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김원봉과 유관순
[홍찬식 칼럼] 김원봉과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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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영화 통해 알려졌지만 역사학계서는 훨씬 전부터 재조명 연구 작업
역사 소재 영화-드라마, 기본적으로 역사 왜곡 전제...임정 우파서는 김원봉을 '음모술수 많은 공산주의자' 의심
文정부 국가보훈처,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해야 한다며 맹목적 옹호...유관순은 '친일파' 내세워 실종
좌파 세력, 자기들 입맛대로 역사 넣고 빼...KBS와 MBC 드라마 균형성-객관성 확보토록 엄중 감시해야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국가보훈처가 김원봉(1898-1958)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번 소식은 어느 날 갑자기 돌출한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진행되어온 동선(動線) 위에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원봉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5년 12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을 통해서였지만 역사학계에서는 훨씬 전부터 김원봉을 재조명하고 부각시키는 연구 작업을 해 왔다.

영화 ‘암살’의 1000만 관객 돌파는 2015년 8월 15일 70주년 광복절에 이뤄졌다. 이 또한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 바로 다음날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마음속으로나마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는 내용의 꽤 긴 글을 SNS에 올렸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이번에 ‘마음 속’을 넘어 실제 현실에서 독립유공자 서훈 권고 소식이 나왔고, 올해 안에 양대 지상파인 KBS와 MBC가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TV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다.

학계-영화-문재인-보훈처-TV로 이어지는 ‘영웅 만들기’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나 거론되던 김원봉이 ‘대박 영화’에 이어 TV드라마에까지 화려하게 등장하게 되면 젊은 세대들 사이에 “김원봉을 존경한다”는 팬들이 속속 나타날 판이다. 아울러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지지하는 분위기도 무르익을지 모른다. 역사 속의 한 인물을 ‘소환’해 영웅으로 만들어가는 좌파들의 추진력 단결력이 놀랍다.

하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역사 왜곡’이 전제되어 있다. 김원봉도 영화 ‘암살’에 나오는 그대로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이미 드러나 있다. 그가 3.1운동 직후인 1919년 11월 의열단을 만들어 활발한 무장 독립투쟁에 나선 것 등은 탁월한 공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또 다른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 내 활동만 해도 상반된 의견들이 존재한다.

김원봉이 임시정부에 참여한 것은 광복을 4년 앞둔 1941년 5월의 일이다. 이전까지 그는 임시정부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뒤늦게 임정 참여로 선회했다. 그의 임정 참여는 김구를 비롯한 우파 중심의 임시정부에서 ‘좌우 합작’의 성격이 강했다. 합작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임정 우파 쪽에서는 김원봉을 ‘음모술수가 많은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주은래의 중국 공산당과 연대투쟁을 모색하고 있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이런 임정 내부의 인식은 일본 학도병 출신으로 광복군에 투신한 장준하(1918-1975)의 저서 ‘돌베개’에도 잘 드러나 있다. 장준하가 1944년 하반기 광복군에 참여하기 위해 청년동지 50여명과 함께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충칭으로 가려했으나 김원봉은 고의적으로 ‘충칭 행(行)’을 막았다고 ‘돌베개’에서 증언했다. 김원봉은 청년동지들에게 지나친 친절을 베풀고 나중에 비행기 편을 알선하겠다고 허풍을 떨면서 자신들의 출발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김원봉은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는 장준하의 증언

장준하는 그 목적이 청년동지들을 빼돌려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 확장에 써먹으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장준하는 김원봉에 대해 ‘그때 이미 공산당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며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고 썼고 그가 이전에 조선민족혁명당을 만든 것도 임시정부에 들어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김원봉의 임정 참여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해 볼만 하다.

김원봉이 1948년 4월 남북협상 때 월북해 같은 해 9월에 구성된 북한의 초대 내각에서 국가검열상과 국방상을 맡은 뒤 6.25전쟁 때의 행적도 논란거리다.

1954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은 서울시경이 김춘옥 등 5명의 북한 남파 간첩을 체포했는데 이들은 광복 이후부터 김원봉의 지휘를 받아 활동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특히 6.25 때는 김원봉의 직접 지휘로 서울에 침입했다가 9.28 서울 수복 때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김원봉은 북한 정권의 창업 공신임은 물론이고, 광복 직후부터 남한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으며 6.25 남침에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이력의 인사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대한민국 정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보훈처의 보훈혁신위원회 등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쪽은 맹목적인 옹호 일변도다. 이들이 서훈 논리로 내세우는 ‘독립운동가로서 평가 대상이 되는 시기는 1945년 8월15일 이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광복 이후의 반(反) 대한민국 활동은 일체 묻지 말자는 말과 같고, ‘김원봉이 결국 김일성에게 숙청되어 버림을 받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은 감성적인 편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유관순은 ‘친일’ ‘건국’과 관련 있다며 일부러 제외

김원봉과 대비되는 사례로 2014년 ‘유관순(1902-1920) 실종 사건’을 들지 않을 수 없다. 8개 출판사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펴내면서 그 중 4개 출판사가 유관순을 배제한 채 한국사 교과서를 제작해 파문이 일었다. 그 이유는 어느 교수가 “유관순은 친일파가 내세운 영웅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수면 위에 드러났다. 김원봉이 일부 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띄워진 사례라면 유관순은 같은 세력에 의해 제외시킨 케이스다.

이들이 제시한 유관순 연구 결과라는 걸 보면 유관순의 출신 학교인 이화여중이 미국인 설립의 기독교계 학교라는 점과 유관순이 친일파가 부각시킨 인물이라는 점, 대한민국 건국 당시 건국정신을 부양하려는 목적에서 유관순 기념사업이 진행됐다는 점이 유관순 배제의 근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조차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결국 ‘친일’ ‘친미’ ‘대한민국 건국’ ‘애국’에 대한 역사학계의 강한 반감이 유관순을 교과서에서 내쫓은 것이다. 김원봉은 한없이 싸고도는 사람들이 유관순에겐 그렇게 가혹할 수 없었다.

KBS MBC의 ‘김원봉 드라마’ 균형성 객관성 감시해야

김원봉과 유관순을 비교해 보면 좌파 세력이 어떤 의도로 자기들 입맛대로 역사를 넣고 빼고 하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역사는 더 치켜세우고 싶고, 민족주의 우파의 역사는 최대한 무시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그들 뜻대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유관순은 3.1운동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응답자의 82%를 지지를 받아 1위에 올랐다.

다시 김원봉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민간 차원에서 독립운동가로서 그를 기념한다면 각자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그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올해 KBS MBC가 방영한다는 김원봉 드라마는 두 방송사가 공영방송으로서 균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도록 엄중 감시에 나서야 한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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