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보수정파, 정부에 대법원 무죄판결 무효 이끌어 내
파키스탄 이슬람, 21세기에 '신성모독죄'운용하며 타종교 말살
변호사 "파키스탄 정부는 대법원 명령조차 집행하지 못해"

비비의 무죄 판결에 격렬히 항의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시위대 [연합뉴슺 제공]
비비의 무죄 판결에 격렬히 항의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시위대 [연합뉴슺 제공]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신성모독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은 기독교인 여성의 판결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격렬한 항의를 벌여 사법부마저 굴복했다.

4일 AFP,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슬람 보수정파는 지난 2일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기독교 여성 아시아 비비(47)가 이미 무죄 판결을 받은 재판을 다시 받도록 압박해 기존 판결을 무효로 만들었다.

파키스탄 정부와 이슬람 보수주의 정당 TLP의 합의서에는 정부가 비비 판결에 대한 이의제기를 반대하지 않고 대법원 재심 전까지 비비가 출국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기독교 신자인 비비는 이웃 주민들과 언쟁을 하던 중에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독한 혐의로 2010년 사형선고를 받았다.

2009년 6월 마을의 한 농장에서 함께 일하던 무슬림 여성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무함마드는 우리를 위해 해 준 것이 뭐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는 게 주변 여성들의 주장이었다.

비비는 재판에서 신성모독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010년 1심에 이어 2014년 2심에서도 사형 선고를 내렸다.

비비는 8년간 독방에 수감돼 있다가 대법원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모든 공소사실에 지난달 31일 무죄를 선고해 석방됐다.

무슬림이 국민 대다수인 파키스탄은 무함마드를 비판하는 이들을 극형에 처하는 신성모독죄를 운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연합뉴스 제공]

비비에 대한 무죄판결에 격분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비비를 잡아 죽이라"며 바로 항의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사흘 동안 대도시들의 도로를 막고 교통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폭력적인 시위를 벌여 파키스탄을 마비시켰다.

정부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협상이 타결된 뒤 비비는 다시 자유를 잃어버릴 위기에 몰렸다.

시위대 측의 변호사인 카리 살람은 "비비가 해외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를 가능한 한 빨리 출국통제 명단에 올리라고 대법원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비비에 대한 무죄판결을 끌어낸 변호사 사이프-울-물룩은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의 항의는 예상했지만 가장 아픈 건 정부의 대응"이라며 "파키스탄 정부는 대법원 명령조차 집행하지 못한다"고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다.

석방된 비비의 삶에 대해서는 "이의제기에 대한 대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종전과 비슷할 것"이라며 "감방에 들어가거나 안전 우려 때문에 홀로 갇혀 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이프-울-물룩은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며 지난 3일 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이런 시나리오라면 파키스탄에서 사는 게 불가능하다"며 "비비를 위해 법률 싸움을 하려면 일단 내가 숨이 붙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압도적 승리를 두고 파키스탄 언론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키스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 '돈'(DAWN·새벽)은 전날자 사설을 통해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믿지 않는 폭력적인 종교 극단주의자들에게 또 하나의 정권이 굴종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방송은 현재 여러 국가가 비비에게 망명을 제의했다고 보도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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