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중국' 선망했던 정권으로 난관 극복 가능할까

고구려 고려 조선시대 이후 다시 찾아온 '통일 중국' 위기
순순히 중화 질서에 굴복하면 조공국 국민으로 살아갈 운명

홍찬식 객원칼럼니스트 (언론인, 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중국은 한국에게 갈수록 힘들고 벅찬 상대가 될 게 분명하다. 한중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우리 사회의 고심도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 내 시각은 경제 사드 북핵 등 구체적인 사안에 집중되어 있었다. 좀 더 크게는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G2 대결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서 역사적 차원에서 중국을 되돌아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다.

거대한 영토를 지닌 중국은 끊임없는 내분을 겪었다. 지배 세력의 힘이 떨어지거나 허점이 생기면 각지에서 반란 세력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분열은 통일을 낳는다. 대륙의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어 온 것이 중국의 역사다. 한국이 반드시 상기해야 할 점은 중국에 통일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한국을 침략했다는 사실이다.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예로 들어보자. 고조선이 중국 한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 것은 기원전 108년이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한 때가 기원전 202년이므로 중원 장악을 완료한지 94년 만에 주변 국가인 고조선을 손 본 것이다. 곧바로 고조선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건국 초기에 내부를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나라에 이어 등장한 수나라는 서기 589년에 중국을 통일한 뒤 9년 만인 598년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이후 수나라는 614년까지 모두 네 차례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나 결국 실패했다. 수나라를 이어 받은 당나라는 624년 대륙을 평정하고 21년 뒤인 645년 고구려 침략에 나섰다.

당나라 침략의 정점은 신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킨 뒤 668년 신라마저 지배하려 든 일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천운이 따랐다. 중국 북쪽의 토번이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오자 두 곳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 없었던 당나라는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토번이 없었더라면 통일신라도 없었고 오늘날 한국이라는 존재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 역사는 이후에도 반복된다. 한족이 아닌 이민족 왕조이기는 하지만 징기스칸의 원나라는 1206년 건국 이후 순식간에 중국 대륙의 주도권을 쥔 다음 1231년 고려를 침공했고, 청나라 역시 1616년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 건국 이후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1637년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대륙 장악 후 주변국 손보기’라는 역사의 법칙이 되풀이되는 배경은 간단하다. 주변국을 중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두는 것이 국방은 물론 중국 내부 지배에도 용이한 탓이다. 주변 국가들마저 중국 지배 세력에게 머리를 조아릴 경우 중국 내부의 주민들은 설혹 불온한 동기가 있더라도 일단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시대는 크게 달라졌어도 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여러 내부 문제를 안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내심 원하는 시나리오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장기간의 분열 상태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통해 일소하고 1950,60년대 문화혁명 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경제적 곤궁기를 거쳐 과거 위상을 회복했다.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을 때 중국이 한국에 특사를 보내 서둘러 진화에 나섰던 기억은 벌써 ‘옛 이야기’가 됐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2017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해서도 체류 기간 중 10번의 식사 가운데 8번을 ‘혼밥’으로 먹는 퍼포먼스를 중국과 세계에 보여주어야 했다. 우리 앞에 어느새 ‘통일 중국’이 다시 나타났음을 실감케 하는 역사적 장면이다.

한중 간 ‘침략의 법칙’이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은 당분간 낮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인식이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이 한국에 보여준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면 어떤 형태로든 한국을 길들이고 손보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겉으로 뭐라 흉을 봐도 결국 같은 편이고 한반도의 남은 반쪽인 한국만 굴복시키면 중국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중국과 관련한 역사의 법칙은 한 가지 더 있다. 중국이 내분에 빠졌을 때 한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이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는 5,6세기 때 서쪽으로는 요동반도와 동쪽으로 연해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땅을 지배했다. 당시 중국 내부는 남조와 북조로 나뉘어 분열 대립하고 있었다. 고구려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라고 자부했던 시절이다.

중국이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현대에 들어서도 두 번째 법칙은 성립된다. 한국의 경제발전 신화는 중국의 침체와 직접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소비가 늘어나자 미국과 유럽은 낮은 임금으로 저렴한 가격의 물자를 만들 수 있는 생산기지를 다른 지역에서 찾았다. 그 때 공산주의 실험에 빠져 있던 중국은 처음부터 교역 대상이 아니었고, 남미 쪽은 종속이론에 따라 서구를 외면하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 눈을 돌리게 됐고 이 기회를 잘 포착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패전국가인 일본이 단기간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 배경이다. 중국의 강대국 복귀와 함께 일본은 중국에 밀려 났고 한국 경제 역시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처지다. 중국의 국력이 더욱 커지고 한국이 중국이 요구하는 질서 체제에 순순히 편입될 경우 우리 후손들은 과거 조공국가 국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현 시점은 우리 민족에게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가적 위기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물론 옛날처럼 중국이 우리에게 절대적 존재는 아니다. 국방력 경제력 면에서 훨씬 우위에 있는 미국 등 다른 동맹 상대도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과거 어떤 나라였는데 우리한테 이러느냐”는 우월감과 위세로 우리를 몰아붙일 중국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이 중대한 시기에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운전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현실적 국력을 따지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정권 초기 “잘 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한번 믿어보고도 싶다. 걱정스러운 점은 그보다는 이 정권의 ‘사회주의 본능’이다.

최근 공개된 국회 헌법 개정안 초안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삭제하며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냈듯이 요즘 정국을 주도하는 세력은 국가 정체성을 사회주의 쪽으로 몰고 갈 기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끈 모택동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노무현 시즌 2’인 현 정부 내부에는 현대 중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운동권 출신이 많다. 어쩌면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짝사랑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백만 명을 살상한 중국의 문화혁명을 “모택동이 민중과 자신을 직결시킨 혁명”이라고 미화했던 리영희 교수를 ‘사상의 은사’로 모셨다. 리 교수는 문화혁명이 중국 내에서 역사적 과오로 드러난 뒤에도 ‘중국 인민의 발자취는 전 인류의 감탄을 자아낸다’고 2005년 마지막 저서 ‘대화’에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 시절 나의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중국이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사드 배치를 온갖 이유를 내세워 질질 끈 것이나, 굴욕적인 대중(對中) 외교 행보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외교와 안보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사회주의 중국’에 기울어진 세력들이 중국과 외교를 할 경우 국가적 난관 돌파를 기대할 수 없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짝사랑 상대는 결코 이길 수 없으며 그에게 결국 매달리고 만다는 것을.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언론인, 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