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결렬 '뒷수습' 나선 대미通 '외무성 라인' 재부상 관측 뒤따라
통전부장 김영철까지 문책 가능성 관측…"대외시선 고려해 수위조절"
김정은 직접 발탁 신혜영까지 문책 '의외'…金 할말 트럼프에 다 못 전하는 등 실수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지난 2월말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을 이유로 대미(對美)대화의 핵심인사인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前 주스페인 북한대사)와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은 물론, 회담 당시 통역관까지 문책했다고 국내 언론이 6일 보도했다.

김혁철과 김성혜는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측의 '통전부 라인'으로 불려온 인사들이다. 이에 따라 회담 결렬 책임을 물을 대상이 김영철로도 이어지는 한편 대미통(通) '외무성 라인'으로 대미협상의 주축이 다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가운데) 측의 '통전부 라인'으로 불려온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왼쪽), 김성혜 통전부 통일책략실장(오른쪽)이 최근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을 이유로 문책당한 것으로 전해졌다.(사진=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이날 '미북 협상에 정통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하노이 회담을 돌아보는 '총화' 후 협상 실무자들에 대한 문책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의하면 소식통들은 "(북한 정권에서) 하노이에서 김정은 위원장 도착 전까지 미측과 실무 협상을 벌였던 김혁철과 김성혜, '1호 통역'으로 데뷔한 신혜영 등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했다. 

김혁철·김성혜가 문책당한 것은 미측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 상황 보고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신혜영은 하노이 회담 당시 김정은과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통역 실수'로 질책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차 미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은의 통역관을 맡았던 신혜영.(사진=연합뉴스)

이들 중 미북대화에서 북측 실무대표를 맡았던 김혁철은 당초 내부에서 '중대한 책임'이 거론됐지만, 대외 시선 등을 고려해 원래 소속 기관인 외무성으로 일단 복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한다.

간신히 '숙청'은 면하고 '근신'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향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김혁철이 다시 미북 협상 대표로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측 실무대표 김혁철과 '북한 대외 정책의 실세'로 불려온 김성혜는 앞서 올 1월 김영철의 방미(訪美)에 동행한 바 있다. 이후 2월 평양(6~8일)과 하노이(21~25일)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미 대표단을 만나 정상회담 직전까지 비핵화 의제를 조율했다. 

그는 2월26일 김정은의 하노이 도착 직후엔 김정은 숙소에서 협상 상황을 보고했다. 이 때문에 하노이 미북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직후 한미 정보 당국에선 '이들에 대한 문책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난 3월1일(베트남 현지시간)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후 심야 기자회견을 자청한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부상, 리용호 외무상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급) 최선희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자정을 넘긴 시점(3월1일)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북-미) 거래에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다.

이와 관련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 실패와 관련해 김정은이 받은 심리적 충격과 북한 내부의 불만을 고려할 때 관련자 문책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풀이했다.

김혁철은 국무위원회를 떠나 외무성으로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고, 김성혜의 경우엔 구체적인 조치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 통역을 맡았던 신혜영까지 문책 대상에 오른 것에는 '다소 의외'라는 관측이 뒤따르고 있다. 신혜영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1차 미북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인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을 대동했던 점을 의식해 김정은이 직접 기용한 인물로 알려졌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신혜영은 정상회담 당일인 2월28일 정상 간 대화 통역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날 회담에서 합의 무산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한 가지 더 얘기할 게 있다"고 했는데, 신혜영이 미처 통역하지 못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 입장에선 통역이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 셈"이라고 봤다.

신혜영은 당시 다른 실수도 저질렀다. 단독 정상회담에서 외신 기자가 김정은에게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확대 정상회담에서 다른 기자가 "미국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과 관련해 준비가 돼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신혜영은 멈칫했고, 미측 이연향 통역국장이 통역했다고 조선일보는 설명했다.

외교가에선 "신혜영의 국제무대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라는 말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왼쪽부터) 북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국무위원장 김정은.(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대미 협상 총책임자였던 김영철 또한 이른바 '하노이 노딜(No-Deal)'의 책임을 면하진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김영철이 고위급이라 대외 시선을 고려해 문책 수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개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책 조치를 했는지 확인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번 관련자 문책에 따라 북한의 대미 협상 라인이 조만간 교체될 가능성도 점쳐진다고 봤다.

서울의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최근 문책과 동시에 대미 협상팀에도 변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했다. 

한미 외교가에선 향후 북한의 대미 협상축이 김영철·김성혜 중심의 '통전부 라인'에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등 '외무성 라인'으로 교체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리용호·최선희는 하노이 회담 결렬 북한 책임론 무마 차원에서 심야 긴급 기자회견에 직접 나선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측은 이미 지난해부터 '대미 강경파'인 김영철보다 리용호가 협상에 나서주길 원했다"며 "대미 협상 라인 교체는 김정은의 결단에 달렸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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