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칼럼] 냉정과 열정 사이, 승리하기 위한 성찰
[이정훈 칼럼] 냉정과 열정 사이, 승리하기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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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치밀한 전략과 뛰어난 외교술로 조선 통치 기반 확립
김정은의 비서 역할하는 文대통령...연일 친중 행보-최악의 한일관계 만들어
대통령과 여당이 자살골을 넣을 때까지 기다리는 무력한 보수우파 정당
준엄하고 냉철한 인식 필요한 시대...실력 기르고 대안 제시해야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

당시 30대의 젊은 교수였던 필자는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의 여름방학을 일본에서 보냈다. 이토 히로부미 연구에 천착했던 여름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습기 많고 무더운 일본, 특히 교토의 날씨는 필자의 헤어 스타일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데 기여했다. 탈모의 시작이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일본의 치밀한 전략과 이토의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 당시 일본학계에서도 다수파는 이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의 공부가 이후 친분을 맺게 되는 다키이 가즈히로 교수의 이토에 관한 긍정적인 학설들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이 때 ≪황성신문≫에 1905년 6월 12일부터 6월 21일까지 6차례에 걸쳐 利龍子라는 이름으로 기고된<헌정쇄담>의 저자를 찾고 싶었다. 근대 헌정과 흠정헌법에 대해 설명한 이 글의 저자는 누구일까? 국내 역사학계에서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 누구라고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문고판으로 출판된 이토 히로부미의 메이지 헌법에 관한 해설서 “헌법의해”를 대학 내 카페에서 탐독하게 된다.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을 때 <헌정쇄담>과 그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 이토의 메이지 흠정헌법에 관한 해설을 국내 지식인에게 선전하기 위해 황성신문에 연재한 것이었구나”, 그 때부터 “조선을 보호국화 하고자 했던 이토의 전략들이 입체적으로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미 통감부를 설치하기 전 프랑스가 알제리를 통치했던 모델과 영국이 이집트를 통치했던 모델을 비교-분석하여 조선 통치의 방향을 수립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고 유리한 조약을 맺기 위해 이토는 루스벨트(T. Roosevelt) 미국 대통령의 하버드 로스쿨 동창생인 가네코 겐타로(金子堅太郞)를 특사로 미국에 보내 중재를 부탁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러시아 내부의 반전여론을 일으키고 국내정치를 분열시키기 위한 공작도 준비되었다. 이러한 긴박한 시기에 조선의 한심한 대응과 전략을 설명하는 일은 지면을 낭비하는 일이기에 생략한다.

헌정연구회의 일원으로 이토의 메이지 헌법과 헌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이러한 개혁을 원했던 이준의 절망을 생각해 보자. 헤이그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절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그 시대 이후 21세기가 되었지만, 우리가 변한 것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기시감인가. 이토가 미운데 왜 미운지는 잘 모르겠고,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일본만 미워하면 될 것 같은 바로 그 망국적 무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동맹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미국을 우선하는 미국으로 미국이 변신하는 와중에 한미동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은 이미 그 때의 일본이 아니요,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데 아직도 일본의 침략을 걱정하는 한심한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인가? 핵미사일을 만들어서 우리를 위협하는 김정은의 비서 역할을 대통령이 자임하고 나선 이후, 연일 친중 행보하며 최악의 한일관계를 만들어 놓고는 A4 용지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처신하는 신비한 외교술을 보면서도 욕설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야당과 소위 우파들을 볼 때 결국 망국일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도 기우일까?

구한말시기를 연구하면서도 일본정치사와 일본측 사료조차 검토하지 않고, 국내 사료만으로 울분에 찬 대하소설을 쓰는 좌파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는 무의미한 소일을 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외교로 국민 생존과 국가 존립의 기반마저 흔들고 있는 한심한 정부 탓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파를 자임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잘 정리된 강의보다는 시원하게 주사파 욕하는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곧 자살골을 넣을 것이기 때문에 운동장에 드러누워 그 날만 기다리는 축구선수가 되어버린 자칭 보수우파 정당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축구팀이 유지되도록 돕는 관중 덕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찰지게 욕할수록 독립과 건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실력을 기르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세력이 자살골을 넣든 스스로 자멸하든 선진조국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젊은 혈기에 감히 한 마디만 더해보자. 모든 것이 음모였다고 치자. ‘마가렛 대처’에게는 왜 음모가 효과가 없었을까? 레이건 시대에도 수많은 음모가 있었다. 그들은 왜 레이건 정부를 쓰러뜨리지 못했는가? 음모의 강도가 약해서인가? 아니면 그 때는 소련 스파이가 없었는가?

유능한 인재발굴에는 관심도 없고, 조선 숙종 대의 붕당정치를 보는 것과 같은 후진적 정치 관행과 계파싸움으로 얼룩졌던 지난 총선 당시 여당의 몰골을 상고해 볼 때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폼생폼사보다 실리를 추구했고, 합리적 대안을 늘 고민했던, 적이지만 배울 것이 많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상고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그는 중재자로 명성을 날렸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정파가 대립하여 각을 세울 때마다 그의 중재력은 빛을 발했다.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다가도 일본에 해가 되면 당장 멈출 줄 알았던 유신의 리더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들은 정치적 과오를 무조건 용서하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다. 왜 식민지가 되었는지조차 한 번도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 적도 없이 그저 일본 탓 미국 탓만 하면서 신파극을 역사로 둔갑시켜 놓고, 산업화의 단물만을 마시던 우리가 새롭게 맞이하게 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냉철한 성찰과 합리적 대안을 위해 움직이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2014년 아베노믹스가 발표되었을 때 일본의 한 유명 국립대에 방문교수로 지내고 있었던 필자는 경박하게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정책을 비웃었다. 지금 반성하며 그들의 저력과 축적된 시간이 주는 실력을 배워야 한다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준엄한, 그러나 냉철한 인식이 필요한 시대다.

이정훈 객원 칼럼니스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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