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기업인 넥슨의 2대 주주가 됐다. 창업자인 고(故) 김정주 회장이 지난해 2월 별세함에 따라 부인 유정현 이사와 두 자녀 등 유족이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어렵자, 물려받은 지분의 상당수를 상속세로 정부에 물납한 데 따른 결과이다.

넥슨 사옥.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넥슨 사옥.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물납은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속인이 일정 요건에 따라 현금 대신 유가증권이나 부동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절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넥슨 그룹 지주회사 NXC 전체 지분율의 29.3%에 해당하는 85만2천190주를 보유하게 됐다. 기재부가 공기업도 아닌 민간기업의 주요 주주가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이다.

NXC는 31일 이같은 사실을 공시했다.

기획재정부, 넥슨 그룹 지주사 NXC 지분 29.43% 보유한 2대 주주 돼...최대 주주는 김정주 부인인 유정현 이사

지난해 9월 유정현 이사와 두 딸은 김정주 창업자 명의의 NXC 지분 196만3천주(당시 지분율 67.49%)를 상속받았다. 주로 두 딸에게 지분이 상속됐다. 상속 전에 NXC 지분 29.43%를 보유하고 있던 유 이사는 4.57%를 상속받아 지분 34%를 보유한 NXC 최대 주주가 됐다. 각각 1만9750주(0.68%)씩을 보유하고 있던 두 딸도 89만5305주씩(30.78%씩)을 상속받아 NXC 지분 31.46%씩을 각각 보유하게 됐다. 단 두 딸의 지분 보유에 따른 의결권 등 제반 권리는 모친인 유 이사 측에 위임됐다.

지난 2월 상속세를 기재부에 물납함으로써 NXC의 지분구조는 다음과 같이 변했다. 유 이사가 지분율 34%로 최대 주주이다. 기재부가 29.3%로 2대 주주이다. 지분율이 각각 31.46%에서 16.81%로 감소한 두 딸이 공동 3대 주주이다. 물납한 지분은 두 딸의 지분에서 나온 것이다. 두 딸이 지분을 절반씩 보유한 유한회사 와이즈키즈의 지분율은 1.72%이다. 상속 과정에서 사라진 나머지 지분 1.36%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 이사와 두 딸이 내야 할 상속세 규모는 6조원대였다. 삼성가 상속세인 12조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한꺼번에 납부하기 어려운 금액이라 유 이사가 연부연납 제도를 선택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10년 동안 매년 5500억원씩 납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와 비슷하게 사모펀드(PEF)와 손잡고 경영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 방법은 경영권 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넥슨, 물납방식 통해 ‘매각설’ 등 불식시키고 경영권 안정화...‘유정현-이재교’ 체제 주목

이처럼 넥슨 창업자 유족이 물납방식으로 상속세를 해결한 것은 의미가 있다.

우선 정부가 민간기업의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즉 그동안 매각설 등이 적지 않았던 넥슨은 ‘유정현 체제’로 안정화됐다. NXC 관계자는 “세무 당국이 상속인이 제출한 상속세 신고에 대해 적법하게 가치평가를 진행했다”면서 “물납 후에도 유 이사 및 관련자는 70%에 상당하는 지분율을 유지해, 경영권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사진=연합뉴스]

유 이사는 1994년 김 창업자와 넥슨을 공동 창업했던 인물이다. 창업 초기에는 경영지원실장과 넥슨네트웍스 대표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넥슨이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있었다. 2010년부터 감사로만 활동했다. 가정과 두 딸 육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김 창업자가 지난 2월 별세한 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넥슨그룹의 새 총수로 지정됐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대기업집단(직전연도 자산총액 5조원 이상)과 대기업집단 총수를 지정한다. 총수란 대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나 법인을 의미한다.

유 이사는 지난 3월 31일 열린 NXC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경영일선으로 복귀한 것이다. NXC는 넥슨의 지주회사이다. NXC→넥슨 일본법인→넥슨코리아→넥슨네트웍스·네오플·넥슨지티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NXC는 넥슨 일본법인의 지분 46%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넥슨 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이다. 이재교 NXC 대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오웬 마호니 넥슨재팬 대표 등의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김 창업자와 두터운 신뢰관계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중 여성 CEO인 이재교 대표가 새로운 오너인 유 이사와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이화여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홍보팀에서 근무했다. 1998년 넥슨으로 이직한 이후 홍보이사를 맡았다가 2012년 NXC로 옮겼다. 2018년에는 넥슨컴퍼니 내 사회공헌을 총괄하는 넥슨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김 창업주는 2021년 7월 이 대표를 NXC대표로 임명했다. “이 대표는 넥슨 역사와 DNA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이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넥슨코리아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NXC는 물론이고 계열사의 투자와 주력 사업 분야에서 전반적인 경영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지분율 100%였던 넥슨 오너 일가, 최고 60% 상속세율 감당해

넥슨의 물납 사례는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에 대한 문제를 재환기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이지만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는 주식 평가액을 20% 할증한 후 상속세율을 적용한다. 따라서 주식 상속세율은 최고 60%까지 오른다.

물납을 통한 경영권 승계는 넥슨처럼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다. NXC 지분은 창업자인 김정주 회장 별세 전까지 창업자 일가가 100%를 보유했었다. 따라서 기재부에 지분 30%를 물납해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유정현 이사와 두 딸 측이 보유한 합계지분율은 98.64%에서 69.34%로 줄어 들었지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은 확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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