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칼럼] 반문연대, 그들이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김규나 칼럼] 반문연대, 그들이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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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벌린 워 단편소설 ‘러브데이 씨의 짧은 외출’
1천만 표 결집의 지름길은 사기 탄핵에 대한 인정과 사죄
쉬운 길 막아놓고 멀리 돌아가는 반문연대,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포스트 대한민국의 열쇠는 원칙을 지키고 근본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
탄핵 주범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근혜의 귀환'이 선결조건임을 잊지 말아야!
김규나 작가
김규나 작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야심이 있죠. 내게도 있답니다. 한 가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충분합니다.” 

영국 소설가 에벌린 워(Evelyn Waugh)가 쓴 단편소설의 주인공 러브데이는 정신병원에서 35년째 수감 중이다. 젊은 시절,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여자를 밀어 넘어뜨리고 목 졸라 죽인 전과가 있지만 교도소의 모범수처럼, 그는 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잡기에도 능하고 가전제품도 수리할 줄 알며 다른 환자들까지 상냥하게 돌봐주는 그를 의료진조차 병원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완치가 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재미있는 증상’을 가진 환자로 분류된 러브데이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그를 책임질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정상적인 사람같이 보이던데. 평생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버지의 병문안을 왔다가 러브데이의 사정을 알게 된 안젤라는 '정의감 때문에‘ 우울해진다. ‘참 좋은 분’으로 보이는데다 ‘아주 정상적’이고도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평생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이 '옳지 못한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법전을 뒤지고 의사와 변호사, 관리들을 만나 협조를 구한 끝에 안젤라는 러브데이의 퇴원을 허가받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그가 자유를 얻어 병원을 떠나는 날, 성대한 환송식이 열린다. 의사는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러브데이를 격려했고, 간호사들은 은시계를 선물했으며, 자신이 황제라고 착각하는 환자들은 저마다 그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러브데이는 병원을 나간 지 두 시간 만에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온다. 정말 즐거운 외출이었다며, 앞으로는 병원을 떠나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한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길가에서 부인용 자전거 한 대와 목이 졸려 죽은 여자가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사람은 변할까. 정신병 환자가 아닌, 인간 내면에 깊이 잠재된 욕망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도 성향이 바뀌는 게 쉽지는 않지만, 교육을 통해 오랜 기간 생각을 키워온 성인이라면 어렵다.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권이 얽힌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 왔다면, 또 앞으로도 그 우물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건 더욱 더 어려운 일이 된다. 자신이 믿어온 것과 상치되는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게 심리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 사회적 생존을 위협받는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정치인들이 반문(反文)연대를 외친다. 아무 죄 없이 수감되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통을 2년 가까이 외면했던 사람들이 ‘정치노선 차이는 뒤로하고 조건 없이 단결해야 한다.’며 마이크를 잡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문이 나의 정체성’이라 선언해서 스타가 된 정치인도 있다. 이 나라를 살리려면 하나로 뭉치겠다는 정치인들을 믿어줘야 한다고 목의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마치 정치세력 단일화가 지상 최대 과업이라도 된 것 같다. 

사기 탄핵을 방조했고 사기 탄핵을 지지했고 사기 탄핵을 완성한 그들이, 공동의 적으로 지목한 그 사람을 맨 위에 앉혀놓은 일등공신들이 왜 이제 와서 반문연대를 외치는 것일까. 왜 하필 이 중요한 시기, 숨죽여 지켜보던 우파 민심을 친 반문연대와 반 반문연대로 갈라놓은 것일까. 무엇보다 반문연대는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없는 목표이다. 문을 반대한 뒤 그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반문연대가 도달하려는 종착역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 대해 어느 누가 명확한 답을 해주었던가.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하다고 느낄수록, 인간이란 본래 착한 마음을 가진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러브데이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었던 안젤라처럼, 상대가 순한 양처럼 보일 때, 새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무 의심 없이 돕고 싶어지는 이유이다. 과거 오류에 대해 일언반구 후회나 반성이 없어도 포장지로 한 겹 둘러싼 말 한 마디만 하면 영웅이 나선 것처럼 반긴다. 자기 안의 착한 마음과 상대에게도 있으리라 믿고 싶은 선한 의도를 결합시켜 세상에 보기 드문 '전사'가 나타났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신념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인생이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최소한 코가 깨지는 부상을 입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개인들의 이합집산이나 전혀 다른 세력 간의 합종연횡은 가치관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이 양쪽 모두에게 있다고 판단될 때만 이루어지는 손익계산의 문제다. 최소한 지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이 떨어져야 연합이 가능해진다. 

반문연대보다 훨씬 쉽게,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활과 복귀를 외치면 된다. 박근혜 지우기에 열심이었던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무죄와 청렴과 투철한 안보관을 증명하고 탄핵의 근거가 되었던 소문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했다. 앞으로 바로잡겠다.’며 석고대죄 쇼라도 한다면 최소 1천만 표가 결집한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의 정통성을 세운 다음 '무식한 박빠'라는 멍에를 벗기고 ‘근혜의 부활’을 지지하는 세력을 집결시키면 대한민국 수호 세력과 반 대한민국 세력이 자동으로 분리된다. 고작 반문연대를 하냐 마냐로 싸울 일도 없다. 게임의 크기와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왜일까. 왜 그들은 크고 넓은 길을 애써 외면하고 그토록 멀리 돌아 좁고 낮은 길을 힘들게 고집하는 것일까. 왜 이토록 옹졸하고 추잡한 싸움의 구렁텅이 안에 유권자들을 가둬두는 것일까. 

이 나라를 바로잡는 길은 단 하나다. 탄핵 세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박근혜 대통령의 복귀다. 이것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 외는 모두 말장난, 자기 정치를 위한 변명이다. '근혜의 귀환'이 포스트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과 포스트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세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거꾸로 돌던 시계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똑바로 돌기 시작하는 순간, 그 상징은 박근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근혜의 귀환’은 포스트 대한민국의 이전과 이후, 두 세계를 구분 짓는 역사적 경계선이다. ‘승리한 자가 진실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 역사란 ‘승리한 자의 기록’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들이 거짓과 싸워온 치열한 투쟁 기록’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죽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근혜의 귀환’이 갖는 의미이며, 이러한 우주의 법칙을 믿는 사람, 이러한 생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긴 사람들만이 포스트 대한민국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나가면 뭘 하실 생각이에요? 여기서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텐데요.”

“무엇인지 묻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그 일을 하고 나면 좀 더 상냥하게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젤라가 물었을 때, 러브데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러브데이가 앞뒤로 늘어놓은 번드르르한 말과 안젤라 자신의 선한 마음에서 그려낸 상상력이 더해져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반드시 저 사람이 잠시나마 외출할 수 있게 해줄 테야.”

자유를 얻어 러브데이가 하려는 일을 안젤라는 자기 기준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러브데이의 욕망은 전혀 다른 데 있었다. 반문연대를 하겠다는 사람들과 그들을 믿고 지지해주자는 사람들의 꿈 역시 동상이몽은 아닐까. 

과거를 ‘파묻자’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사람들이다. 중도민심은 끌어안고 가야 한다면서도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는 태극기 민심만은 꾸준히 외면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정답게 손을 잡고 사기 탄핵을 무효로 만들어줄까? 탄핵 조작자들을 처벌해줄까? 무고한 대통령의 무죄를 증명하려 할까. 안보와 경제가 다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방관만 하던 사람들이 하나로 결합해서 죽어가는 대한민국을 살려낼 수 있을까?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믿는 유권자라면 단 한번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질문해야 한다. 왜 청렴결백한 대통령의 복귀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그동안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의 입에서 '대통령 원상복귀'라는 말은 왜 금기어가 되어버렸을까. 탄핵이 불법이었다는 게 차근차근 밝혀지는데도 ‘정치적 무능’이나 ‘무식한 박빠’나 ‘법적 불가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복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왜 입을 막아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왜 지금 반문연대를 외치는 것일까. 반문연대가 성공해서 최고 자리가 공석이 되면, 그 빈자리에는 누가 앉게 되는 것일까. 반문연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머리에는 혹시 그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단 한 명의 지배자 따위 걷어차 버리고 그들 모두, 최고 권력을 파이처럼 나눠 먹고 싶은 것은 아닐까.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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