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정치적 발언 한다고 지적···'자기도 사람'이라 답하던 전교조 선생"
"건국·근대화 공로 인정하면 우익 인정하지 않으면 좌익, 그 자체가 난센스"

김민성 씨.

1. 인간이 태어나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사회, 가족. 그런데 그 가족이란 거, 그거 알게 모르게 사회주의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좌익으로 시작한다. 나도 몇 가지 증후를 보였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는 발언으로도 문제가 되었던 신해철의 광팬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그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던 적도 있었다. 막상 정말로 내 영웅이 전화를 받아버리니 할 말이 없어 “위윌락유!! 락윌네버다이!!!”하고 끊어버렸지만.

지식인 집안이라고 해도 좋겠다. 할아버지는 단신으로 일본으로 떠나 사업을 하셨고, 나이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베이비붐 세대이신 아버지는 늘 위태로운 널뛰기를 하고 있는 사업가였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마오쩌둥에 심취해있었다고도 했는데, 내가 기억하는 범위의 아버지는 항상 확실한 반공우익이자 자유민주주의자였다. 형들하고도 나이차이가 13살, 16살씩 나는데 큰형은 아예 고등학생 때부터 학생운동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임수경 통일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는 사고를 쳐 퇴학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운동권 학생회장까지 했던 작은형은 아직까지도 운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에 좌익도 우익도 있었지만 배운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집에는 책들이 너무 많아 방마다 책장이 있는데도 서재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큰형의 책장에는 태백산맥, 아리랑 같은 민족주의 좌파 시리즈물들이 있었다. 나머지 책들이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책장에 있었던 책 중 3권은 '슈킹'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데, 체 게바라 평전, 치즈와 구더기,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다. 셋이 다 좌익적 성향인 것을 보면 나머지 책들도 다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에 감명을 받았다. 책의 내용을 짧게 설명하자면 일본 전공투의 영향을 받은 열혈 반항아들이 고등학교 개학식 전날 밤 자신들의 학교에 침입해 학교 곳곳에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따위의 낙서를 해놓고 책상과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세워 교문을 차단하는 등의 깜찍발랄한 짓을 하다가 결국에는 걸려서 어찌어찌 되었더라 하는 내용이다. 아, 나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락스타가 될 사나이가 아니던가! 그대로 실행할 만큼 대담하진 못했지만 락카를 구해 학생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이었던 학교 후문 주차장 구역에 두발규제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뿌려놓았다. 한 팩에 500장씩 들어있는 학종이를 여러 팩 사서 엿먹어봐라 하고 뿌려놓기도 했다. 치우기 어렵게 물까지 적셔두었다는 것은 비밀이다. 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비로소 나다운 존재가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메신저에서는 닉네임 옆 상태메시지 창에 최저시급이 1만원이 되어야 한다고 써놓기도 했다. 2007년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짜리 알바생이었다. 그분보다는 시기적으로도 앞섰으며, 나이로도 그랬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때 나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아니아니, 19대까지 이어온 대통령직을 수행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 17세 수준의 사고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판사님, 저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방점 붙은 글자만 읽어보면 오해가 생깁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뭐, 결과는 이렇다. 치기를 못다 버린 보수우익이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보수는 물론 우익도 아닌 것 같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자. “나의 좌파 탈출기”이니 흔히 지능 순이라고들 하는 좌파탈출의 배경부터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그편이 내가 왜 보수나 우익과 거리가 있는지 설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2.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들과 뭘 하고 놀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학기 초에는 학교 끝나고 PC방 다니면서 서든어택도 하고 카트라이더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0이었다. 몇 년 전 2학년을 마칠 때 반 아이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를 보게 되었다. 절반 정도가 ‘잠 좀 그만 자.’라는 내용이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 사람, 신해철 때문이었다.

신해철을 알게 된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하는 방송이었는데 고스트네이션이라는 제목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역시군, MBC였다. 무서운 아버지와 잔소리하는 어머니는 나에게도 있었지만, 마침 먼 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2년 정도 나 홀로 집에 남겨진 때여서 새벽 3시까지 하는 방송을 듣는 것도, 학교에서 온통 잠만 자는 것도 무리 없이 가능했던 것 같다.

신해철은 지금 생각해보면 후각은 가버렸고, 시야는 좁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계관 안에서는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또 따뜻하기도 했다. 정의하자면 머리를 말끔히 비운 다음 그 안을 겸애와 반항, 냉소로 가득 채운 자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왜 그런 자에게 영혼을 갉아먹게 허락했느냐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그때 난 고작 중삐리였으니까. 그것도 3학년도 아니고 2학년. 1학년은 아니었지 않느냐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아버지는 고등학생 때 마오쩌둥에 심취하셨다. 고등학생 때 마오쩌둥에 빠지는 것보단 중학생 때 신해철에 빠지는 게 낫잖아. 나를 욕하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 아빠를 욕해라!!

그의 발언들을 보자.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쇠고기를 과도하게 먹는데, 그러려면 엄청난 양의 곡물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까 선진국 사람들이 소를 조금 덜 먹으면 더 많은 식량을 절약하여 굶주린 제3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사실은 바이오에너지가 비슷한 논거로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 바이오에너지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식량이 바이오에너지에 투입될 경우, 식량 값이 올라 세계 극빈층 인구가 식량을 구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 그 식량을 제3세계에 퍼줘서 ‘먹여 살려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가수에게 이런 사회적 발언을 기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신해철은 겸애를 무기화해 애덤 스미스의 목을 조를 뿐, 좌익 세계관에 해가 되는 바이오에너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전혀 지적하지 않는다. (이제는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지만. RIP.)

그는 또 미국산 쇠고기 관련한 논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는 “많은 분들이 이 사안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길 바라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없다. 이미 모든 국민들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결론도 나와 있기 때문”, “다행히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 많은 분들이 나서주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좌익들도 즐겨먹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식당을 열어 팔기까지 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그가 팔았던 ‘국민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충분히 인식되고 있고, 결론도 나와 있다.’

사실 나 역시 당시 광우병에 대한 신해철과 같은 부류들의 견해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간단한 문제였다. 하나의 현실적인 정치세력인 정부와 여당이 과연 그런 짓을 할까? 정치는 종종, 그리고 요즘 들어 너무 자주 틀리지만, 틀려도 많은 경우 인기영합이나 불확실성으로 인해 틀리지 대놓고 악마와 손을 잡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를 좋아했던 이유가 그의 비판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던가. 그는 내 반항심을 부추겼고 영혼을 갉아먹었지만 통째로 집어삼키지는 못했다.

3. 좌파탈출을 하는 데엔 기성세대 내지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신해철 신해철 그러니 뭔가 북한 사회주의헌법 같은 냄새가 나긴 하는데, 신해철과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 일행들은 전공투식 논리로 자기정당성에 갇혀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내 눈앞의 기성세대, 기득권은 교사들이 아닌가. 문제는 그들이 바로 전공투(한국에서는 전교조라 불리지만)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라고 학생들에게 김정일에 대한 찬양을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세태가, 시국이 어떻다느니, 나라가 힘들다느니 할 뿐이었다. 아, 반항아가 아니었던 아이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의료보험 민영화와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의 차이도 모르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식코를 보여주며 너희들도 어서 거리로 나서라고 할 때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가뭄에 콩 나듯한 반항의 기회도 찾아온 것 아닌가?

“선생님. 공무원이 그렇게 학생들 앞에서 정치적인 발언 하시면 안 되죠.”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선생님은 사람 아니니? 정치 얘기 할 수도 있지.” 그래, 이 밥통아. 사람이니 선생일 하면서 월급 받아먹겠지. 네가 퇴근하고 댓글전쟁을 벌이던 집회에 나가던 관심 없어. 학교에선 네 일이나 잘 해. 애들 색안경 끼우지 말고.

아직도 피가 끓는다. 사실은 욕을 적고 싶을 정도다.

4. 요즈음은 나를 왜 보수라, 또 우익이라 정의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항적 보수라, 뭔가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말인 것 같다. 사실 아직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는데, 리버럴의 심장에 자유주의(libertarianism)와 과학적 회의주의로 머리를 채운, 결과적으로 선택과 행동은 보수적인 존재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참 고민이다. 그렇다고 우익이라 부르기도 곤란한 문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지만 우리는 머리와 몸통이 없는 존재를 새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건국과 근대화,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 우익,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좌익이라는 구도는 그 자체가 난센스다.

나는 말한다. 나는 날개 같은 것 따위가 아니라고. 내가 바로 몸통이자 머리라고.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들 역시 그렇다고. 그러니까, 힘을 좀 내라고, 옆구리에서 작은 날개가 이제 막 솟아나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거기 선배세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특별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나 같은 아이들, 쌔고 쌨더라. (페이스북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프랑스 대사관엔 미리 사과드리면서, 68같은 사태를 만들어냈던 나라에서도 마크롱이 나왔는데 우리가 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다만, 경고도 해야겠다. 선배세대들은 꼼짝 마!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독트린을 끝까지 따르도록! 나 같은 놈팽이들을 계속해서 만들도록!

우리 모두 “온전한 정신은 통계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하고 한번 소리쳐보자. 그러나 저 말을 했던 윈스턴 스미스의 최후만은 따르지 말자. 그렇게만 하자. 그렇다면 우리에겐 절망이 없다.

김민성(28·대학생) minsd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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