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 실세그룹 ‘전대협 주사파’는 자유도, 민주도, 진보도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했다고 ‘미제 축출’ ‘위수김동’이 민주화운동인가?

권순활 논설주간
권순활 논설주간

20142월 나는 당시 몸담고 있던 동아일보에 '박정희 김일성의 백년전쟁'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3년 앞둔 시점이었다. 김일성은 박정희보다 5년 전인 1912년에 태어났다.

출발은 쿠데타였지만 한국인을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시키고 국가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된 5.16 군사혁명 58주년을 계기로 오늘 칼럼을 준비하면서 5년 전의 글을 찾아보았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우리 현대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같은 민족인 남북한은 두 사람의 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치적 출발은 김일성이 훨씬 유리했지만 () 뚜껑을 덮은 뒤남긴 국가 지도자로서의 성적표와 평가는 대역전이었다는 생각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박정희와 김일성의 백년전쟁도 막바지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집단 자멸의 길만 택하지 않는다면 승부는 사실상 판가름 났다. ‘박정희의 나라가 남긴 긍정적 유산을 이어받고 취약점을 보완한 뒤 김일성의 나라에서 지옥을 경험한 북한 동포와 힘을 합쳐 통일한국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그날은 언제쯤 올까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성급했다는 반성을 했다.

5년 전만 해도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박정희가 키운 나라와 세계 최악의 빈곤과 독재, 인권탄압의 대명사 격인 김일성이 망친 나라사이의 체제경쟁은 전자(前者)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긴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 과거 학생운동권 시절 이승만이 세우고 박정희가 키운 대한민국을 증오하고 북한의 김일성 집단을 추종하던 자들이 2년 전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대거 권력 핵심부를 장악한 것이 결정적 변수였다.

은 달라진 것 없는데 집단 자멸위험 커졌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3대 세습독재자인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의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휴전선 남쪽의 한국 정부가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맞는지 점점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설마 그런 일이야 있을까 했던 집단 자멸의 위험성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 정권의 핵심 실세그룹은 전대협 주사파로 상징되는 1980년대1990년대 친북반미(親北反美) 성향 극좌 학생운동권 그룹이다. 19876월 항쟁 후 결성된 전대협 역대 의장단의 현주소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기 의장인 이인영은 얼마 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2기 의장인 오영식은 국회의원을 거쳐 현 정권 출범 후 핵심 공공기관인 코레일 사장을 지냈다. 3기 의장인 임종석은 문 정권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돼 과거 그 어떤 비서실장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데 이어 내년 총선에서 국회 복귀를 노리고 있다. 6.25 전쟁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꾸는 법안을 추진하다 거센 비판을 받았던 4기 의장 송갑석은 광주(光州)가 지역구인 현직 민주당 의원이다. 이들 뿐 아니라 문 정권 출범 후 청와대 비서진을 비롯한 권부(權府) 곳곳에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포진하면서 전대협 동우회 정권이란 말도 나온다.

좌익 운동권 출신으로 현 정권에서 득세한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신들이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일반 국민 중에도 막연히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과거 군부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고 대다수 국민이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19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권은 더더욱 그렇다.

1980년대 이전과 이후의 학생운동권의 이념적 지향점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운동권도 좌파 성향이 짙긴 했지만 적어도 김일성의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 주류는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시인과 1980년대 이후의 운동권 주역들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 특히 80년대 중반부터의 학생운동권은 주사파로 상징되는 친북 또는 종북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주사파 출신에서 자유우파로 전향한 인사를 포함해 그와 관련된 숱한 증언도 나와 있지만 1980년대의 대학가를 대학생과 사회부 취재기자로 내내 지켜봤던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당시 학생운동 주도세력의 인식과 섬뜩한 구호가 정통 자유민주주의의 희구와는 거리가 먼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지향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전대협의 핵심부인 정책위원회와 자주평화통일학생추진위원회,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이 모두 사법부에서 이적(利敵)단체 판결이 확정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송갑석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당시 자신들이 추구한 이념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점만은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지적으로 무식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정권 주변의 586 친북 운동권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이 확정돼 36개월간 복역했던 임종석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좌파는 돈 벌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임종석 씨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이냐며 비판하자 이달 13세상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아직도 좌파 우파 타령을 하고 있다. 공안검사 시절 인식에서 한 걸음도 진화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게 놀랍다고 주장했다. 이인영은 지난달 21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질타한 황교안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으로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다한국당의 극우정치에 맞서고, 민주주의의 순조로운 발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인영은 이날 한국당에 대해 10번이나 극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자신들이 반대편을 공격할 때는 걸핏하면 말도 안 되는 극우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면서 자신들이 불리하면 아직도 좌파 우파 타령을 한다고 우기는 것은 그들 특유의 적반하장이다.

1980년대와 90년대 대학가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운동권 출신 집권세력 인사들이 말하는 민주화운동 경력의 실체가 어떤 성격인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1980년대의 경우 어쨌든 정권 출범의 원초적 정통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전두환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이념적 일탈에 대해 상당부분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 실체를 호도하고 거룩한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평생 행세하면서 권력과 돈을 모두 챙긴 현실이라면 이제는 있었던 그대로의 진실에 정직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이 아무리 싫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굳이 전두환 정권과 김일성 일족 정권 중에 하나를 택해 살라고 하면 김일성 일족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살기를 선택할 한국인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 표를 던진 유권자를 포함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충북 옥천 출신으로 대전 대덕구가 지역구인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3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이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 중 핵심에 들어있는 상당수는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입에 달고 살았던 자들이라며 그 중에 상당수는 전향 한번 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제가 물어봐도 대답을 안 했다고 정면으로 저격했다. 그는 또 남북연방제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사람들의 표현으로 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훈을 이 조선반도에 실현해, 소위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저 사람들이 하나씩 밟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궁극의 목표는 그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1962년생으로 80년대 대학가 사정을 직접 체험한 야당 정치인의 질타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돼 위험천만한 공산혁명을 꿈꾸었던 자들은 그들의 감추고 싶은 과거를 지적당하면 곧잘 우리가 과거 독재정권과 싸울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라고 되받아친다. 나이가 들만큼 든 국민 중에도 이런 주장에 은근히 주눅 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세계 최악의 독재집단인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충성맹세를 한 자들이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경찰에 화염병을 던졌다는 과거를 내세워 다른 국민에 대해 도덕적 우월감을 지녀야 할 근거나 정당성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유 대한민국이 공산화돼 지금까지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이 요구되는 시대라면 몰라도.

한국사회의 썩은 종양 ‘586 가짜 민주투사들에 주눅 들지 말라

19876월 항쟁 과정에서 친북좌파 운동권이 입에 달고 살던 미제 축출구호나 자신들끼리 은밀하게 오가던 위수김동구호를 잠시 내려놓고 대중노선에 따라 독재 타도-호헌 철폐로 수위를 낮춰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종전의 학생 데모와 달리 그때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통성 없는 정권에 염증을 느낀 자유민주주의 희구 성향의 학생과 직장인 등 중산층 국민이 대거 동참하면서 거리로 나온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필자만 하더라도 1987년은 군복무에 따른 3년간의 공백 후 대학 4학년으로 복학해 졸업이 임박한 소위 복사꽃(복학한 대학 4학년을 가리키던 표현)’이었지만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있더라도 지금 이 정권은 끝장내야 한다는 생각에 6.29 선언이 나올 때까지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학내외 집회와 시위에 참여했을 정도였다.

1987년의 판단과 선택, 행동에 대해서는 지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다만 그때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6월 항쟁 참여자들의 다수가 타는 목마름으로열망하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 독재정권을 추종하던 얼치기 혁명주의자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의 과실을 가로채고 독점해 나라를 이상하고 위험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이 현실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 국정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 지식도 없이 나라의 앞날은 아랑곳않고 정치공학적 잔머리 굴리는데만 능숙한 자들이 판치는 현실은 슬프기까지 하다. 아마도 876월 항쟁을 기억하는 50대 이상의 한국인, 특히 좌파 성향이 아닌 국민 중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현재 50대를 지칭하는 ‘586 세대’, 이 가운데도 특히 586 운동권 출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나도 연령적으로는 586의 전반부 세대에 속하지만 과거의 이념적 어리석음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정권 안팎의 586 친북 운동권 출신만큼 지적으로 무식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은 드물다. 우리 선배 세대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세우고 지키고 번듯한 나라로 발전시킨 대한민국을 저런 자들이 빠른 속도로 무너뜨리는 현실을 나 몰라라 하면서 방관한다면 후세에 두고두고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더라도 친북-종북 좌익세력은 자유도, 민주도, 진보도 아니다. 한국 사회의 썩은 종양인 가짜 민주화운동 투사들에게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맞서 싸워 지금의 잘못된 흐름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것은 이 어지러운 시대에 나라와 후손들의 앞날을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무다.

권순활 논설주간 ks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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