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길, 바라빠의 길 [김원율]
예수의 길, 바라빠의 길 [김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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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율 시민기자
김원율 시민기자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왜 우리는 2천년 전에 태어났던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가? 지금 이 나라의 위정자, 이 나라의 교회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랐던 예수의 길을 걷고 있는가, 현세에서의 해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유대를 파멸로 이끌었던 바라빠의 길을 걷고 있는가?

예수가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면서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한명의 유대인이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바라빠였다. 열성당원으로써 로마를 무력으로 몰아내고 유대의 독립된 왕국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지녔던 열혈 청년이었다. 당시 유대민족은 강대국의 피압박민족으로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고난과 굶주림을 없애 줄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빠는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유혹한다. “우리가 힘을 합쳐 악의 세력인 로마인을 몰아내고 새로운 다윗 왕국을 건설합시다. 당신은 유대 지파의 다윗왕의 후손이요,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소. 그러니 당신의 지혜와 신원(身元), 백성의 신망과 나의 무력과 강건함이 합쳐진다면 천년왕국을 세울 수 있소. 다윗 왕의 용맹과 솔로몬왕의 지혜로 예루살렘 도읍이 번영을 구가하였듯이 나와 당신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이며, 눈 아래 보이는 저 세상을 당신과 나의 뜻대로 다스릴 것이요.”

“아버지의 뜻을 나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길은 우리의 영혼이 투명해지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모르면서 단지 압제자를 격멸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지금 로마인을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는 한 이 나라의 평민들은 또 다른 압제자의 포악함에 종속될 뿐이지요. 내가 가는 길은 당신과 다릅니다. 이 땅에 진정한 하느님의 왕국이 세워질 때 로마는 하느님 아버지를 따르는 세상의 빛이 될 것이오.”

“아버지의 길이 무엇이오? 한갓 이상에 취해서 백일몽같은 말씀을 늘어놓고 있군요. 나는 당신이 예언자요, 세상의 고난을 없애줄 수 있는 메시아라고 생각하였소. 로마의 수탈이 없다면 우리 백성들은 한결 안락하고 배부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만을 내세워서 지금 여기에서 백성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당신을 진정 메시아라고 할 수 없소이다. 그리고 어찌 아버지의 뜻을 묻지도 않고 그분의 뜻을 속단한다 말이요. 당신이 군대를 지혜로 이끈다면 아버지께서도 그 분의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당신을 보호할 것이오. 예언자가 말했듯이 당신이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날린다하더라도 아버지께서 보내신 수호천사들이 당신을 보호하여 당신의 발끝하나 다치지 않게 하실 것이오.”

“당신은 지금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여 낙원에서 쫓겨난 사탄의 길을 걷고 있소. 내가 어찌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 다른 길로 갈 수 있단 말이오. 어찌하여 아버지의 뜻을 내가 시험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소. 하느님 아버지께 맡겨야 합니다. 당신은 예언자가 아닐뿐더러 이 세상을 심판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 않소. 나는 사랑을 심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로마인도 언젠가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오. 나는 그날까지 아버지의 뜻을 백성에게 심어줄 것이오. 죄인들, 미천한 이들, 병자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고 그들의 마음과 몸을 위로하고 치유해줄 것이오. 바라빠 당신의 무기와 살인은 당신을 옥죄는 죄악이 되어 당신을 하늘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하시오. 나는 나의 뜻대로 하겠소. 로마인들을 장터에서, 생활하는 곳에서 단검으로 처단할 것이오. 그리고 누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지 언젠가 판명날 것이오. 내가 로마인들을 모두 이 땅에 몰아내는 날, 나는 다윗의 왕관을 쓰고 나의 자손들은 영원히 다윗의 영광을 계승한 위대한 왕으로 나를 찬양하게 될 것이오.”

“아! 어찌하여 당신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선현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하였소. 사랑의 씨앗은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지만 이 사랑의 불이 하느님의 영으로 타오르는 날이 올 것이오. 그때는 세상에서 나의 길이 비록 보잘 것 없고 현세에서 덧없이 끝나버린 의인으로 폄하하겠지만 나의 때가 올 때에는 세상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고 다시 용약할 것이오. 지금 당신은 우선은 로마의 일부분을 파괴하고 그들에게 승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세상의 끝가는 곳까지 세력을 넓힌 로마의 군대에게 패할 것이고 역사는 당신을 한갓 잡졸로 기억할 뿐이오. 잘 성찰하도록 하시오.”

유대인은 예수의 길을 버리고 바라빠의 길을 택하였다. 현세에서의 구원이 곧 메시아의 구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과월절 전날 죄수 중 한명을 풀어주는 전통에 의하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유대 군중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예수 대신 바라빠를 풀어달라고 소리쳤다. 빌라도는 이미 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으며 그의 가르침 속에 어떠한 폭력적인 가르침이 없었으므로 내심으로는 예수를 풀어주고자 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 민족에게 이 예언자의 피에 대하여 자신과 로마 제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다짐받았을 것이다.

바라빠는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득의양양하게 예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디 있소?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당신은 광야에서 외쳤소. 하느님의 나라가 겨우 이런 모습이오. 당신은 조금 있으면 가시관을 쓰고 온갖 모욕과 태형을 받고 중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상에서 고통과 후회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왕국을 건설할 것이오. 귀 기울여 들으시오. 저 유대의 함성을. 그들이 나를 풀어주라고 소리높이 외치고 있소. 나는 그들의 열정과 용기를 잊지 않고 그들을 이끌고 로마 제국을 이 땅에서 몰아내겠소. 다윗의 왕국을 건설하여 자손만대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이오. 당신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았음을 지금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잘 가시오, 하느님의 아들이여.”

“아버지의 뜻은 누구도 알 수 없소. 나는 단 한번 나의 피로 세상의 욕망과 죄를 씻고자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을 올라갈 것이오. 지금은 당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고 의인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처럼 보일 것이오. 선대들이 기록한 지혜서를 읽어보더라도 의인은 비록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저 세상에서 하느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복록을 누리고 있소. 누가 승리할 것인지, 무엇이 진정 아버지의 뜻인지 당신이 깨닫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오.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며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게 되겠지오. 그러나 기억하시오. 누구도 하느님의 섭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바라빠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이 예언자의 말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예수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다. 바라빠는 로마에 맞서서 무장항쟁을 일으켰으나 피의 대가는 자신의 죽음과 유대민족의 파멸이었다.

예수는 죽음 이후에 부활하였다. 제자들은 용약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였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던가? 유대인에게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었던 로마는 그리스도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다.

오늘 이 순간에 예수의 길을 버리고 바라빠의 길을 택하는 그리스도교의 사제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제들과 한 묶음이 되어 이 나라의 위정자들도 증오심과 폭력적 청산으로 바라빠의 길을 걷고 있고, 이 나라 역시 2000년 전의 유대처럼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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