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사법부 독립, 이제 판사들이 나서라
[황성욱 칼럼] 사법부 독립, 이제 판사들이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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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성창호 판사 기소는 명백한 사법부 겁박
판결하면 시민단체 몰려오고 판사 조리돌림하는 현실
판사가 법대에 앉아 국민에 도움만 요청하는 시대 끝났다
자유시민들은 이미 싸우고 있다.
판검사 시대에서 다시 검판사 시대로 돌아갈지는 법관들에 달려있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드루킹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김경수 지사에게 실형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던 성창호 판사를 검찰이 소위 ‘사법농단’의 공범이라며 기소했다. 이 사건과 별개라지만, 여당이 김경수 유죄판결을 놓고 성창호 판사에 대해 폭언을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허긴 정치권이 나서서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좌파전체주의 진영의 오랜 관행이지만, 김경수 지사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법률해석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궤변으로 사법부를 비난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해당 판사를 검찰이 기소한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 힘들다. 야당은 명백한 사법부 겁박이며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사자인 성창호 판사는 본인이 피의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듣지 못하다가 김경수 판결을 선고한 이후에 정식으로 피의자로 소환되었다고 한다. 아니 처음에는 소위 사법농단 ‘피해자’였다가 갑자기 ‘공범’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이라면 엿장수 맘대로도 이런 맘대로가 없다.

이러는 와중에 김경수 지사 항소심 사건은 극좌성향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 연구회 출신이 맡게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사회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새로운 나라의 모습 중 하나는 ‘사법부 독립’이 아니라 ‘사법부 종속’임은 분명한 듯하다. 사법부 종속 국가란, 말이 생소해서 그렇지 이젠 우리도 낯설지 않은 개념인데 사법부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고 정치와 여론으로 승패가 갈리면 거기에 판결문이란 형식으로 도장만 찍어주는 나라를 말한다.

점점 강도가 세져 가고 있지만, 사실 이미 조짐은 벌써부터 있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치부하기엔 그간의 정황이 만만치 않다. 정권과 코드만 맞으면 기관 내부의 기준과 상관없이 고위 법관으로 임명되고 이런 특정코드와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사들은 무리를 지어 정권을 옹호하고 집단행동을 해왔다. 대통령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발언을 해도 사법부 수장은 반발하지 않는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도 체면치레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도 안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인데도 증거에 따라 판단할 뿐이라고 말해왔던 그 ‘딸깍발이 답답이 샌님 판사들’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저리가라 일부 판사들이 한 술 더 떴던 것이 새롭게 바뀐 나라의 사법부였다.

그러나 묻고 싶다. 지금 대다수 법관들이 원하는 사법부가 진정 이것이었나.

판결을 선고하면 시민단체들이 몰려오고 인터넷으로 실명 조리돌림을 당한다. 사실도 확정되기 전에 동료판사로부터 탄핵당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는 지경이니 정치권은 이제 사법부가 만만하기 이를 데 없다. 혹시 판사가 특정모임에 가입하지 않으면 속된 말로 찍히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그런 것은 아닌가?

물론 대다수 판사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서초동에서 회자되는 뒷얘기들은 웃프다. 정치보복적 성격과 사법부 권력교체 성격이 짙은 소위 ‘사법농단’ 사건에서 검찰에 줄줄이 끌려가서 조사받았던 판사들은 갔다 와서 이렇게 얘기했단다.

“검찰이 수사를 이렇게 하는 줄 몰랐다. 내가 하는 말이 이런 식으로 조서에 기록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반 국민들은 그럼에도 이제껏 이런 것을 몰라왔던 그런 판사‘님’을 믿고 살았다.

일선에서 법조실무를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일도양단, 양비론적으로 비판할 수만은 없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따지면 쉽지 않고 어떤 개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법부가 온갖 굴곡의 역사에도 독립을 지켜온 것은 사법부 독립을 바랬던 국민들의 존중과 의지였지 판사들 역량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부 자유판사들의 노력만으로, 대다수 법관의 침묵만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듯하다. 판검사 시대에서 검판사 시대로 다시 돌아가느냐 마느냐는 이제 법관들에게 달렸다. 슬프지만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법대에 앉아 외부에, 국민들에게 도움만 요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유시민들은 이미 싸우고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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