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체제' 강요에 '금산분리' 규제까지...10월까지 매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이 올해 10월까지 금융 계열사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롯데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2년 이내에 금융 계열사들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 부회장은 3일 오후 5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2019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금융사 매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주회사를 만들고 난 다음에 2년 안에 해야 한다고 한 만큼, 올해 10월까지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2017년 10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푸드 등 4개 계열사 합병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소위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기존 순환출자 체제에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지주사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금융·보험업의 국내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한다. 롯데그룹이 올해 10월까지 금융 계열사를 모두 매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 2년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유예기간 내에 금융·보험업의 지분을 팔지 못하면 처벌을 받는다.

SK는 이같은 문제로 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소유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2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약 1달 뒤인 2018년 3월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방안 등을 내놓으며 기업 구조 개편안을 발표했고, 삼성그룹은 특별한 기업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자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삼성을 직접 겨냥하며 "삼성 개혁의 핵심은 금산분리 문제"라고 발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적으로 "SI·물류 등 비핵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의 대표적 금융 계열사는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와 함께 롯데캐피탈이 있다.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는 작년 11월 매각하기로 결정해 현재 매각 협상 중에 있다. 보험사와 카드사는 롯데 입장에서 향후 매출을 고려한다면 매각 결정이 비교적 쉬웠다는 평가다. 그러나 롯데지주가 지분 25.6% 보유하고 있는 롯데캐피탈은 이와 달리 일본 주주가 많고, 실적이 좋아 매각에 신중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의 상장 문제도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롯데그룹이 지주사 체제 전환을 위해 계열사들의 중간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를 상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는 지난해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이 보유한 롯데케미칼 지분 23.24%를 매입해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황 부회장은 호텔롯데 상장과 관련해 "사업 성과가 나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황 부회장이 이같이 말한 것은 호텔롯데의 기업가치가 최근 급락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호텔롯데는 2016년 기업공개(IPO) 추진 당시 영업가치가 12조원대였지만 중국 현지 사업 부진으로 가치가 급락한 상태다. 한편으론 최근 코스피 지수가 2000대 아래로 내려가는 등 좋지 않은 주식시장 분위기도 향후 상장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올 한 해 롯데그룹이 기업 구조 개편 문제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굵직한 대기업들도 공정위가 추진하는 소위 '기업 지배구조 개편'으로 골머릴 앓고 있는 중이다. 더군다나 삼성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면 금산분리법에 따라 삼성증권이 해외 자본에 매각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일본의 도요타, 프랑스의 루이비통 등, 한국 외 기업들은 사정에 따라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가 나서 기업구조를 바꾸라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고 있다. 이에 국내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기업들은 올 한 해, 향후 먹거리에 대한 걱정보단 지배구조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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