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새로운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민주당을 늪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당을 향해 본인의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내정을 촉구하는 당원 청원 답변을 압박하고 있지만, 당 일각에서는 ‘당직과 원내직은 겸직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들어 ‘무리’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청래, 5만명 당원 청원 등에 업고 ‘행안위원장 임명’ 압박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최고위원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행안위원장에 대한 당원들의 청원이 5만명을 넘었다”며 “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명령을 당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바로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해야 한다는 당원들의 청원을 수용해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자당 몫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을 내정하는 과정에서 당내 이견이 제기되자, 내정을 돌연 보류하고 위원장 선출을 위한 새 기준 마련에 들어갔다. 비명계인 기동민 허영 의원 등이 “당 지도부나 장관을 지낸 분들이 상임위원장을 또 하면 결국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며 정 최고위원의 과방위원장 선출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여야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행안위 위원장 자리를 1년 뒤 서로 바꾸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장제원 행안위원장은 과방위원장 자리로 옮겼으나, 과방위원장이었던 정 최고위원은 위원장 자리만 내놓고 행안위원장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정 최고위원의 상임위원장 겸직 문제는 민주당 내부의 비명계와 친명계 간 갈등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회 상임위원장과 최고위원을 겸하지 않는 민주당 관행을 무시하려는 정 최고위원의 개인적 욕심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청래, “이재명 지도부의 입술이 되어 잇몸을 보호할 것” VS. 최재성, “국회 상임위원장이 이 대표 지키는 자리 아냐”

정 최고위원은 자신의 행안위원장 보임을 보류한 당 원내 지도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4일 페이스북에 “이유여하를 떠나 박광온 원내 지도부가 1년 전 여야 합의에 따라 ‘행안위원장은 정청래’라 공식 발표했는데도 이를 민주당이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는 원내 지도부를 믿고 사임서도 냈는데 완전 뒤통수를 맞았다”며 “사임서를 내게 하고 그 후에 손발을 묶어놓고 때린 것 아닌가. 그 부분이 너무 괘씸하다”고 비판했다.

정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자신을 반대했다면 차라리 이해를 하겠는데, 민주당이 민주당을 반대한 부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자신이 약속을 안 지킨 것이 아니라, 박광온 원내 지도부가 약속을 못 지킨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당 최고위원인 그가 과방위원장에 이어 행안위원장까지 맡으려 하자 ‘관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다시 등장했다. 지난해 정 최고위원이 과방위원장이 되었을 때는 최고위원이 아니었지만, 현재는 최고위원이기 때문에 행안위원장까지 계속하려는 부분에 대해 당내 반발이 생긴 것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된 정 최고위원이 과방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자 이미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과방위원장 맡았을 때는 최고위원이 아니었지만...

이와 관련해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5일 KBS라디오에서 “최고위원이 상임위원장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정말로 바쁜 자리”라며 “상임위가 흔들릴 수 있다. 최고위가 갑자기 열리거나 비상 상황이 있어서 상임위에 상임위원장이 못 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 전 수석은 정 최고위원의 논리를 두고 “어디 달나라 논리인지 잘 모르겠다”며 혹평했다. 정 최고위원이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 "정청래가 물러나면 다음 타깃팅은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라며 "제가 이재명 지도부의 입술이 되어 잇몸을 보호하겠다"고 쓴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최 전 수석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입술이다 그러는데, 국회 상임위원장이 이 대표 지키기 위한 자리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최고위원은 최고위원대로, 상임위원장은 상임위원장대로 각자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도 '겸직'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전 수석은 “이거는 정청래 의원이 좀 빨리 결단을 내려야 될 문제”라며 “결단을 내려도 득점은 이미 글렀지만, 더 끌면 이건 참 볼썽사나워지고 어려워지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5일 김어준의 유튜브에 출연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당직과 원내직은 겸직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최고지도부는 상임위원장을 맡지 않는다, 이런 오래된 룰이 있다”면서 “오래된 당의 룰을 왜 깨냐”는 반발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 의원은 “정청래 의원은 ‘내가 선거법이나 정치관계법을 좀 잘 처리하고 싶다’ 이런 선의가 있는 것 같다”면서 “정청래 의원이 잘할 사람이기는 한데, 정청래 의원에게만 겸직 금지 조항을 예외로 적용하기는 조금 어려워서 조율이 되지 않겠나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분쟁도 불사하겠다는 정청래, 김진표 국회의장까지 물고 늘어져

하지만 행안위원장을 맡겠다는 정 최고위원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법적 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자신의 반대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과방위원장 사임이 처리된 부분을 문제삼으며, 국회의장을 향해서도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청구서도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비쳤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본인이 위원장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사임의 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본인이 위원장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사임의 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의원은 “지난달 5월 30일 국회 본회의 의결과정에서 이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김진표 의장은 이를 무시하고 표결절차를 생략했다”며 “이는 명백한 국회법 위반 행위이고 나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에 법률자문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서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작성해 놨다”며 김 의장이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문서를 공개하며 “나도 이런 소송을 하고 싶지 않다. 하여 국회의장은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조치하기 바란다”며 “접수 여부는 국회의장에게 달려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압박했다.

행안위원장 자리를 맡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정 최고위원이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마저 압박하는 모습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올해 과방위 해외시찰 경비 5458만원 사용, 남은 돈은 55만원이라 추가 해외시찰 불가능

당의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정 최고위원이 행안위원장을 고집하는 이유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 ‘너무 이기적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단은 정 최고위원에게 행안위원장을 맡기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일~14일 사이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최종 결정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상임위원장을 맡으면 업무추진비로 1000만원 정도가 지급되는데, 정 최고위원이 그것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리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 최고위원이 과방위원장직을 내려놓기 전, 올해 과방위에 배정된 해외시찰 경비 예산을 사실상 전부 사용한 것으로 파악돼, 부적절한 처신이 비판을 받고 있다. 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 최고위원은 과방위원장 재직 시절 과방위에 해외시찰 경비로 배정된 5513만 원 중 5458만 원을 사용했다. 남은 해외 시찰 경비는 55만 원뿐이다. 상임위원장 교체가 이미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해외시찰 경비 예산 전액을 쓴 것이다. 따라서 과방위 소속 의원들은 상임위 차원의 해외 시찰을 올해에는 가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정청래 위원장을 비롯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23)에서 유영상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청래 위원장을 비롯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이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23)에서 유영상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 의원은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5일까지 같은 당 소속 고민정 최고위원 및 민주당 출신 무소속 박완주 의원 등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 현장 시찰에 나섰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이 시기는 민주당 요구로 3월 임시국회가 열려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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