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6월 10일은 36년을 맞는 제6공화국을 탄생시킨 87년 6월 10일의 시민항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서울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광장을 메운 그날은 대한민국사에서 건국과 산업화에 이어서 민주화가 달성된 날로 기념되어오고 있다.

제6공화국은 그 개정 헌법의 모호성이 보여주듯이 당시 정치 세력의 타협에 의한 세력 균형 체제로 출발했다.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이 시민들이 주도했지만 혁명의 과실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돌아가고 의미는 잊혀진다. 민주화를 표어로 삼고 보수 진보로 불리워지는 정치 진영간의 적대적 공존관계의 틀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정치 혼란과 관련지어 보면 혼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양극화가 제도화된 형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노무현 사망 이후 진보의 틀이 무너지고 이후 2016년 탄핵사태로 정치세력으로서의 보수가 무너지면서 등장한 문재인 정권의 반대세력 척결 시도는 극단적인 대립의 양극화 정치 시대를 열었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의 정치적 정당성이 허물어지고 제6공화국을 유지한 대립 진영이라는 진영 정서의 기초는 없어져 버린 것 같다.

2020년 출범한 21대 국회는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입법에도 불구하고 위성비례정당을 내세운 선거를 통해서 자기가 만든 선거제도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양당제 구도를 유지하며 출발하였다. 공수처법 도입 파동으로 보여준 거대정당의 전횡으로 인한 민주정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여야를 막론하고 김남국 사태까지 이르는 국회의원의 각종 비리가 드러났지만 스스로를 시정하지 못한채 팬덤정치에 종속되어 정당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의회 권력의 타락과 방향의 상실이라는 의회 정치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제6공화국의 모습은 민주정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으며,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정당이 어처구니없이 망가지는 것 또한 확인하게 되었다.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큰 변화가 세상을 바꾸었지만 정치는 현상 유지를 하면서 국가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은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나 싶다. 의회 정치의 위기라는 민주정의 파국 상황에서 6월 10일의 시민 항쟁 36주년을 맞이하면서 국가의 방향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다.

민주정은 정치 주체의 수에 의한 구분일 뿐 추구하는 이상이나 이념으로서의 체제가 아니다. 권력의 교체가 예정된 다수의 통치라는 절차적 의미이지 이상적인 정치를 보장하지 않는다. 데모크라시는 이념이 아니므로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민주정이라고 번역함이 옳다. 당연히 인간의 욕망이 반영되어서 얼마든지 폭력적일 수 있으며 타락하거나 부패할 수 있는데, 대중사회속에서는 대중 독재로 변화되어 전체주의로 향하기도 한다.

민주화를 이룬 시민들은 민주정에 대한 지나친 소망을 가지고 과도하게 기대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민주가 초래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조국 사태와 남국 사태로 드러난 부조리를 옹호하고 개딸에 의한 반민주적 폭거를 받아들여 정당의 붕괴를 방치한다. 민주라는 용어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민주정 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 민주정은 인간의 욕망과 폭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망가진 의회 정치의 현실이 보여준다.

민주화를 이룬 세대는 진보라는 명분에 사로잡혀 정치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선한 방향으로의 사회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정치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이런 딜레마에 부딫힐 때 정치는 악의 문제를 강제력으로 해결하고자 인간 본성을 힘으로 개조하려는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모택동의 문화혁명,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크메르 루즈의 학살극과 문화혁명을 흉내내서 홍위병에 의한 적폐청산을 주도한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로 인간을 개조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는 비극으로 마감된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결국은 전제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정의 진전은 대중의 욕망에 부응하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포퓰리즘을 도입하기 마련이다. 진보는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잉 정치 상황을 만들고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정치로 끌어들여서 거대한 낭비를 초래한다. 낡은 정치가 정치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과잉정치와 포퓰리즘을 지속하게 하여 민주정을 타락시킨다. 민주정이 타락할 때 어떻게 되는가를 문재인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타락의 개선은 단기적으로는 부패의 원천인 이익의 고리를 끊는 것이고 법치를 부활하는 것이 되겠다. 각종 범죄자들은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권이라고 비난하지만, 민주정 최악의 실험을 겪은 문재인 정권을 통해서 범죄가 성행하는 세태에 국민들은 범죄국가 보다는 검찰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진영이 정치 이념을 표방하는 시대가 지나고 이익을 대변하는 성채가 되면서 이익을 지키고자 권력 사수를 위해서 범죄와 결탁하는 상황까지 이르게되면 개선을 위해서는 법치의 잣대가 필요할 수 밖에는 없다.

타락한 민주정에서 모두가 다 함께 할 수 있는 공화국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공화정은 자기의 것을 내놓아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공적인 질서를 만들고 견제와 균형이 자리잡히는 체제를 추구한다. 민주와 진보라는 신화를 배경으로 모든 것이 정치이고 정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권력추구적인 지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공화정을 이루려면 권력의 절제와 자기 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회 권력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권력의 타락은 다수 야당이 일방적으로 입법권한을 밀어붙이는 현상에서 확인된다. 공화정으로 가는 것은 권력의 절제와 균형을 시도하는 일이다. 권력의 절제를 통해서 생긴 빈 여지를 자유라고 부른다. 그 자유의 공간에서 삶이 숨쉬고 낡은 것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소멸하며 그래서 변화를 향한 동력이 생기게 된다.

87년 이후, 민주화 이후의 민주정을 모색한다고 하면서 민주정의 열매를 나누어 먹느라고 36년을 소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정치는 4류라고 비난받아온 것이 아닐까? 세상은 변화하는데 정치 영역에서는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적대적 공존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래서 변화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서 양극화 정치 지형이 형성된 것이 아닐까? 민주와 진보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겠다. 민주정의 최종 수단인 정당이 무너져서 의회가 작동되지 아니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 21대 국회의 정치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

6월은 전쟁과 공화국을 지켜온 순국선열들을 기억하는 달이기도 하다. 1953년 정전 이후 70년을 맞아서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많은 희생과 노고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다. 제6공화국을 만든 1987년 6월 10일 뜨거웠던 그날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민주화란 무엇이고, 민주화 이후 어떤 공화국이 되어야 하며 미래를 위한 공화정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6월은 공화국을 생각하는 달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전 MBC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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