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정문 옆 게시판에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담은 사진과 함께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축하 공연 모습 등 사진 6장이 게시됐다(연합뉴스).
6일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정문 옆 게시판에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담은 사진과 함께 작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축하 공연 모습 등 사진 6장이 게시됐다(연합뉴스).

조성길 전 주(駐)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행방과 관련해 갖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조성길 전 대사대리는 작년 11월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두 달여가 지나도록 현 소재부터 망명 신청 여부까지 정확한 정보가 밝혀지지 않아 추측만 난무한 상태다.

당장 그의 행방을 놓고 미국이나 영국으로 건나갔다는 관측과 이탈리아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심지어 이미 북한으로 송환됐다는 설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세라’는 5일(현지시간) “잠적 후 제3국으로 도피한 조성길을 이탈리아 정보기관이 찾아내 다시 이탈리아로 데려와 비밀 장소에서 보호 중”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국가정보원도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보고하면서 이탈리아 당국이 신변보호를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신문은 “조성길이 작년 9월 북한으로부터 귀국 명령을 받았으며, 인수인계를 하던 시기인 11월에 사라졌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러나 신문은 ‘제3국’이 어느 나라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4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조 대사대리가 미국 망명을 원하겨 현재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탈리아 당국과 미국이 관련 사안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한국 전문가 등을 인용해 “조성길이 이미 미국이나 영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대북 전문가가 많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메사제로는 이날 “조 전 대사대리가 이미 미국 또는 영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메사제로는 북한 당국이 파견한 특수요원들이 그를 붙잡아 평양으로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발렌티노 페린 이탈리아 전 상원의원도 현지 북한 외교관들로부터 지난달 초 조 전 대사대리가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조성길의 행방과 관련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조성길의 잠적 사실을 알게 된 북한이 특수요원을 로마에 급파해 조성길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정부도 조성길이 망명을 희망했다는 이탈리아 언론의 보도들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미 국무부는 조성길의 망명 신청 여부를 질의한 언론들에 “신변 안전,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사건과 쟁점에 대해서는 내부 지침에 의해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대미 외교 소식통은 “조성길이 이미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며 “아직 이탈리아 등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미국은 과거 1997년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의 망명을 받아들인 바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조성길이 미국 망명을 원한다면 인권 문제인만큼 미국 정부가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북한정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관리라는 점에서 조성길의 망명 배경과 의도를 파악하는 데 긴 시간과 많은 절차가 필요해 (망명) 심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망명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까지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북한은 그동안 엘리트층의 탈북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조성길의 망명은) 전례없는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합법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모색했던 김정은에겐 굴욕적 일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고위급 인사의 탈북은 북한정권에 큰 타격이라며 이런 사건은 정권에 대한 평양 엘리트 계층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사건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을 놓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발생했다며 김정은의 성격과 외교 정책이 새어나갈 수 있어 외교관들의 탈북은 정권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한국 내 북한 전문가의 분석을 소개했다. 이 전문가는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20여 명의 북한 외교관이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북한 외교관의 망명을 꺼릴 수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북한 고위급의 망명은 한미와 외교를 추구하며 자신을 '지정학적 플레이어'로 만들어가려 하는 김정은에게 무척 당혹스러운 사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북한은 고위급 인사 망명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북한체제를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한국의 음모라고 주장해왔다는 설명이었다. 

힐 전 차관보는 “조성길의 잠적과 망명설이 미북 또는 남북 간 관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향후 미북, 남북 간 회담이 조율되는 과정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수는 있다”고 했다.

현재 조 전 대사대리의 행방과 관련해 이탈리아와 남북한,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등 복수의 제3국 정보기관이 관여해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조 전 대사대리 잠적설이 불거진 이후 침묵하던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은 6일 전날까지 비어있던 대사관 앞 게시판에 9월 남북정상회담 관련 사진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대사관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는 평가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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