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준 前 장관-김우식 前 부총리 등 사회 원로들 靑찾아...文대통령 향해 '쓴소리'
정치, 경제 등 失政 지적받은 文대통령...반성은커녕 또다시 '적폐청산' 부르짖어
"진상규명과 청산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 새로운 나라 만들어 가야...정치라는 것이 참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년 차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사회계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고언(苦言)을 듣는 시간을 가졌지만, '경제 폭망'·'보복 정치'·'외교 파탄'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실정(失政)을 반성하긴커녕 변명과 투정으로 일관해 원로들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2일 오후 청와대로 이홍구 전(前)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원로들을 초청해 2시간가량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 분위기는 표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것처럼 보였지만, 몇몇 원로들은 문 대통령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불편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윤여준 전 장관은 지난달 29일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4당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동의 없이 공직선거법·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강행한 것을 염두에 둔듯 "국회가 극한 대결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국을 직접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이 청와대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세상천지가 모두 아는데 문 대통령 본인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었다.

송호근 포항공대 석좌교수는 정부가 노조를 제어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송호근 교수는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광장에 나왔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며 "(이후) 시민사회의 역할을 노조가 다 하고 있다. 여기서 오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우식 전 부총리 역시 윤 전 장관과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은)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며 "탕평과 통합을 통해 널리 인재 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 전 부총리의 말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온갖 비판에도 꿋꿋하게 유지해 오고 있는 '호남 편중', '좌파 낙하산' 인사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렸다.

김 전 부총리는 또 "경제·정치·사회적 불안 등 국민 불안 중에서도 경제에 대한 불안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며 "경제 문제에서 성과를 보였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 원로는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를 꼬집으며 "소득 주도 성장은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과 방법도 중요하다. (소득 주도 성장이) 추진 과정에서 실패하면 그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은 각종 지표를 통해 철저히 실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대비 마이너스(-) 0.3%로 바닥을 쳤고, 기업 설비투자 감소 폭도 10.8%로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분기(-24.8%) 이후 21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가게 문을 닫고 있고, 청년들은 사상 최악의 실업률로 한창 일할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원로들은 이런 총체적 난맥상을 문 대통령이 객관적으로 인지해 정책 전면 수정을 유도하기 위한 요량으로 이 같은 '쓴소리'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 대통령은 또다시 '적폐 청산'을 부르짖으며 미래로 전진하기 보다 과거로 회귀하는 '악수'를 뒀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원로들의 '쓴소리'를 들은 후 정치·사회적 문제보다 '적폐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빨리 진상 규명과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자는 데 공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협치, 타협도 할 수 있다"며 "국정 농단과 사법 농단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된 정책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정치·사회적 어려움보다 아직 무엇이 '적폐'인지 확실하게 규명되지도 않은 '적폐 청산'에 앞으로도 계속 매달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가장 힘든 것은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격렬하고 그에 따라 지지 국민 사이에서도 적대감이 갈수록 높아지는 현상"이라며 "정치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은 여야(與野) 합의로 개정한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깨고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해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진 것인데 정치가 어렵다는 '투정'을 부리면서 모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는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2016년 당시 민주당 대표 시절 선거법에 대해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이다. 일방의 밀어붙이기나 직권 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차례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이유다.

문 대통령은 최근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북한의 '적반하장' 태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뜬금없이 '종북 좌파'를 언급하며 논점을 흐렸다. 그는 "종북 좌파라는 말이 어느 개인에 대한 위협적 말이 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정파에 대해 위협적 프레임이 되지 않는 세상만 돼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이 자유 우파 인사들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극우'라고 힐난하는 현실에서 이 역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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