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추적] 문재인 대통령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對美 외교술
[박정희 시대 추적] 문재인 대통령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對美 외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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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처럼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정치외교에 대한 체계적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승만 대통령 못지않은 혜안으로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외교협상을 진행하여 한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했다. 그도 이승만 못지않은 외교의 달인이었던 사실을 우리만 잘 모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월남에 1개 전투사단(백마부대) 증파를 협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목록이 적혀 있는 브라운 각서. 박정희의 신기에 가까운 대미 외교의 산물이다.(사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월남에 1개 전투사단(백마부대) 증파를 협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목록이 적혀 있는 브라운 각서. 박정희의 신기에 가까운 대미 외교의 산물이다.(사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문재인 대통령이 1박 3일의 한미 정상회담,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정상회담을 하고 귀국한단다. 한미 간에 모든 현안이 다 비정상인 가운데 열리는 정상회담인지라 어떤 결론이 도출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문재인 정부 외교 성적표는 참혹하기 짝이 없다. 대체 외교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회의가 들 정도다.
파탄 일보 직전인 한미 관계의 현 상태로 미루어볼 때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들고 오든 납세자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따위 외교 성적표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 부국(富國) 대통령 박정희의 위상을 더더욱 높이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 두 분은 미국에 저자세 외교를 한 것이 아니라 세계 최강국 미국과 당당하게 맞서 국익을 성취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대미 외교 비사를 소개한다.
이승만은 외교의 귀신 소릴 듣는 인물이다. 재임 중 그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에 의존하여 나라를 유지하는 약소국 대통령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국군 단독 북진, 반공포로 석방, 평화선 선포 등으로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상호방위조약, 전후복구에 따르는 원조, 경제 지원 등을 이끌어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들었다 놨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7월 30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회담에서 격돌했다. 당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반공태세를 강화하여 미군이 원활한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미국이 일본의 전후복구를 돕기 위해 한국에 제공하는 원조물자를 일본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젠하워가 “한일 국교 수립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이승만은 “내가 있는 한 일본하고는 상종을 하지 않을 것이오” 하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화가 난 아이젠하워가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가자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의 등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저런.”
이때 회담에 참석했던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표욱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 말은 통역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옆방에서 가까스로 화를 식히고 회담장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신 기자 클럽에서 연설하려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먼저 갑니다” 하면서 회담장에서 나가버렸다.
양유찬 주미대사가 덜레스 국무장관을 설득하여 실무자들끼리 회담을 계속, 미국으로부터 군사원조 4억 2000만 달러, 경제원조 2억 8000만 달러 등 총 7억 달러의 대한(對韓) 원조를 받아냈다(한표욱 지음, 『이승만과 한미외교』 참고. 중앙일보사 발간).
그가 미국의 저명한 조지워싱턴대학,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정치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최고 지성이었으니 이런 능수능란한 외교술로 미국을 옭아맬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군 전투부대의 월남 파병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월남으로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한 박정희의 대미 외교의 산물이었다.(사진 연합뉴스)
한국군 전투부대의 월남 파병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월남으로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한 박정희의 대미 외교의 산물이었다.(사진 연합뉴스)

만주 신경군관학교,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무인(武人) 박정희도 이승만 대통령 못지않은 외교의 달인이었다. 월남전 당시 박정희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내 월남으로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해 먼저 미국에 한국군 전투부대 파병을 제안하여 주도권을 쥐었다. 한국군 맹호부대 1개 사단이 월남에 파병되어 싸우고 있는 와중에 월남전이 격화되자 존슨 미 대통령은 한국군 전투부대 1개 사단의 증파를 끈질기게 요청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극비 여론조사 결과 한국 국민들이 월남 파병에 찬성하는 의견은 겨우 20%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1개 전투사단을 더 증파한다는 것은 여론을 거스르는 일대 모험이었다.
미국 정부는 만약 한국군 2개 사단 파병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월남에 투입할 수도 있음을 계속 흘렸다. 박정희에게 “주한미군의 철수냐, 아니면 한국군 전투사단의 월남 증파냐를 놓고 양자택일 하라”는 메시지였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던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난관을 무릅쓰고라도 이를 관철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박정희는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하여 미국의 애간장을 태웠다.

박정희 대통령, 지연전술로 ‘브라운 각서’ 받아내

1965년 5월 1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1개 사단을 파병할 수 있습니까? 만일 각하께서 1개 사단을 약속하실 수 있다면 이는 월남에서의 투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박정희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월남에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한국 정부가 연구해야 할 사안이므로 현재로서는 약속할 수 없다”고 뜸을 들였다.
박정희의 지연 전술에 말려든 미국은 1966년 3월 4일, ‘브라운 각서’라 명명된 비망록을 보내 한국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지원을 약속하자, 그제야 박정희는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1966년 8월 15일 백마부대가 월남에 상륙했다. 이로써 한국은 2개 전투사단(맹호·백마부대)과 1개 해병여단(청용부대), 지원부대(비둘기부대) 등 1973년 철수할 때까지 약 5만 명의 병력을 월남에 상주시키게 되었다. 이는 한반도 역사상 대마도 정벌을 제외할 경우 최초의 대규모 해외 파병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한국이 월남에 1개 전투사단을 증파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냈는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군사부분에서의 미국 원조.
①국군의 현대화 계획을 위해 수년 동안에 상당량의 장비 제공.
②추가병력에 필요한 장비 제공, 파월 추가병력에 따르는 일체의 경비 부담.
③파병병력을 대치하는 보충 병력을 장비하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
④한국의 대간첩 활동 능력 개선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요구 충족.
⑤한국의 탄약생산을 위해 병기창 확장용 시설 제공.
⑥한국 측 전용 통신시설 제공.
⑦한국 공군에 C-54기(수송기) 4대 제공.
⑧막사, 숙소 및 오락 시설 등 부대 복지에 필요한 재원 군사원조계획 잉여물자 매각대금에서 제공.
⑨주월 한국군 전원에 대한 해외 근무수당 부담.
⑩월남에서 발생하는 전사상자에 대해 한미합동군사위원회에서 합의된 액수의 2배 비율로 보상금 지불.
둘째, 경제 원조.
①추가병력 파월과 한국 내에서 1개 예비사단, 1개 예비여단 및 지원부대의 동원 유지에 소요되는 순 추가비용의 전액과, 동액의 추가 원화를 한국 예산을 위해 지출.
②한국군 2개 사단 병력이 월남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군원 이관을 중지하며, 해당 품목을 한국에서 역외 조달.
③한국군 부대에 소요되는 보급물자 용역 및 장비 실행할 수 있는 한도까지 한국에서 구매, 주월 미군과 월남군을 위한 물자 중 결정된 구매품목 한국에 발주.
④수출진흥의 전반에 필요한 기술원조 강화.
⑤한국에 약속한 1억 5000달러의 AID 차관에 추가하여 미국은 추가 AID 차관 제공(1959년 AID가 발족된 이래 6년 간 한국이 승인 받은 AID 차관은 총 1억 300만 달러였는데, 현금 차관 1억 5,000달러 지원은 실로 파격적인 액수. 조건도 10년 거치 30년 상환, 금리 2%로 대단히 유리한 조건).

월남의 한국군에게 김치와 쌀밥을 먹여라

한국군 전투부대 1개 사단 증파의 부산물로 한국은 10여 년을 끌어온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SOFA)’을 체결, 그때까지 치외법권적 배타적 특권을 누려 오던 주한미군 병사들에게 한국은 형사소추를 비롯하여 재판권 행사 등 여러 제약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다. 5만 명의 병력을 월남에 보낸 박정희는 파월 한국군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김치와 쌀밥을 먹이기 위해 외교 협상을 벌였다. 1967년 3월, 박 대통령은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김치가 한국군에게 대단히 중요한 음식”이라는 친서를 보내 주월 한국군들에게 충분한 양의 김치를 공급하기 위한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가 요청한 김치 공급 문제와 관련, 1주일 만에 박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저는 월남 전선에 배치된 한국군이 친숙한 전투식량을 즐기도록 배려하는 각하의 소망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한국 장교들과 협의하여 한국 군인들에게 김치를 공급하려는 각하의 요청을 충족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미 월남에 배치된 한국군에게 최신 장비를 더 많이 공급하기를 원하시는 각하의 희망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한국군으로 구성된 헬기 중대가 금년 여름부터 월남에서 운용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국군 전투부대에 대한 신형 소총 보급이 승인되었으므로 몇 개월 내에 보급이 완료될 것입니다.’
브라운 각서는 14개 항목에 걸친 한국군 현대화 작업과 전투사단 월남 증파에 따른 보상 등 부대조건을 달고 있었다. 이 각서는 1970년 2월 말에 열린 미국 상원 사이밍턴 청문회에서 한국 측에 너무 유리하게 되어 있다 하여 상원 외교위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처럼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정치외교에 대한 체계적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승만 대통령 못지않은 혜안으로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외교협상을 진행하여 한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했다. 그도 이승만 못지않은 외교의 달인이었던 사실을 우리만 잘 모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님이여. 대미 외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거든 두 분을 적폐로 몰아 우리 현대사에서 지우는 대신 열심히 배우시길 권고한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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