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편집'으로 발언의 본질 외면하고 '친일-민족비하'로 왜곡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 자극적 보도
문창극 교회 강연 내용 전문 읽어보면 전혀 다른 내용...독립운동가 자손을 친일파로 매도
보도 당시, 길환영 사장 해임 등 언론노조 KBS본부의 영향력 강해진 시점
보도 기자들, 모두 좌파 성향 언론노조 소속인원...보도 이후 여러 차례 상도 받아
KBS 보도 이후 상당수 매체, '친일파 문창극' 기정사실화하며 확산
당시 野圈 십자포화 쏟아내...與圈 일각에서도 부화뇌동
진실 추적보다 '마녀재판' 부추기며 무너진 언론신뢰
'악마의 편집' 논란 거셌지만...검찰은 '무혐의 처분'-방심위는 경징계 '권고' 그쳐

'곡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본뜻과는 달리, 좋지 않게 이해하다'로 나와있다. 한국 언론에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침소봉대하거나 곡해해 전달하며 진실을 오도한 사례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6월 10일 문창극 전(前)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날인 6월 11일 KBS가 보도한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홍성희 기자)> 제목의 보도와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김연주 기자)>라는 제목의 보도는 이런 종류의 대표적인 왜곡보도이다. 좌파 성향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본부(KBS 언론노조) 소속의 기자들이 쏟아낸 이 보도 후 상당수 언론사와 정치권은 '문창극 죽이기'에 경쟁적으로 나섰고 결국 문창극 전 주필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한 채 낙마했다. '악마의 편집'이란 말까지 나왔던 KBS의 '문창극 죽이기' 보도는 '공직자 인사 검증'이란 미명(美名) 하에 나왔지만 침소봉대와 전후 맥락 왜곡 등 전형적인 '가짜 뉴스' 성격이 짙다.

● '문창극은 친일-민족비하-노골적 정치편향성 지닌 인물'로 몰아간 KBS

KBS 9시뉴스 화면 캡처 ([단독] 문창극 “일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발언 파문/2014.06.11)

2014년 6월 10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지명했다. 바로 다음날인 11일 KBS는 <[단독]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홍성희 기자)>, <[단독]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김연주 기자)>, <문창극, 선거 국면마다 ‘노골적 정치 편향 칼럼’ 논란(정수영 기자)>를 KBS 9시 메인뉴스에서 1~3번 째 메인뉴스로 배치하며 문창극 후보를 난도질했다. 보도 제목과 인용 문구의 배치 순서도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대화했다.

이날 뉴스는 앵커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로 시작한다’며 ‘문창극 후보자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와 이어진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하며 시작된다.

먼저 홍성희 기자(이하 홍성희)는 당시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기독교 신자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과거 교회에서 강연한 발언들 중 일부를 인용한다.

<녹취> 문창극(총리 후보자) :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녹취>“남북분단을 만들게 주셨어. 저는 지금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녹취> 문창극(총리 후보자/2012년) :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가지고 경제개발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우리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란 말이에요."

이어 보도 말미에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일본이 이웃인 건 지정학적 축복’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며 문창극 후보자가 일본을 찬양하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두 번째로 이어진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 보도에서는 ‘민족 비하 논란’으로 몰아간다. KBS 최영철 앵커(이하 최영철)는 “민족 비하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삼는다.

KBS뉴스라인 화면 캡처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비하/2014.06.12)

김연주 기자(이하 김연주)는 문창극 후보자 발언 취지와 관련해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강연하던 문창극 후보자가 구한말 우리 민족성 이야기를 꺼낸다’며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민족성을 깨우친 게 기독교 정신이란 취지이다’라고 설명한다.

<녹취> 문창극(국무총리 후보/2011년 6월) :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녹취> 문창극(국무총리 후보자/2012년 6월) : "어느날 갑자기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 거에요.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거에요."

이어 “다른 강연에서는 815 광복이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또다른 강연에선 친일파 윤치호를 높이 평가한다”, “(윤치호에 대해) 영어를 잘 구사했다는 칭찬도 이어진다”고 설명하며 친일파라는 단어와도 엮는다.

KBS는 <문창극 “일본 지배 하나님의 뜻” 발언 파문>,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라는 두 보도내용을 연이어 내보내며, 국민들로 하여금 '문창극 후보자는 민족을 비하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숭앙하는 친일 사관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이후 세 번째 보도인 <문창극, 선거 국면마다 ‘노골적 정치 편향 칼럼’ 논란(정수영 기자)>를 통해 ‘친일-민족 비하-보수논객’이라는 식으로 다시 문창극 후보자의 이미지를 깎아내린다. 앵커는 “문 후보자가 중앙일보 재직 당시 쓴 칼럼들 역시, 거센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며 “정치적 중립성이 특히 요구되는 선거 때마다 노골적인 정치 편향성이 드러나는 칼럼을 써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골적인 정치 편향 칼럼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는 KBS앵커의 발언은 군색하다. 

●발언 본질 외면한 채 의도적으로 몰아간 KBS ‘악마의 편집’

KBS는 부분적인 발언만 인용하며 전체적인 맥락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해 문창극 후보에 대한 사회적 비난만 부추겼다. 적어도 KBS 기자들이 인용한 문창극 후보의 강연 전체를 꼼꼼히 살펴보면 본질적인 내용은 일본 지배를 옹호하는 친일 역사관이나 민족 비하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 전체 내용의 취지는 ‘우리민족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마땅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이 아니고, ‘당시 부패한 조선 상황에서 시련을 주어 더 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이라는 땅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크게 쓰이도록 하고 싶은 하나님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인간의 고난과 역사적 시련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는 기독교적인 관점에 기대어 풀이한 역사적 성찰이자 종교적 레토릭이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읽고 근면과 성실을 강조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문창극 후보자가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고 발언한 내용도 민족 비하가 아니라, 과거 외국인들이 바라보고 서술한 조선사회 모습에 근거하여 부패한 조선 상황을 설명한 부분이다. 

그는 또 ‘우리 민족이 선천적으로 게으르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졌으나, 당시 조선시대의 부패한 악습이 우리 민족을 궁핍하고 게으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연해주의 성공 사례’를 뒤에 들며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우리 민족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역설한다. 이어 악습을 끊고 1류 국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독교적인 교리가 전파되면서 부지런하고 근면해질 수 있었다고도 설명한다. 또한 당시 부패로 인해 ‘공산화’의 유혹이 강한 시점에 하나님이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남북 분단'이라는 시련을 주었다는 해석도 더한다.

이같은 전체 강연 발언 취지는 앞에서도 드러난다. 문 후보자는 해당 강연을 시작할 당시 “비행기를 타면 3등칸을 많이 타지만 가끔 2등칸을 타게 되면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 1등칸을 타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며 "나라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3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3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고, 1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1등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1등 나라가 되면 3등 나라보다는 개개인 삶의 고통을 덜 겪게 되기 때문에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국이란 나라를 왜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란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돼야 될 것 같다“라고 말한다.

전체 취지는 친일과는 전혀 관련 없으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수록 더 좋은 국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며, 좋은 나라로 만들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한다는 취지이다. 이런 발언 전체 의도에 대해서는 거론도 하지 않은 채 전후 맥락을 자르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자극적인 일부 발언만 부각하고 문제삼은 것은 '악마의 편집'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현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귀결시키는 해석에 대해 과거 희생된 이들마저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게 적절하냐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도인 문 후보자가 다른 곳도 아니고 교회에서 신도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 언론사가 최소한 '검증 보도'를 앞세웠으면 국민들에게 제대로된 판단의 여지를 주기 위해서 당사자가 말한 발언의 전체 맥락을 소개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KBS는 '문창극 발언'의 전체 맥락을 보도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KBS 보도 후 '문창극 죽이기' 경쟁적으로 나선 한국 언론 

KBS 보도가 이루어진 2014년 6월 11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지만 KBS 내에서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커졌던 시점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해 KBS 간부였던 한 방송인은 이번 이번 취재 과정에서 펜앤드마이크(PenN)에 "언론노조측이 파업과 압박으로 여론을 형성시킨 끝에 세월호 보도 외압 논란에 휩싸인 길환영 사장을 해임시키는 등 노조의 영향력이 커지던 시점이며, 내부에서는 노조 눈치보기에 급급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문제의 보도 역시 KBS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로 구성된 ‘문창극 총리 후보 인사검증TF'에서 보도한 내용들이다. (인사검증TF는 KBS가 공식적으로 만든 기구는 아니다) 해당 보도를 한 홍성희, 김연주, 정수영은 모두 KBS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로, 당시 문창극 후보 관련 보도 이후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PD연합회-언론노조KBS본부 등으로부터 각종 상을 받기도 했다.
 

홍성희 기자와 오마이뉴스 인터뷰 내용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CBS 노컷뉴스는 당시 KBS의 해당 보도에 대해 ‘길환영 사장 해임 후 KBS보도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KBS 언론노조 또한 보도자료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관련 뉴스가 '뉴스9' 톱뉴스로 나간다는 의미에 대해 "파업 승리와 길환영 사장의 해임 이후 '뉴스9'은 정부와 검찰에 대한 비판 기사가 눈에 띄게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KBS 언론노조의 권오훈 위원장은 "공정보도를 목표로 한 파업을 승리로 끝낸 만큼, 성역 없는 취재와 치우침 없는 보도로 잃었던 시청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른바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KBS의 문창극 관련 보도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KBS의 문제제기는 비판의 여지 없이 그대로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는 양상이었다. 많은 언론들도 KBS의 보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 프레임에 맞춰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KBS 보도는 좌파진영의 입김을 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여론의 무게추를 쉽게 이동시켰다. 한 시간이 넘는 교회 강연의 문맥을 자르고 표면적 발언 몇 개를 이어 붙여 평소 '근면-성실-개인의 노력'을 더 강조해온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을 졸지에 친일파로 둔갑시킨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2015년 10월 22일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독립유공자 후손이 맞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보훈처 관계자는 당시 “9월 30일 열린 보훈심사위원회에서 문 전 총리 후보자의 조부가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과 동일인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문 전 후보자가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을 신청한 지 1년 3개월 만에 최종 결론이 내려진 것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명확히 일치하는 자료를 확보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 사안의 성격상 신중하게 접근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KBS보도 이후부터 문창극 후보자가 사퇴하기 전날인 6월 23일까지 '문창극과 친일'이란 단어를 함께 포함한 언론보도 건수는 2,100여건을 넘어섰다. 여러 논조가 섞여있지만 상당수 매체는 '망언', '친일', '식민사관', '인사참극' 등의 표현을 활용하며 맹공을 펼쳤다. 강성좌파 매체인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에서는 ‘친일 발언’이라고 낙인을 찍었으며, 2주간 '문창극 후보' 관련 지면 보도건수가 200여건을 넘어섰다. 이들은 일 우익에서조차 “문창극처럼 훌륭한 한국인 있다니”라는 반응이 나온다며 일본과 문창극 후보와의 관계를 몰아가기도 했다. 이른바 '주류신문'들도 좌파매체보다는 덜했지만 문창극 후보자와 그를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한국 언론 가운데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 전문(全文)을 전체적으로 분석한 뒤 국민에게 객관적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전달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쉽게 자극적인 문구를 인용하고 쉽게 비난하는 세태였다. 신문과 방송 가운데 당시 문창극 후보자 발언의 본질을 전달하면서 '마녀 사냥'의 위험성을 바로 지적한 한국 언론은 정규재 현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이 논설실장을 맡아 오피니언면 제작 책임을 지고 있던 한국경제신문 하나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밖에 우파 성향 인터넷 매체인 뉴데일리도 KBS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대다수 언론이 이미 한 방향으로 기운 상황에서 극소수 경제지와 인터넷 매체로 이런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은 <문창극 발언을 어처구니없이 거두절미한 KBS>라는 6월 13일자 사설을 통해 “앞뒤 잘라내고 ‘조선인은 게으르다’고 말한 것처럼 편집한 것이 KBS의 놀라운 솜씨(?)”라고 지적했다. 이어 “총리 후보자는 당연히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보도는 다만 허위보도일 뿐이요, 부당한 왜곡"이라며 "초등학생 국어시험 문제로 출제돼도 당연히 오답이 될 것을 KBS는 정답이라고 우긴 꼴이다. ‘윗글에서 문창극이 주장한 것은?’이라는 사지선다형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 한번 풀어보기 바란다. KBS는 내부 심의를 거쳐 이 같은 부적절한 왜곡 보도부터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또 <그 시절의 '빨갱이' 못지 않은 지금의 '친일파' 딱지>라는 6월 14일자 사설을 통해서는 "작금의 현상은 언론의 습관적 과장보도 라고 이해해 줄만한 수준을 넘어선 심각한 사안”이라며 "긴 문장의 앞뒤를 잘라내 본인의 의사를 왜곡하거나 사장 검증이 지나쳐 조선시대의 사문난적식 옭아매기에 이른다면 이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삼류 궁중드라마의 부활이다. 언론사들이 표적 낙마를 경쟁하는 듯한 최근의 보도 흐름도 걱정스런 대목“이라고 당시 언론 보도행태를 비판했다. 이어 ”소위 친일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규재 당시 논설실장은 신문 사설 외에  '정규재TV'를 통한 영상칼럼에서도 KBS의 '가짜뉴스'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규재 당시 논설실장은 KBS의 보도가 나온 다음날인 2014년 6월 12일 '문창극 논란, KBS의 지력'라는 제목의 영상칼럼을 통해 "만일 이를 친일적 발언이라고 억지로 오해를 하고, 가짜로 오해를 한 듯이 만들어내고, 친일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을 하거나 앞뒤를 빼놓고 한 대목만 따와서는 친일적 발언인 것처럼 포장을 하려고 하는 것은 무지하거나 악의적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질타했다. 또한 "KBS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기자가 없습니까? 그게 궁금하다. 무엇을 왜곡하거나 악의적으로 과장 보도할 때, 그래도 본질상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근데 그것을 이건 건덕지가 아니다. 이야기의 본질을 한국인이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은 게으르지 않다는 얘기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KBS 보도 후 '좌우(左右)의 제도권 언론들'이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상 '문창극 죽이기'에 발을 맞추자 온라인 상에는 그의 발언 전문(全文)을 소개하며 '악마의 편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나왔다. 여러 소셜미디어에서는 “공공연하게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한다던 인물도 공직에서 한자리 하는데”, “천안함 폭침 부정, 보안법 폐지, 북인권법 반대하며 친북성향 활동은 공직자 나가는데?”, “공직에 나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조차 신앙고백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냐”며 반발이 거셌다.

물론 기자들 사이에서는 선배나 간부, 회사와 함께 호흡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부합하는 기사만 작성하기는 힘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언론 보도는 역사적 흐름에 변곡점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큰 영향력을 미치는만큼 적어도 본질을 추적하는 것은 놓치지 말아야 하며 침소봉대나 의도적 왜곡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언론이 보도한 단편적인 사실은 ‘사건의 진상이나 실체’에 대한 이해를 극단적으로 왜곡하거나 국민들을 호도하기도 한다. 모든 이슈에 대해 파악하기 힘든 일반인들로서는 언론에서 보도한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사실에 기반해 사건을 이해하기 쉬운만큼 언론의 신중한 보도와 개인의 비판적인 시각이 절실하다.

●당시 野圈, KBS 보도 계기로 거센 사퇴 압박...당시 與圈에서도 일부 가세

 KBS 보도 후 당시 야권(현 여권)에서는 문창극 후보자를 '친일파'로 몰아가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창극의 궤변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을 능멸하고 하나님을 팔아 하나님을 욕보이는 일”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안철수 공동대표도 “시중에는 박 대통령의 수첩이 아니라 아베(일본 총리)의 수첩에서 인사를 했다는 농담도 있다”며 “대한민국의 상식을 부정하는 사람을 고집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런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얼마전 돌아가신 배춘희 위안부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할지”라고 비판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일본 극우 교과서보다 더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 발언이다. 국민을 모독하고 국격을 조롱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이런 역사인식을 알고도 후보로 지명했다면 대통령의 역사인식과도 연결되는 문제고, 모르고 지명했다면 인사 추천·검증 시스템, 나아가 국가운영시스템의 심각한 장애를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원 의원도 “문 총리지명자는 반성도 않고 망언을 계속한다”며 “총리감은커녕 국민감도 못 되는 사람이니 청와대 수석 인사로 넘기려 하지 말고 빨리 지명철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또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는 "문창극 씨 같은 분은 일본으로 수출해서 일본에서 총리 했으면 좋겠다. 절대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어제 KBS에 보도된 문창극 지명자의 발언은 경악할만한 수준의 패륜적 국가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500년 조선 역사를 ‘허송 세월’로 폄하하고, 일제강점과 분단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과 축복’으로 평가하는 등 총리 지명자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믿기조차 어려운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이런 친일사대적인 사람에게 국정운영의 책임을 맡기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는 “아베 총리가 일본 각료로 임명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구 여권(현 야권) 일각에서도 KBS 보도의 정확성을 알아보기도 전에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성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은 “문 지명자의 역사인식이 놀랍고 황당할 따름”이라며 사실상 문 지명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 지명자가 교회에서 한 강연이었다고 하지만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을 그대로 옹호하고 있다”며 “대단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대단히 충격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떻게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느냐. 친일의식은 대단히 문제”라고 거듭 말했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6명도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김상민, 민현주, 윤명희, 이재영, 이종훈, 이자스민 의원은 “문 후보자의 역사관은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문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의원들은 “분명한 것은 이런 발언들이 개혁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소명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결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좌파 진영 지식인들이 이런 일에 빠질 리가 없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는 문창극 후보를 겨냥해 “귀하는 강경보수 논객으로 이미 공이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대체 내 세금으로 왜 일본국 총리대신 월급을 줘야 하는지… 새누리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이런 국가적 모욕감과 민족적 수치심을 감당해야 한다는 게 참담하다”며 “극단적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파렴치에서도 극한을 보여준다. 인두껍을 쓰고 저렇게 뻔뻔할 수 있나, 언론계의 스킨헤드다”라며 맹비난했다.

대부분의 언론과 야당은 물론 당시 여당 일각에서까지도 KBS의 '가짜 뉴스'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문창극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몰아붙이자 박근혜 대통령도 문 후보자를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당시 자유우파 성향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악마의 편집' 당사자인 KBS나 정략적 목적으로 문창극 후보자를 몰아붙인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KBS의 '가짜 뉴스'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왜곡된 여론에 휘둘려 문창극 후보자를 주저앉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원로 언론인인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문창극 후보자 낙마 직후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줄 세력은 이제 없어졌다. 특정 지역, 특정 그룹 정도는 남아있겠지만 의미 있는 오피니언 세력으로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우파 야당'으로 돌아섰다"고 단언했다. 그는 '웰빙족 새누리당'은 청산의 대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권순활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현 펜앤드마이크 전무 겸 편집국장)도 2014년 7월 3일 <새누리식 기회주의의 치명적 한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진짜 문제는 새누리당과 대통령이었다. '문창극 교회 강연'의 전체 맥락을 뒤틀고 짜집기해 친일(親日)의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한 KBS 보도 후 새누리당은 전전긍긍했다. 현 야권이 집권하던 시절 저런 식의 잘못된 보도가 나왔다면 당시 정권과 여당은 바로 반격해 초전박살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왜곡된 선동이 불을 붙인 여론에 휘둘리며 중도하차 압력을 가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칼럼을 "가치와 대의(大義)의 깃발 아래 싸울 수 있는 구성원이 적은 조직은 결정적 위기가 오면 오합지졸의 집단으로 전락한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데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훼손을 막기 위해 투쟁한 온라인 우파와 아스팔트 우파의 공이 적지 않았다. 우리 공동체의 핵심 가치를 지키려고 춥고 배고픈 길을 밟은 '대한민국 세력'이 느끼는 분노의 심각성을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깨닫지 못하고 계속 비겁한 기회주의에 안주한다면 그 후폭풍은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마무리했다. 이후 벌어진 '탄핵 정변'과 그 과정에서 사회 각계의 웰빙 기회주의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당시 몇몇 자유우파 지식인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악마의 편집' 처벌은 솜방망이...검찰 '무혐의 처분' 및 방심위 '권고' 결론

시간이 흐르면서 KBS 보도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일부 시민단체는 강연 중 일부 내용만 발췌해 보도함으로써 문창극 후보자가 친일 사관(史觀)을 가진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며 KBS 기자 홍성희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은 뒤 17개월 후인  2015년 12월 29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송강 부장검사)는 문창극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을  왜곡·보도한 혐의(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로 피소당한 홍성희 기자를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성립이 안되는 사건”이라면서도 “일반 형사사건 보다 약간 오래 걸렸다고 볼 수 있지만 통상적인 사건처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위원회는 문창극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을 보도한 KBS 9시 뉴스에 대해 경징계인 '권고' 결정을 내렸다. 방심위는 당시 2시간 넘는 토론 끝에 위원 9명 전원이 KBS에 대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당초 중징계가 예상되기도 했으나 방심위는 '향후 제작에 유의하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전달하는 것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당시 야권 추천 위원들의 거센 반발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당시 노조측과 궤를 같이하는 연대 세력에서는 방심위의 '중징계' 소식이 보도됐을 당시, 외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는 두고두고 KBS 보도의 '부끄러운 흑역사(黑歷史)'로 남아있다.

KBS공영노조는 지난달 9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10년 동안 방송계를 망친 것은 정권이 아니라, 특정 이념 중심의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KBS의 경우, 기자와 피디의 대부분이 (언론노조에) 가입돼 있으며 일부 간부 등을 빼면 사실상 언론노조가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이른바 진보성향의 기자와 피디를 경력직이라는 명목으로 대거 뽑았던 것이 한 몫 했다”며 “특히 노무현 정권시절, 한겨레신문 출신인 정연주 씨가 KBS사장으로 있으면서 <한겨례신문>, <경향신문>, <말>(월간지) 등 이른바 진보매체에서 경력사원을 대거 채용했다. KBS의 DNA를 바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KBS 문창극 보도만 보더라도 당시 ‘악마적인 편집’이라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지만 한국기자협회는 이게 좋은 보도였다며 도리어 상을 주었다”며 질타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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