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호주 유학길에 올라 
'위스콘신 메디슨 대' 18년 수학 결실
박사학위 2개 연이어 취득
순수학문과 임상 동시 연구하는 '의과학자'
귀국해 부산 모교 등에서 후배들 상대로 
'유학 어려움' 진솔히 토로해 호응
부친인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 격려 큰힘
유학생활 고백한 책 '다섯가지 키워드' 이달 출간

올해 5월 의학박사(M.D.) 취득후 '위스콘신 매디슨' 대 교정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김태희 제공 
위스콘신-매디슨 의과대학원에서 동려들과 함께 한 모습. 뒷줄 왼쪽 두번째가 김태희 씨다 

"미국에서는 비록 의학분야 연구자라 해도 Ph.D. 학위만으로는 환자 진료를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의학박사 학위인 M.D.를 취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의과대학원에 입학하고 Ph.D. 후 M.D.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30대의 한국인 미국 유학생이 아이비리그 대학들에 버금가는 명문대 '위스콘신 메디슨 대'(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Ph.D.(Doctor of Philosophy)와  M.D.(Doctor of Medicine)를 동시에 취득, 학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위스콘신-매디슨대는 세계 최상위권 대학으로 꼽히며 2020년 기준 26명의 노벨상 수상자, 38명의 퓰리쳐상 수상자와 2명의 필즈 상(수학 분야 세계 최고권위의 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뇌졸중 발생 원인 등에 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여 최근 몇년전부터 국내외 학계에서 주목받아온 김태희(38) 씨.  

그는 미 위스콘신 매디슨대에 2005년 입학, 2017년 '신경과학' 연구로 순수 학문연구자에게 주는 박사학위인 Ph.D.를 취득했고, 또 올해 5월에는 위스콘신-매디슨 의과대학원에서 의학박사학위 취득에 성공했다. 

그는 M.D. 도전 이전부터 젊은 신경과학자로 국내외 학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만큼 M.D. 취득에 곧이 도전할 필요가 없었다. 

지난 2017년 세계적인 신경과학 학술지인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 지에 '허혈성 뇌손상에서 α-synuclein 의
역할'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 그는 국내외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기 시작했다. 

김태희 씨가 모교인 부산 덕원중학교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유학생활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김태희 씨와 미 위스콘신 매디슨대 연구 동료들. 
김태희 씨의 박사 가운 착용을 동료 연구자들이 돕고 있다. 

이어서 2019년 7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뇌졸중 관련 국제 학회 행사인 ‘브레인 미팅(Brain Meeting)’에서 ‘젊은 연구자 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30대 연구자로는 드물게 심포지엄 세션의 좌장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암전문병원로도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위스콘신 대학병원에서의 마취과 레지던트 과정을 앞두고 귀국한 김 씨를 지난 1일 만났다.  그에게 먼저  Ph.D. 취득 후 힘겹게 M.D.에 또다시 도전한 이유부터 물었다. 

그는 대답으로 두 분야 학위 동시 취득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경과학만 연구한 사람들은 환자 쪽을 모릅니다. 뇌졸중 환자가 어떤 증상을 일으키고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 MD는 특정 치료법이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만 집중합니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난치병 시술과 치료제 개발 등에 앞장 서려면 두 분야 모두 섭렵해야 합니다. "

학계에서는 김 씨처럼 두 분야 학위를 모두 취득한 연구자를 '의사과학자'(MD-ph.D)' 이른바 '의과학자'라 부른다. 

의과학자는 말 그대로 의사이면서 기초와 임상의 가교 구실을 하는 과학자를 일컫는다. 그들은 기초과학에서 나온 연구 성과를 실제 환자 치료와 의약품·의료기기 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 

'코로나 19'와 같은 난치병이 출몰했을 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위해선 의과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보면, 미국 의과대학의 경우 한해 졸업생 4만5000명 중 3.7%에 해당하는 1700명이 의과학자로 육성되지만 국내는 의대 졸업생 중 의과학자로 진로를 잡는 연구자가 1% 미만에 불과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가 의과대학 소속 의사와 이공계 분야 연구자 간 공동연구를 지원하는 '혁신형 미래의료연구센터'를 선정하는 등 의과학자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씨에게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는 임상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동기에 대해 물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애초에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경영학 전공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경으로 군입대를 위해 미국에서 돌아와 훈련소에 있었을 때입니다. 친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뇌에 관심을 갖고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에 과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 인생 행보가 180도 바뀐 것이죠. 임상에 대한 애착도 그 때 자리잡은 듯 합니다."

그는 귀국해 지난달 21일 남동생 태언씨의 결혼식에 참석했고, 30일에는 어머니가 교사로 재직했던부산  동일중앙초에서, 31일에는 모교인 부산 덕원중학교에서 강단에 섰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한 평범한 부산 소년이 어쩌다가 의사가 되겠다는 뜻을 세워서 미국에서 의사가 되는 길에 접어들었는지 진솔한 얘기를 들려줘 큰 호응을 받았다. 

평생 교사로 제자들을 양성했던 김 씨의 어머니는 2016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부친은 지난해 6월 1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하며 취임한 김진홍 부산광역시 동구청장이다.  

한편 김 태희 씨는 열여섯의 나이에 호주 유학길에 올랐다가 다시 미국의 위스콘신-매디슨 대에 입학,  Ph.D.와  M.D.를 동시에 취득하기 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독백' 형식으로 담은 책 '다섯가지 키워드'(더 한스 간)를 이달중에 출간한다.  

김태희 씨의 유학생활에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부산 동구 제공]

책의 부제는 '평범한 한국유학생, 미국 의사가 되기까지'로 키워드 다섯가지란 '평범', '가족, '사람들', '나 관리하기', '몰입'이다. 

그는 책 서두에 "내 인생을 보살펴준 두 위대한 여성, 할머니와 어머니께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또 책에서 부모님에 대해 말하는 챕터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의대 공부 꿈을 접었던 아버지의 꼼꼼한 조언 등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술회했다. 

집필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이야기는 아주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천부적 재능, 타고난 외모나 처세술, 부모님이나 기타 후견인의 막강한 지원, 그런 거 전혀 없는 사람의 이야기다. 
가진 게 그리 많지 않아도, 어떻게 어떻게 잘 모아서 쓰면, 적어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체험 수기 같은 거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으로 부끄러운 글을 써내려 가본다."     

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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