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2명 와 논두렁 시계 언론 누설 종용…원세훈 당시 원장 소행 심증"
"KBS보도 이후 권양숙 수수 사실 알았다던 盧, 조사내용 영구보존문서로 남아있다"
"관련 보도는 유감이나 검찰 누구도 기획한 사실 없다고 분명히 말씀"

지난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60·사법연수원 14기)은 25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가 억대의 시계를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자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보도 등이 원세훈 당시 국가정보원장 측의 기획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 측이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고가의 시계 등 금품을 수수한 뒤 감사를 표했다거나, '밖에 내다 버렸다'는 사실관계 자체는 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 보도와 이른바 '논두렁 시계'라는 구설만큼은 국정원의 작품이라는 해명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이날 배포한 A4 용지 4장 분량의 입장문을 통해 "지난 번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와 관련해 사실을 정리해 말씀드렸음에도 노컷뉴스 등 일부 언론에서 마치 제가 논두렁 시계 보도를 기획한 것처럼 왜곡해 허위 내용을 보도하고 있어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사진=연합뉴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사진=연합뉴스)

 

이 전 중수부장은 "우선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범죄사실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겠다"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검찰 수사에서 '2006년 9월경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이해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 후 2007년 봄 경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만찬을 할 때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30일 변호인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그와 같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자신은 KBS에서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후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검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피아제 시계를 증거물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자 '언론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후 권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답변하면서 제출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되고 조서 작성, 노 전 대통령의 열람 및 서명 날인을 거쳐 영구보존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가 1억원 이상의 고가 시계를 받는 행위는 뇌물수수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인정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 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하며, 당시 검찰은 수사 내용 유출이 불필요한 오해와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보안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이 부인하고는 있으나,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이던 2009년 4월14일 퇴근 무렵 국정원 직원 강모 국장 등 2명이 자신을 찾아와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국정원 측 요구를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완강히 거부했으나, 이후 KBS에서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됐고 원 전 원장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원 전 원장의 고등학교 후배인 김영호 차관에게 'KBS에서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사실을 보도했는데 이는 원 전 원장이 한 짓이다. 제게 사람을 보내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으로부터 시가 2억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세트를 수수한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길래 제가 이를 거절하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는데도 결국 이런 파렴치한 짓을 꾸몄다. 정말 나쁜 X이다. 원 전 원장은 차관님 고교 선배 아니냐. 원 전 원장에게 내가 정말 X자식이라고 하더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곤혹스러워 하던 김 전 차관과 주변 관계자들에게 자신은 "순간적으로 자제심을 잃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에게 결례를 한 것을 깨닫고 이에 대해 사과했던 적이 있다"고 이 전 중수부장은 덧붙였다.

이 전 중수부장은 "그 후 2009년 5월8일 조선일보에서 국정원장이 검찰총장에게 불구속의견을 개진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며 "보도 배경은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보도 개입 등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정원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 기류로 생각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조선일보 보도 직후 홍만표 기획관으로부터 '국정원 측에서 조선일보 보도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고 국정원의 요청이 너무 뻔뻔하고 어이가 없어 부인해 주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그러자 국정원 측에서 법무부에 요청하였는지 며칠 뒤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국가기관끼리 다투지 말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시 (2009년) 5월13일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고 보도했다. 저는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검찰이 더 이상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그 동안의 보도 경위를 확인해 본 결과 4월22일자 KBS 9시 뉴스 보도는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해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그간 국정원의 행태와 SBS의 보도 내용, 원 전 원장과 SBS와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볼 때 SBS 보도의 배후에도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며 "노 전 대통령의 고가 시계 수수 관련 보도는 유감스러운 일이나 저를 포함한 검찰 누구도 이와 같은 보도를 의도적으로 계획하거나 개입한 사실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입장문을 맺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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