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민 객원 칼럼니스트
정지민 객원기자

최승호 PD가 MBC 사장에 임명된 후로, 광우병 보도를 기억하는 여러 분들의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을 광우병 PD라고 기억하는 분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실상 최 씨는 각종 소송의 대상이 되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의 공식적인 PD는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얼굴은 최근 배현진 아나운서를 대체한 어느 여 아나운서인데,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특히 크다는 내용을 읊어댄 장본인이다. 여러 해가 흘렀지만 참 이런 식으로 그 관련자들이 이미지 회복할 기회를 얻을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물론, 비록 공식적으로 이름은 올리지 않았지만 최승호 사장 역시, 광우병 편 외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선동적인 내용의 보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 역시 새삼 들리곤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쟁과 도태 등의 복합적인 과정들을 통해 방송계의 흐름이 진화한다기보다는, 상당히 확실한 서열과 친분을 통해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큰 영향력을 갖는 특정 인물들이 존재하는 듯하다. 사회적 자본 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가치를 지향해서 모인 사람들은 막상 그 안에서 형성하는 인간관계, 즉 사회적 자본에 함몰되어서 자기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계속 그 안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애초에 그 가치가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모여 있는 그곳이 그 자체로 진실이고 가치이기 때문이다. 과거 운동권은 그런 식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실세를 형성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이 잦아들고 1년이 흐른 시점에서 나는 한 사설에서 그런 자들을 멸종 전의 공룡으로 지칭한 적이 있다. 현재 세계의 흐름 속에서는 충분히 공룡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자들이 하필 한반도에서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문제의 광우병 편을 비롯하여, 방송이라는 것을 제작할 때 번역이나 번역 감수를 맡은 나 같은 사람들과 제작진은 사실 만날 일이 전혀 없었다. 비록 세월은 지났지만 아마도 현재까지도 그 점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여러 명의 번역가를 요할 정도로 취재한 내용의 양이 많은 편인데, 번역가들 사이에도 전혀 아무런 교류가 없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내용이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가령 한 인물의 인터뷰의 중간 부분만 주어지면, 단순히 그것만 번역하면 된다. 아마도 대부분의 번역가 입장에서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단편적인 내용을 초월해서 전체 그림을 그려볼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일종의 점 조직, 아니 조직이라는 표현도 걸맞지 않은, 점 진행과정이다.

내 경우 그런 식으로 일부 단절이 있는 내용들을 번역 완료한 후, 제작진이 방송을 위해 골라낸 부분들을 보조 작가와 검토하는 식으로 감수를 했다. 물론 최종적인 자막의 표현 하나하나에 대한 결정 권한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최종 방송의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딱히 제작진의 의도를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본 내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뒤늦게나마, 방송이 실제로 어떻게 나갔는지를 알았을 때, 그 둘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던 것이다.

내가 실제로 그 방송의 최종 내용을 알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본 신문기사를 통해서였다.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가끔 통번역을 했을 뿐 방송이라는 것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 시점 기준으로 이미 7, 8년은 TV를 시청하기는커녕 소유하지도 않았었고, 따라서 MBC가 광우병 이전, 가령 미군 장갑차 사고 등등에 대해서 보도할 때 보였던 성향도 사실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사상으로서의 보수주의,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동시에 극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좌파적인 해석과 성향을 일찍부터 싫어했으나, 방송, 특히 MBC 방송이 그것을 부추기고 선동해왔다는 것 역시 몰랐다. 왜냐하면 실제로 취재한 내용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만 봐서는 편집 후 최종적인 보도에서 어떤 양념이 쳐질지 예상할 수가 없다. 물론 양념을 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잘라서, 어떤 자막을 붙이고 어떤 해설을 곁들일지가 훤히 보일 것이다. 반면 아무런 의도가 없는 사람이 볼 때는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낀 그 괴리감에 대해 일종의 폭로를 하게 된 것이었다. 제작진의 의도에 동참은커녕 공감한 적도 없기 때문에 양심선언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지만, 그들이 어떤 회의를 했고 어떤 의도로 시작했는지 목격한 바는 없지만, 왜 같은 자료를 보고도 나올 수 없는 내용을 방영했는가, 하는 것이 내 의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더 많은 자료를 보고 내린 결론에 따라 방송을 제작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다가 당시 검찰 수사를 통해 전체 내용의 상당부분이 압수되었다. 당시에 쟁점이 되었던 인간광우병 의심 환자의 모친 인터뷰 전체를 당시 나의 지지자들이 만든 네이버 카페에 버젓이 게재하는 시점부터, 나를 공격하며 그 인터뷰의 내용에 대해 추측성에 의존하여 왈가왈부하려는 익명의 인물들이 조용해진 바 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고, 객관적인 결론의 범주를 벗어나서 원하는 것만 골라, 그것도 상당부분 왜곡해가면서 보도한 것이 광우병 편이다. 그것보다 더 악질적인 경우는, 애초부터 원하는 내용이 나오게끔 공을 들여 입맛에 맞는 취재 대상을 물색하고, 유도 심문이나 위장 취재를 통해 최대한 제작 의도에 맞는 내용만을 얻어내는 것이다. 광우병 편에서도 부분적으로 그런 행태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해도, 비교적 객관적이거나 다양한 이야기가 취재 테이프에 담길 확률은 항상 존재한다. 아예 할 말을 정해줄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편리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저열한 짓이지만, 최근에 보니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문제의 그 방송사가 아예 일반 시민을 가장한, 제작진의 일원이나 지인을 촬영하면서 제작진이 원하는 개헌을 주장하는 내용을 당당하게 보도한 사건이 그것이다. 무엇을 곡해하여 보도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보도할 내용을 아예 처음부터 창조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이는 제작진에게는 매우 간편하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장 저질적인 방식이다. 멸종되어야 할 공룡이 환경을 거스르고 다시 깨어나서 기어다니는 광경도 이보다는 아름다웠을 것이다.

정지민 객원기자(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왜곡을 폭로한 번역작가)
jj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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