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군왕무오(君王無誤)' 태도....침몰하는 배에서 혼자 빠져나간 세월호 선장 보는 것 같아 씁쓸
文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론' 때문에 주저앉는 한국경제
일자리 예산 2조들여 만든 7월 취업자는 고작 5천명
"사이비 경제교리를 강요하는 교주(敎主) 한 명 바꾸는 게 더 쉬운 일"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냉전 시절 모스크바 붉은 광장 국제노동절. 세계 최강을 과시하려는 최신 무기들의 퍼레이드를 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한 당 간부들이 높은 단 위에서 만족스럽게 내려 보고 있다. 서방을 압도할 가공할 미사일, 탱크 등의 최신무기들이 거의 다 지나간다. 그런데 행렬 끝에 작은 트럭이 따르는데 그 안에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서기장은 내려 보며 ‘저들은 대체 뭐요?’라고 묻는다. 국방상이 정색을 하며 답한다. ‘서기장 각하, 그들은 경제학자들입니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어대 최광 교수의 경제학 책 속 장면이다.

경제학자를 제 나라 잘 살게 만드는 수단이 아니라 서방국가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로 본 것에 주목하라. 한 자유 시장 국가를 무너뜨리는데 잘못된 경제학 이론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어디에서도 결코 검증 못한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유령 때문에 내려앉고 있는 한국 경제를 보면서, 촛불광장 퍼레이드 트럭에 몸을 실었던 한국 경제학자 3인방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유령을 데리고 온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군왕무오’(君王無誤), 즉 왕은 오류가 없으니 왕의 치세로 나쁜 정책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책임은 왕이 지지 않고 신하가 지게 하는 것은 왕정의 오랜 유산이다. 상투적으로는 신하를 죽이거나 축출한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후에도 오직 신하들만 죽게 했고 심지어 조선의 멸망 후에도 백성들은 왕보다는 측근 신하들을 더 비난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혹 군왕무오의 정치문화의 수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당은 대통령은 옳은데 정책을 집행하는 장관이 잘못했다고 한다. 야당과 언론조차 대통령의 책임을 직접 거론함에는 주저하고 기껏 청와대 비서실의 참모나 장관에게 화살을 돌려 그들을 교체하라고 에둘러 말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정책 책임자를 직언으로 지적하지 않으면 책임 정치가 실종된다.

추경까지 합해 2018년 일자리 예산은 24조쯤이다. 월별 재정 지출이 균등하지는 않지만 줄잡아 월평균 2조의 지출이라 보면 된다. 5월, 6월의 설비투자가 각각 –3.7, -13.8%로 급락하더니 7월에 만들어진 취업자 수는 오천 명이라는 폭망 수준이다. 2조를 오천 명으로 나누면 일인당 4억쯤 해당된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 먹인 벳세다 광야 점심의 예수의 기적은 이 정부의 일자리 예산놀음에선 오천 명 먹여 살리는데 일인당 4억 드는 초고비용 도시락 잔치로 전락했다. 처방을 세운다며 휴일 대책 회의, 당∙정∙청 회의 쇼를 연출한 결과도 역시 돈을 풀겠다는 거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소득주도성장이란 근본 해악을 바로 잡으려는 모습은 전혀 안 보인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 모든 상황 속 대통령의 태도이다. 근엄한 표정으로, 관계 장관 및 참모들에게 ‘일자리 만들기에 그 직(職)을 걸라’고 요구하는 뉴스 장면을 보면서 진보 행세의 인간에게서 실은 가장 수구적인 군왕무오의 미신으로 도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책임은 어디로 갔나. 누가, 누구를 질책하고 있는가? 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며 한 술 더 떠 남을 비난하는 상황. 경제 파국으로 이제 ‘사돈이 남 말 한다’는 속담도 ‘재인이 동연 나무란다’로 바뀌는 느낌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제 홀로 빠져 나간 세월호 선장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경제 장관이라고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대통령의 정책 노선을 따라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월급쟁이 공무원이다. 월급 받고 인정받고자 권세 밑에서 나름 성실, 눈치 및 약간의 사명으로 일하는 고위직일 뿐이다. 경제 장관들에겐 합리성도 좀 있고 경제 운용 기술도 있다. 청와대 참모들도 실은 장관보다 더 임시적인 장기 말이다. 장관들 직위야 정부조직법으로 정해지지만 청와대 비서실 참모들 직위는 법률이 아니라 ‘직제’의 변경으로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비서실은 본질상 그림자이기 때문에, 같은 장관급이지만 계선 기관인 부처 장관에 비해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은 그 더욱 진중해야 한다. 그 참모 중 몇몇 경제학자가 소득주도성장론을 대통령 머리에 세게 박아 녹은 바람에 그들도 지금 운신의 폭이 좁아 괴롭다. 결국 정책책임은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에게 있는 게 아니라 종국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는 대통령이 강요하는 이 거짓 주문(呪文)으론 더 이상 아무 것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책임의 주역인 대통령은 왜 장관 및 참모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나. 그들은 당신 지시에 너무 충실해서 실패한 것이다.

공공 정책집행 과정에서 공직자가 열심히 일을 안 해서 생기는 정책 실패가 있다(‘X-비효율성’). 그러나 지금 이 정부 일자리 정책의 대 실패의 근본 원인은 그게 아니다. 바로 잘못된 곳에 자원을 투입하여 생긴 정책 실패(배분적 비효율성)인 것이다. 즉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이란 사교(邪敎) 논리에 사로잡혀 그릇된 정책 틀을 강제해 놓은 이상, 그 틀대로 경제팀이 아무리 딴에는 열심히 일을 해봤자 엉뚱한 정책에 돈을 붓는 것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얻지 못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결과에 대해 공직자가 부지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돌려 장관들에게 해고의 협박을 하는 것이다. 고용주, 곧 임명권자 중 이런 무지하고 가혹한 갑질이 또 어디 있나.

창의와 혁신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의 기업가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란 말 반복하기도 이제 진부하다. 이 정부가 경제에 대해 만들어 유일한 창의와 혁신은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구호를 만든 것이다. 그게 진리라면 문재인 및 그의 3인방 경제학자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아야 하고 우리는 경제학 교과서들을 다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허위를 지금 우리는 실직과 폐업으로 검증받고 있는 중이다. 이제 이름과 회담만 남고 진척은 더 모호해진 ‘비핵화’에서의 CVID가 또 다른 모습으로 경제파국에 나타난 듯하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재앙(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aster)으로 말이다. 비용 안 들여도 복지가 된다거나 임금 올리면 경제성장 이룬다는 기적을 그려주는 경제학자들은 대개 파국의 앞잡이들이고, 이를 곧이 뇌 속에 새겨 강행하는 정치인은 망국의 선봉장이다.

청와대 비서실에 ‘일자리수석’이라는 한국에 기이한 자리가 차관급의 직제로 마련되어 있고 적어도 직제상으로론 경제수석과 동급이다. 이 둘 위에 장관급인 정책실장(장하성)이 놓여 있고 대통령이 그의 이론을 신봉하는 이상 결국 소득주도성장 정책실험으로 굴러가게 된다. 국가경제가 이렇게 실험할 대상이던가. 장하성을 물러나게 하면 포퓰리즘 재분배주의 경제정책들로 유지하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김동연을 몰아내고 사회주의식 경제를 견지한다면 이미 드러난 경제 파국이 어디까지 갈지 두려울 것이다. 둘을 동시에 교체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실질적으로는 새 경제팀에게 대통령 본인의 정책 기조를 은유하려는 방식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교만한 적폐놀음 정부가 이제 정권의 위기냐, 국가의 위기냐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 때 독일 좌파인 독일 사민당은 정권을 잃더라도 국가를 살리는 길로 나아갔다. 슈뢰더 총리는 자신의 정당 지지기반인 노동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노동개혁을 완수한 뒤 선거에서 패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국가를 살렸고 지금 모든 독일 국민 및 심지어 우파 정권들마저 이를 칭송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소득주도성장론이란 미신을 폐기하고 정직한 ‘기적 없는 경제’로 돌아 와야 하건만, 이 정권은 군왕무오의 믿음에 따라 소득주도성장론을 끝내 고수할 것이라고 재다짐하고 나섰다. 그게 정권-국가의 우선순위에서 보인 한-독 좌파 정부의 질적 수준 차이다.

대통령 앞에서 고용 상태 나쁘다고 노동부 장관이 욕을 먹고, 일자리 수석은 제 일자리 외엔 늘린 게 별로 없음에 머리를 수그리고, 돈을 적게 풀어서 그런 것이라며 기재부 장관은 눈총을 받고, 장관들과 참모들은 그들의 직을 걸라는 겁박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시선은 이 소득주도성장론이란 교리로는 도저히 안 되더라며 정작 바뀌어야 할 한 인물에게 쏠려있다. 오직 한 사람, 바로 대통령 당신. 세상 경제 순리를 바꾸려거나, 검증된 경제학 이론을 바꾸려거나, 사이비 경제 교리를 마지못해 추종하는 참모와 장관들을 바꾸려는 것보다 차라리 그들에게 사이비 경제교리를 강요하는 교주(敎主) 한 명 바꾸는 게 더 쉬운 일이다. 그 한 명이 일자리 잃고 수십만이 일자리 얻는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은가. 일자리 만들기에 직을 걸어야 할 사람은 대통령 본인이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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