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연합뉴스 제공)

 

대한민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 자랑스럽게 그의 경제적 성취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사람들마저도 1972년 10월17일에 있었던 한국적 민주주의 선언, 소위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10월 유신에 대한 항변을 위해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당시 세계 경제와 국내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는 사람이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은 2012년 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박 대통령의 10월 유신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시도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을 전 언론을 통틀어 유일하게 예상했던 정 대표는 오랜 경제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로운 진실의 길을 걸어왔다.

정 대표는 박 대통령이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진 1970년대를 극복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평가했다.

 

“1972년 8월3일, 박정희 대통령이 8.3조치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4대 큰 손이라는 사채업자들이 있었다. 국민들이 돈이 있어야 은행에 예금을 하고, 은행은 예금이 있어야 대출을 할 텐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런 사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8.3조치는 박 대통령이 기업과 전주들 간에 맺었던 사채거래들을 전부 무효로 하는 사채동결조치가 주였다. 반발하는 사채업자들에게는 은행에 계좌를 트고 돈의 출처를 설명하라고 했다. 대부분 부패로 형성된 자금이라 사채업자들은 돈의 출처를 설명하지 못했다. 기업가들은 만세를 불렀다.

 

8,3조치에 또 하나의 내용이 있었는데, 소위 법인세법 개정이었다. 박 정부는 사채업자들이 사채업을 그만두고 기업에 출자하고 투자하면 세금도 안 받고, 돈의 출처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기업을 만들고 고용을 하면 검은 돈 여부를 묻지 않겠다, 오히려 내야 하는 세금에서 그만큼의 세액공제를 해주겠다, 하고 박정희 정부가 모든 가능한 법률을 동원해서 ‘기업 만들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온 것이다.”

 

- 2012년 2월 정규재 칼럼 中

정 대표는 사채동결로 알려진 8.3조치를 설명하면서 10월 유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당시 사채업자에게 돈을 놀리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계 실력자들이었다. 8.3조치에 정치권이 뒤집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17일 유신이라는 철권을 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채놀이를 하던 정치권 실력자들이 8.3조치에 반발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제적 경제 조치는 1973년도를 기점으로 전 세계 경제가 꺾이는 시기에 오히려 한국은 도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거의 모든 선진국의 성장이 꺾어지는 시기가 1973년이다. 일본은 1973년 이전만 하더라도 놀라운 고도성장을 했다. 7% 성장률을 보이던 일본이 1973년도에 갑작스런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4%대로 떨어지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2%대로 떨어지게 된다.

 

미국도 1973년도 이후에 중산층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소위 케인즈 경제학이 완전히 망해버린 때다. 정부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경영한다는 케인즈의 주장이 고도 인플레이션과 불황이라는 양쪽 펀치를 맞으면서 생명을 다하고 쓰러진 것이 70년대다.

 

케인즈 경제학에 따라 돈을 풀어대다 보니까 결국은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터져버린 것이 바로 70년대 초반의 유가 폭등 혹은 석유위기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재벌의 출생연도도 묘하게 1973년이다. 다른 나라는 경기가 꺾여버리는 해였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도약(take-off)을 한 것이다.”

 

- 2012년 2월 정규재 칼럼 中

1963년부터 1997년까지 연평균 9.1%의 고도성장을 거듭했던 대한민국 경제를 논하면서 피할 수 없는 인물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국내 학계와 정계, 언론계 등은 1948년 건국 이후 1950년 6·25전쟁을 치르고 미국의 원조와 유엔(UN)의 도움으로 산업화의 초석을 마련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의 한계를 체감하고 박 대통령이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해 국제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절하가 심각하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아직도 요원하다.

1950년대 이래 미국 등 선진국들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을 후진국에서 수입하기 시작했고 일본이 미국에 경공업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1950년대 후반부터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면서 대한민국에게 기회가 왔고 1963년부터 우리의 경공업 제품이 수출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원자재, 기계, 부품 등을 크게 의존했던 우리는 경공업 시장에서 재미를 볼수록 일본과의 무역수지 적자가 심해졌고 1968년부터는 석유화학공업단지 조성 등과 같은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고도화에 나섰다.

1969년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에 빠지면서 우리의 대미 수출에 차질이 발생해 외환위기 압박에 시달렸던 해다.

국내 기업들의 부실도 심각해졌다. 박 대통령이 10월 유신이라는 경제를 위해 정치를 탄압하는 결단을 준비하던 시기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구글이미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산업적인 고도화를 급속도로 진전시켜야 했고 당시 정치권에서는 지난 10년간의 박 대통령의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과 국제적 수준의 ‘규모의 경제’ 등에 반대하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이 약진했다.

실제 ‘개방 경제는 국제자본의 욕망을 충족시킬 뿐이다’, ‘민족경제를 위해 농업과 내수용 중소공업을 육성해야 한다’ 등의 주장이 1971년 대중들에게는 인정받았다.

위기의 글로벌 경제, 흔들리는 대중 등 대한민국의 안팎이 소용돌이치던 당시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유신을 선포한다. 10월 유신은 산업 고도화를 견인할 기업들을 위한 각종 정책과 이에 반대하는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성장을 이룩하고 자본을 동원하고 지하에 있는 거대 자본을 양지로 끌어냈죠. 그러기 위해서 엄청난 폭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70년대, 특히 박정희 대통령 정권을 회고할 때면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경제개발은 좋았는데, 독재는 나빴다’는 평가는 사실 모순이다. 지나간 역사는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런데 일부 지식인들은 당시 경제개발의 시기 전부를 악이 지배하는, 정의가 실패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그런 시기였다고 너무도 쉽게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되면 오늘날의 한국 경제 자체가 설명이 안 된다.”

 

- 2012년 2월 정규재 칼럼 中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대표 겸 주필(정규재TV 2012년 2월 방송화면 캡처)

 

정 대표는 과거를 현재의 시각으로 평가하려는 경솔한 후배 세대에 대한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은 숱한 가장을 잃었고 어린 자식들이 딸려있는 젊은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미군들을 상대로 술집 여인 노릇을 자처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제 미군은 다 떠나가고, 그 시절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어른이 됐다. 그런데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들이 어느 날 자신의 어머니를 가리키며 부정한 여인이라고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1970년대 그 엄청난 광기의 시대에 우리에게는 그런 방법이라도 필요했고, 또 그나마 있었기 때문에 경제가 일어섰고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 먹고사는 문제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삶 전부를 그렇게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1970년대는 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기였다. 북한은 70년대를 넘기지도 못한 채 완전히 주저앉았다.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일대 광기와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든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정면 승부를 걸어 성공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 2012년 2월 정규재 칼럼 中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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