롤드와 그의 29명의 동료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해롤드 앞을 가리고 있던 램프가 내려짐과 동시에 그가 쓴 철모에 저격병이 쏜 총탄이 튕겨 나갔다. 이미 해변의 바닷물은 앞서 내린 동료병사들의 피로 붉은 빛을 출렁이고 있었다. 해롤드의 소대장인 도널드슨 (Donaldson) 중위는 상륙정에서 내리기도 전에 기관총의 총탄세례를 맞고 붉은 바닷물로 머리부터 고꾸라졌다.


19살 해롤드 일병이 겨우 기어 내린 곳은 히틀러의 나치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노르망디 바닷가였다. ‘오마하’ 해변은 미국, 영국, 캐나다 연합군이 명명한 5개의 노르망디 해변 중 가장 독일군의 저항이 강한 곳이었다. 표적을 반으로 가른다고 하여 ‘히틀러의 버즈쏘우’ (Buzzsaw, 전기톱) 라는 별명이 붙은 MG-42기관총이 쉬지 않고 해롤드의 주변을 가격했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수면을 기어 나오는 순간 총탄이 해롤드의 M1소총을 박살냈다. 덕분에 총알은 해롤드의 가슴을 때리지는 않았다. 그는 앞에 보이는 죽은 동료 병사의 소총을 집어들고 다음 엄호물로 내달렸다. 그렇게 해롤드가 내린 상륙정에서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 뿐이었다. 이 날 하루 연합군 전체의 사상자는 만 명을 넘었다.

작전명 ‘오버로드’ (Operation Overlord) 로 명명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최소 16만 명의 미국, 영국, 캐나다 육해공 군인들이 연합해 치른 사상 최대규모의 해상 침공작전이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무려 5천 척의 상륙정이 그 아침 영국해안을 떠나 노르망디에 도착했고, 이 날 새벽에는 이미 독일군의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공습에 이어 2만명 이상의 공수부대원들이 적진에 투입되었다. (이 공수부대원 중 사상자는 4천명으로 희생자 비율이 상륙부대보다 더 높았다.) 또 이 디데이의 장소와 시일을 독일첩보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치열한 정보전이 펼쳐졌다. 독일 스파이들이 연합군의 상륙지점을 프랑스 깔레(Calais) 지역으로 오인해 보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수만 명의 연합군 부대가 영국 해안인 도버(Dover)에 집결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의 시작' (beginning of the end)이라고 여겨지는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유럽을 엄습하고 있던 히틀러의 '민족사회주의' (Nationalsozialistische = '나치') 라는 족쇄를 끊어버리는 결정적 돌파구가 되었다. 물론 디데이 일주일 후 히틀러의 보복폭격으로 영국 본토에서는 무려 3만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와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리고 연합군은 'V-E (Victory in Europe) Day'를 맞기까지 그 해 겨울 아르덴 산맥의 벌지전투(Battle of the Bulge)에서 매우 혹독하고 처절한 진지전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디데이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자유 승전의 날로 기록되고 또 기념되고 있다.

이 자유의 돌파구에 힘입어 7월 20일에는 독일군 내부에서 히틀러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다. 8월에는 연합군이 프랑스 수도 파리를 탈환했고, 이듬해 봄까지 유럽 곳곳에 나치가 설치한 수백개의 강제수용소에서 수십만명의 유태인 포로들을 해방시켰다. 그리고 이미 600만 명이 나치독일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살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도 확보했다. 결국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자살했고 몇일 뒤 독일군은 조건없이 항복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도 일본제국이 조건 없는 항복을 선언하며 2차 세계대전은 자유진영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플로리다에서 의사가 된 해롤드 일병은 많은 생존한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 경험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1988년이 되어서야 그는 다시 노르망디로 돌아와 총 한번 쏘지 못하고 쓰러진 자신의 지휘관 도널드슨 소대장의 무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 날'의 용기를 내어 전우들의 자유를 위한 희생이 그에 마땅한 빛을 보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을 결심한다. 그렇게 해롤드는 거기서 만난 저명한 역사학자 스티픈 앰브로스(Stephen Ambrose)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포함한 1400여명의 디데이 참전용사들의 증언들은 앰브로스의 1994년 책 "D-Day"에 기록되었고 추후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유명한 오프닝 전투장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장면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재현한 대표적인 영상기록물로 꼽힌다. 이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앰브로스의 1992년 전작 '밴드오브브라더스' (Band of Brothers)도 10부작 미니시리즈로 2001년 제작되었다. '밴드오브브라더스'는 디데이 새벽 적진에 낙하한 미 공수부대 101사단 506연대 'E 중대'의 이야기다. 국내에서도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전쟁미드'로 손꼽히고 있으며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주 노르망디 상륙 디데이 75주년을 맞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그리고 장거리여행이 가능한, 거의 모든 디데이 참전용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함께 노르망디에 집결했다. 5일에는 당시 공수부대의 낙하를 재현하는 비행쇼가 펼쳐졌고, 6일에는 캐나다군이 상륙했던 '주노'해변과 해롤드 일병이 내렸던 '오마하' 해변에서 성대한 기념식과 축제 행사가 열리며 자유의 승리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을 추모하였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관련 영화와 '미드'의 재미를 한참 뛰어넘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디데이는 자유와 폭정의 기로에 서있던 20세기 인류 모두에게 자유로의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고, 특히 우리 한국인은 그 의의와 대범함에 있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못지않은 또다른 디데이인 인천상륙작전의 직접적인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69년 전 북한군의 무력침공에 의해 자유를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던 대한민국은, 사상 최다국적 연합군의 개입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돌파구를 얻고 멸망을 모면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건을 깊이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는 자유북한을 위한 또 한번의 '디데이'를 다짐하고 준비해야 한다는데 있다. 북한은 또 하나의 '나치' (민족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은 그 '민족순수성' 강조와 고도의 전체주의적 통제, 살인적인 정치범 수용소 운영, 그리고 수령-주체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그 영토침략적 야심이 아직은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유럽과 서구를 제패하고자 했던 나치독일과 같이 현상타파적(revisionist)이다. 노르망디와 인천에 상륙한 자유는, 이제 우리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을 통해 평양에 상륙되어지길 66년째 기다리고 있다.

마침 디데이인 6월 6일은 우리의 현충일이었다. 디데이 75주년 현충일을 맞아 펜앤마이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물음은 두가지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 치러진 엄청난 희생에 부끄럽지 않도록 그 값을 얻어 냈는가? 그리고 두번째로, 나머지 한반도 북반부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또 한번의 디데이를 각오하고 있는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말미에는 제임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부하들을 잃고 자신도 숨을 거두게 된 밀러 대위가 제임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Earn this, James. Earn it." ("이 희생의 값을 얻어내, 제임스. 우리의 희생에 마땅한 값을 얻어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 모두는 라이언 일병이다. "나라의 부름에 따라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 자신들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워싱턴DC 한국전쟁기념관 글귀) 미국인을 포함해 너무도 많은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그 희생의 값을 과연 얼마나 얻어 내었을까. 아니 그 값을 헤아리기조차, 기억하기조차, 우리 자녀들에게 그 고귀한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알리기조차 못하고 있진 않은가.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호국보훈의 달'과 '6.25'를 쇠는 동안 과연 몇 번이나 전쟁기념관에, 현충원에,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부산 '유엔군 공동묘지'에 가족들을 데리고 방문해 보았나.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개입때문에 '민족통일'을 못 이루었음을 아쉬워하는 듯한 문재인정부와 국내 김일성주의자들에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영토침략 및 개인과 자유를 말살하는 폭정을 위한 전쟁과 그 사슬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전쟁을 구분하지 못하는, 또 애국심 고취를 '국뽕'이라고 빈정거리는 얼빠진 좌파들에게 분노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 보수우파, 펜앤마이크 독자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징검다리' 휴일을 반가워하며 연인 및 가족과 '놀 궁리'에 설레고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노르망디 상륙 40주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오마하 해변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또다른 디데이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인이 가진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위한 희생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또 자유를 위한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탄과 불만만 쏟아 놓는 것이라면 현정권을 탓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며 모든 책임을 떠맡았던 아이젠하워 사령관은 20년 후 디데이를 떠올리며 이렇게 상기한바 있다. “그 날 잘못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잘못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 총체적 난국의 상황을 건져낸 것은 병사 개개인의 용기와 솔선하는 정신력이었다.” 실제로 상륙작전은 날씨부터 모든 것이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심지어 상륙지점도 애초 계획보다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해롤드 일병이 용기를 끌어모아 몇 미터 씩이나마 움직이고 숨진 동료병사의 소총을 주워 전진하는 작은 주도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상륙작전에 임하는 모든 병사들이 계급에 상관없이 책임있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동기는 그들 모두 각자가 싸우는 이유, 즉 그들의 집총이 자유를 위한 싸움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독일군과 달리 그들은 상관의 명령 이전에 그들 개개인의 자유로운 양심의 명령을 좇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서진 소총을 탓하며 망연자실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해롤드 일병처럼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찾아 용기를 내어 내디딜 것인가?

우선 먼저 지금 바로 당장 친구들과 자녀들을 모아 이 '호국보훈의 달'에 합당한 계획을 세우자. 우리 먼저 자유를 사랑하는 문명인 답게, 자유를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전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마땅히 감사해하는 선진문화를 실천하자.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동포들을 위해, 66년이나 늦어진 ‘자유의 북한상륙’을 다짐하고 준비하자.

조평세 객원 칼럼니스트(트루스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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