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기 세종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그들에 대한 칭호가 의사, 열사, 지사, 투사이든지 아니면 무명의 순국참전용사이든지 어느 경우든 마찬가지이다. 순국선열의 영령 앞에 몇 가지 감상이 있어 적어본다:
 
   첫째, 문자적으로 의사, 열사, 지사 모두를 아우르는 일반적 칭호인 투사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독립운동, 노동운동이나 민주화를 위한 사회운동 등에서 앞장서서 투쟁하는 이’를 뜻한다. 그런데 미국 등 선진외국과 비교해서 한국에는 유독 노동운동 현장의 투사들이 많은 것이 참 특별하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해 분신·투신 등 극단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노동조건 내지 노사(또는 노사정) 간 협상과 조정을 통해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노동환경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격렬성과 폭력성 및 극단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가 미국으로 이주한지 지난 5년 여 동안은 물론이고 미국 노동운동사에서도 분신·투신 등의 극단적 행동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는 한편으로 이해집단 간 치열한 토론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유연한 협상과 타협이 한국보다는 효과적이고 원활해서일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최종의 폭력적 수단으로 개개인의 총기소유가 합법화되어 있어 분신·투신 등 한국형 투쟁방법의 필요성이 작아서일 수도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민주화운동과 불가분 관계에서 그 투쟁기법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좌파 이념과 결합된 격렬한 노동운동 양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화된 ’귀족노조‘의 폐해와 함께...  

   둘째, 한국이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 바로 노조와 노동운동의 격렬성, 폭력성 및 극단성이다. 아무리 좋은 다른 투자환경을 제공한다 해도 외국인투자기업이 부닥치게 될 한국의 격렬하고 좌 편향된 노동운동은 엄청 큰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환경이 매우 불안하다.

   셋째, 한국에서는 이제 민주화운동의 희생과 헌신이 고귀하고 두드러졌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노동운동도 좀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고, 온건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 토론과 협상의 기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교육환경부터 개선하여 보다 유연하고 원활한 노사(또는 노사정) 간 타협과 조정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해 나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개개인이 어릴 때부터 작동, 강조되어야 한다.

   넷째, 경험적으로 볼 때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에 비한다면 한국의 노동시장은 상대적으로 경직적 부분이 많다. 고용주의 직원 해고만 하더라도, 미국은 한국에 비해 고용주에게 더 폭넓은 해고권이 주어져 있다. 물론 노동환경이 서로 다른 국가 간을 직접 대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 특성은 일정부분 비교,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금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투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은 상당한 정도로 존중되고 평가되고 있다. 반면에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을 포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참전용사들의 고귀함은 얼마나 존중되고 제대로 평가되고 있는가. 전장에서 산화한 병사의 희생이 현대의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 투사처럼 상당하고 충분한 사회적 평가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분적으로는 일반 순국참전용사의 숫자가 의사, 열사, 지사, 투사 등으로 회자되는 인물들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일개 병사 역시 지금의 사회운동 투사와 마찬가지로 높게 평가, 존중되어야 한다.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은 모두 동일하게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이재기(세종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현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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