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칼럼] 상업 예찬
[박정자 칼럼] 상업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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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 전공.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서울대 불어불문학 전공)

미션 콘셉시온과 덕수궁 정관헌

미국에서 ‘미션 콘셉시온’이니 ‘미션 에스파다’니 하는 이름의 오래된 교회들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텍사스에는 왜 샌 안토니오나 엘 파소 같은 스페인 식 지명이 많고, 켈리포니아에는 왜 샌프란시스코니 샌디에고 같은 도시명이 많으며, 서부 영화에는 왜 리오그란데 같은 스페인 단어가 등장하는지 알게 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천상의 음악이 펼쳐지던 영화 ‘미션’도 비로소 확연하게 시간과 장소가 특정되었다. 텍사스와 켈리포니아는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미합중국으로 편입되었고, 그 이전 110년간 스페인과 멕시코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텍사스 샌 안토니오의 미션 콘셉시온
텍사스 샌 안토니오의 미션 콘셉시온

넓은 초원 한 가운데 있는 샌 안토니오의 미션 콘셉시온. 흐린 겨울 대기에 녹아든 교회 건물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떠날 땐 뭔가 채워지지 않은 듯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초원 한 귀퉁이 격조 높은 카페 하나만 있었다면, 거기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스페인 콜로니얼 양식의 교회 건물을 여유롭게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3백 년의 세월이 좀 더 그윽한 인문적 향취로 다가왔을 것이다. 문득 문화재의 가치는 옆에 상업적인 카페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수궁 정관헌(靜觀軒)은 전통양식과 서양 양식이 절충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콜로니얼 양식의 베란다 난간에는 박쥐, 소나무 등 전통 문양이 투각(透刻)되어 있고, 열주(列柱)와 처마 사이에는 다채롭게 조각된 목재 아치가 마치 레이스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다. 어쩐지 러시아 풍을 연상시킨다. 구한말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덕수궁 정관헌
덕수궁 정관헌

이 아름다운 건물이 아주 고급스러운 카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나는 기둥 너머 텅 빈 돌바닥을 보며 상상했다. 대한제국에 대한 향수는 전혀 없지만, 고종이 커피를 마시던 곳이었다고 하니 나름 역사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곤룡포를 입은 조선의 왕이 서양의 음료인 커피를 마시는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도 재미있다. 끽다점(喫茶店)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그 카페에서 사람들은 도시의 소란을 잠시 잊은 채 이국적 건물의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문화재는 상업적인 카페가 있어야 아름답다고 생각 했다.

광화문 광장과 샹젤리제

한 페친이 광화문광장은 왜 타임스퀘어, 피카딜리 서커스, 샹젤리제처럼 되지 못할까?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뉴욕이나 런던이나 파리의 중심부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가 넘쳐나는데 광화문광장은 그렇지 못하다는 아쉬움의 토로였다. 그는 그 이유를 ‘상업의 부재’ 때문이라고 했다.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미션 콘셉시온이나 덕수궁 정관헌에서 내가 느꼈던 아쉬움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윤동기를 천시하는 엄숙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모든 고상한 것에 풍미와 아취를 더 해 주는 것은 철저한 이윤동기의 상업이었다.

샹젤리제 대로변 카페 테라스는 음료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즐겁게 환담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붐빈다. 파리지앵과 관광객이 혼합된 유쾌한 군중의 에너지가 도시에 생생한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은 언제나 천막과 시위대로 음산하게 뒤덮여 있어 흙빛으로 꺼멓게 죽어 있다. 어느 어스름 저녁엔 정체 모를 거대한 종이 인형들이 수숫대처럼 가득 메우고 서 있어, 마치 귀신 내린 무당 집 같았다.

한국인의 뿌리 깊은 상업 천시

우리의 조선 사회는 상업을 한없이 천시했다.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주자학의 영향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사민론(四民論)의 순서가 보여주듯 사대부가 제일 위 계급이고, 다음이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 그 다음이 도구를 만들어내는 장인,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상인이었다.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조선 사회를 지탱하는 키워드였다. 쌀이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으므로 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이었다. 반면에 상인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고 남의 물건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하여 말종의 인간이라 생각했다. 조선의 화용론(話用論)에서 본(本)은 농업과 동의어이고, 말(末)은 상업과 동의어였다. 농업을 진작하고 상업을 억제하라는 무본억말(務本抑末)이 조선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이념이었다.

양반사회의 후진성을 조롱하고 청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던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반계 유형원은 지방의 정기 시장인 장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터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술 마시고 절제를 못해, 풍속을 해치고 도적만 양성되기 때문이라고 했다(반계수록). 다산 정약용은 “말업이 본업을 짓밟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탄하면서 정조 임금에게 ‘말업을 억압’하라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실학파의 대가 연암 박지원(朴趾源)조차도 한문 소설『허생전』에서 상업을 천시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남산골 샌님 허생은 돈 벌어오라는 아내의 말에 글 읽기를 멈추고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곧장 한양 갑부 변씨로부터 1만 냥을 빌린 다음, 이 돈으로 안성시장에 가 과일을 싹쓸이한다. 과일 값이 10배로 올랐을 때 팔아 10배의 돈을 남기고, 이번엔 제주도로 가 말총을 싹쓸이한다. 말총 품귀현상으로 망건을 만들지 못하게 되자 망건 값이 10배로 오르고, 당연히 말총 값도 오르니, 결국 처음 빌린 돈은 100배로 불어났다. 다음엔 변산에서 들끓던 도적 떼를 무인도로 데려가 일본의 기근을 도와주며 돈을 번다. 마침내 재산은 은(銀) 백만 냥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조선의 자연 경제를 비판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양반들의 무능을 풍자한 듯하다.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서양 경제학 이론마저 살짝 엿보인다.

그러나 섬이 비좁은 것을 한탄하여 돌아가기로 마음먹는 뒷부분에서 고개가 조금 갸우뚱해 진다. 힘들여 번 재산의 절반인 은화 50만 냥을 바다에 그냥 쏟아 버리고, 배는 자신이 타고 나올 한 척만 제외하고 모조리 불태운다. 더군다나 나올 때는 섬 주민 중 글 아는 자들만 골라 배에 태워 데리고 나온다. 이 어처구니없는 결말은 아마도 돈은 하찮은 것이고, 글 읽는 선비만 중요하다는 이념의 표출인 듯하다. 허생 자신이 “만(萬) 금이 도(道)를 어찌 살찌운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조선 선비의 한계가 여실하게 느껴진다.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일반 국민 중에는 아직도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을 조선시대의 과거(科擧)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권력층은 자신들이 상인을 마구 호통 칠 수 있는 사대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기업을 제멋대로 압수수색하는 판검사들, 마치 유치원생 줄 세우듯 기업 총수들을 북한으로 데리고 가 김정은에게 인사시키는 정치가와 관료들이야말로 아직 전근대 조선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적 한국인들이다.

독일 정신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독일이 상업을 천시하는 국가였다. 상업의 발달은 부강한 사회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정치 체제 또는 국민성까지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지표다. 상업을 천시하는 사회는 사회주의 또는 군국주의 국가가 된다. 독일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헤겔은 『미학 강의』에서 독일인의 특징을 경건하고 소박한 시민성이라고 했다. 신앙심이 깊지만 열심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지와 환경을 단순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면서 세속적으로도 부유하고 소박하게 산다고 했다. 진보적이지만 옛 관습에 충실하며, 조상들의 강인함을 계승 보존하고, 자유를 지니면서도 철저하게 조심하며, 자기 삶에 만족 한다고 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들의 민족사랑은 유별난 데가 있었다. 이런 애국심이 나중에 나치의 인종 우월주의로 이어졌을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인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헤겔과 달리 독일의 국민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독일인에게는 물론 많은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지런하고 기강이 서 있으며, 양심적이고 성실하다. 어떤 과제에 착수하면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하게 일하고, 강한 질서의식과 의무감이 있으며, 육체적 위험 앞에서는 강한 용기를 보이고, 개인적 희생도 기꺼이 감수한다. 권위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미덕도 있다.

이런 독일식 미덕들은 구 프러시아 제국(1871~1918)과 공화국(1918~1933)에서 조심스레 육성된 것이라고 하이에크는 말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은 더 거슬러 올라가 이것이 17세기 30년 전쟁의 결과일 것이라고 말한다. 독일인 3명 중 1명꼴로 죽었던 가혹한 전쟁을 거치는 동안 독일인들은 법과 질서를 담당하는 계층에 대한 두려움을 체화시켰고, 그것이 수백 년 간 내려오면서 독일인들을 권위 앞에 복종하는 국민성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가설이다. 하이에크와 글뤽스만의 추론을 읽은 후에 나는 문득『성(城)』이나 『심판』같은 카프카의 소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 K의 불가해한 깊은 불안감은 사법(司法) 앞에서의 인간의 원초적 공포감이었던 것이다. 원시인들이 거대한 야수 앞에서 느꼈던 공포감, 근대인들이 총 칼 앞에서 느꼈던 공포감을 현대의 우리는 사법 앞에서 느낀다. 현대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 칼이 아니라 사법이므로.

독일과 자유주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에게 부족한 것은 타인의 의견에 대한 관용과 존중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다. 윗사람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방어하는 올곧은 성격이나 결단성도 부족하다. 권력에 대한 건강한 경멸과 혐오가 있어야만 우리는 권위를 절대시하거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 독일인들에게 이런 당당한 태도가 없다는 것은 그 사회에 자유주의적 전통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런 성격은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이 있는 사회만이 창출할 수 있는 장점이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에게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자질, 예를 들면 친절함, 유머감각, 개인적 겸손,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 이웃의 좋은 의도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도 부족하다. 주로 개인적 미덕들이다.

개인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미덕들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미덕이다. 이러한 미덕들이야말로 사회적 접촉을 부드럽게 하고, 위로부터의 통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주는 행동 양식이다. 개인주의적 혹은 상업적 유형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그러나 집단주의적 혹은 군사적 유형의 사회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는 미덕이다.

당연히 독일 정신은 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와 매우 유사하다. 20세기 초 슈펭글러(Oswald Spengler)가 말했듯이 독일인들은 ‘권력이 전체에 속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사람들이다. 전체 안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 자기의 자리가 주어진다. 지시하는 사람 따로 있고, 복종하는 사람 따로 있다. 이런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거부되고 경멸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나치는 독일 정신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장사꾼과 공무원

영국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되어 있다면, 독일 사회는 명령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로 구분되어 있다. 영국이 장사꾼의 나라라면 독일은 공무원의 나라다. 공무원의 나라에서 명예와 지위는 거의 전적으로 관료들의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직업은 공적인 일에 비해 열등하거나 심지어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관료 혹은 변호사 아닌 다른 직업들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나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 한 마디로 상업을 경멸하는 사회다. 물론 하이에크가『노예의 길』을 쓴 것은 1944년이니, 그 후에 독일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상업에 대한 경멸은 마르크시즘의 중심 사상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유대인의 ‘돈만 아는 상업적 기질’을 비판하며, 미래의 공산주의적(communist) 세계에서는 자산가의 재산이 수용되어야 하고, 사적 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에 소비에트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마르크스주의적인 나라는 독일이었다.

장사꾼의 나라 영국은 모든 점에서 독일의 대척점에 있다. 국민들은 독립심과 자조(自助) 정신이 강하고, 모든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국가나 사회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인이 주도하여 일을 처리 하고, 이웃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다른 타인의 생각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지만, 권력과 권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복종하지 않고 건전한 의구심을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체제를 무너뜨릴 정도로 과격하게 저항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영국이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상업이 번성하고 상업을 중시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바로 상업에서 유래하는 이념이다.

상업은 사람을 문명화시킨다

상업이 아예 없는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 전체주의 국가, 군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수학 공식처럼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한국 사회가 부자와 가난한 자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저주를 퍼붓는 좌파들, 이윤을 남기는 것을 죄악시하여 원가를 공개하라고 기업을 압박하는 좌파 정치인들은 결국 ‘지시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으로 구분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언제나 ‘지시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겠다는 속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만 벌면 부자를 따라 잡을 수 있지만, 지시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으로 구분된 사회에서는 계급이 고착된다는 것을 한국의 좌파들은 모르고 있다. 북한이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상업은 모든 이념을 초월한다. 이념에 따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거래한다. 상업은 또한 정직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신뢰가 없으면 상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망하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가격과 자유의지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내가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발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성격이 글자 그대로 문명화된 사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결국 상업에는 사람들을 문명화시키는 거대한 힘이 있다. 상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독립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수준 높은 시민이 되며, 거리는 활기에 넘치고, 도시는 명랑한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일본 국민들이 친절하고 겸손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개인적 미덕을 갖고 있는 것도 상업이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상업에 비교적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남부와 서부 그리고 한자(Hansa) 동맹에 속한 도시들의 옛 상업지역 사람들이 다른 독일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친절하고 상냥하며 유연하다고 한다. 상업에는 사람을 문명화시키는 힘이 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다르게 ‘임대(賃貸) 문의’ 표지판이 늘어나면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되어가는 서울을 보면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좌파는 언제나 과거를 말하고, 죽은 사람을 불러내며, 무당처럼 음습하지만, 우파는 언제나 미래를 말하고 생명을 말하며, 밝고, 생동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동감의 중심에 상업이 있다. 자유주의 우파에게 보석 같은 상업이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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