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개화기 조선을 배경으로 러시아, 일본, 미국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결말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드라마 대사에는 법칙이 있다. 대부분의 대사는 다음에 나올 이야기의 예고편이다. 가령, “나는 정말 도박이 싫어”라는 사람이 있으면 십중팔구 나중에 도박에 휘말리게 된다. ‘미스터 선샤인’에는 조선에 진주한 미군을 보며 등장인물들이 이런 대사를 한다. “일본 놈들보다 더한 놈들일지 몰라.” “어째 미군이 조선 땅에 있단 말인가.” 해서 좀 불안하다. 조선의 의기를 높이고 외세를 배척하며 ‘우리끼리’를 암시하는 방향으로 갈까봐 그렇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정치적 지향이 뚜렷하다. 누구는 일본을, 누구는 미국을 또 누구는 중국을 조선이 (따라)가야 할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미스터 선샤인’의 리얼리티는 여기서 생긴다. 분명 과거지만 또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화두에 오래 매달린 사람이다. 함 원장의 말에 따르면 우리 역사에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 12월 2일자 독립신문이다. 물론 일반적 호칭은 ‘조선 사람’이었고 ‘한국 사람’이 시중에 본격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48년 정부 수립부터다. 그럼 ‘한국 사람’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국 사람인가. 거기에 더해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정서적으로 완전히 동화된 사람까지 한국 사람인가. 함 원장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부분이 여기부터다.

함 원장은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틀로 다섯 개의 범주를 든다. 친중(親中) 위정척사파, 친소(親蘇) 공산주의파, 친일(親日) 개화파, 친미(親美) 기독교파 그리고 인종적 민족주의파다. 지난 100년 간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보려는 노력이 이 다섯 유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설명인데 재미있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인종적 민족주의파는 북한이다. 이들을 직선 위에 늘어놓으면 오른쪽에는 친일 개화파, 친미 기독교파가 있고 왼쪽에는 친중 위정척사파, 친소 공산주의파가 있다. 이때부터는 좀 슬퍼진다. 온전한 나는 어디에도 없고 하나같이 특정 국가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결국 특정 국가에 대한 선호와 지원 호소라는 말인가. 그럼 남는 것은 하나 뿐으로 ‘미스터 선샤인’이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다행히 외세 빼고 ‘우리’만으로 한국인을 분류한 사람이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인 송복 선생이다. 송복 선생에 따르면 한국은 하나의 민족이 살고 있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하나의 혈맥(血脈)이지만 사회학적으로 전혀 다른 세 개의 혈맥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산업화 혈맥이다. 이칭(異稱)으로 박정희 혈맥이라고도 하는 이 집단은 가장 늦게 출발해서 지난 세기 중후반 대세였으나 현재는 소수 혈맥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있다. 민주화 혈맥은 ‘저항’과 ‘평등’이 기본 DNA인 집단으로 산업화 혈맥보다 10년 쯤 앞선 1950년대 태동하였고 정체성이 가장 흐지부지한 집단이다. 김대중 혈맥이 이칭이다. 마지막이 사회주의 혈맥이다. 1925년이 출생연도인 혈맥인데 김일성이 광복의 천릿길에 오른 해를 기원으로 삼는다(이슬람에서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도망간 해를 원년으로 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칭은 당연히 김일성 혈맥이다. 어떤 분은 김일성의 탄생 연도인 1912년을 기원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평양 개선문에 보면 양쪽에 1925와 1945(김일성이 평양에 개선한 해)라는 두 개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1925년이 사회주의의 시작이라고 그네들이 주장하니 그에 따라주는 게 맞다. 박정희 혈맥은 김대중 혈맥과 사돈 맺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김대중 혈맥도 마찬가지인데 이 배척을 김일성 혈맥이 보면서 좋아한다. 송복 선생은 이런 복잡한 구도 때문에 현실 정치를 보수와 진보로 구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보수와 진보는 기본 틀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쓰는 말이다. 게다가 보수와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60-70년대 진보는 공업 좋아하는 박정희 혈맥이었다. 농업 좋아하는 김대중 혈맥이 보수였다. 해서 현재는 산업화 혈맥과 사회주의 혈맥이 혈투를 벌이는 중이다. 사회주의 혈맥의 프랜차이즈인 친북 반미(反美)파가 그 선봉이다.

‘미스터 선샤인’은 일찌감치 멜로로 장르를 확정지을 모양이다. 사건보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드라마치곤 대사가 압축적이고 군더더기 없어 보는 맛이 있다. 드라마에 순수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것은 중간 중간 끼어드는 잡생각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것이 없나. 왜 나는 이병헌과 김태리의 밀당을 보면서 우중충하게 함재봉 원장과 송복 선생을 떠올려야 하나. 드라마를 보는 데 자꾸 소주 생각이 난다. 정말이지 이 나라에서는 가끔은 마시고 자는 게 약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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