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후예는 몰락했고
이웃 섬나라의 식민지까지 경험한 최빈국은 강국이 되었다
어디서 갈렸을까? 박정희, 그리고 5.16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술레이만 모스크를 구경하다 길을 잃었다. 웃을 일이 아니다. 이스탄불은 대로변에서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마침 골목길에서 내려오는 여성 둘이 보였다. 하나는 양복이고 하나는 전통의상인데 학생인 듯 싶어 말을 걸었고 다행히 소통이 됐다. 복잡하니 직접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친절이다. 어디서 왔냐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양복 입은 여학생 입에서 바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한국사람 처음 만나본다며 환하게 웃던 여학생의 이름은 딜안이었다.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사극을 보며 한국어를 공부한 탓에 말투가 곱고 단정했다(깡패 영화로 한국어를 접했다면 아마 좀 끔찍했을 것이다). 심지어 주변에 있던 가게에 들러 내게 음료수까지 사줬는데 손님에게 당연한 대접이니 부담 갖지 말란다(학생인데다 돈도 없어 보이던데). 걸으면서 인연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이스탄불 뒷골목에서 한국어를 하는 여성을 만날 확률을 인연이라고 했더니 아는 말이라며 터키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단어가 있다고 했다.

이야기 하다가 하나 배웠다. 터키가 6.25 전쟁에 참가해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돌궐과 고구려 시절부터 자기들은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볼수록 싹싹하고 마음에 들어 한국에 와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숙식과 아르바이트 자리 정도는 책임져 줄 수 있다고 했더니 환해졌다가 1초도 못 되어 어두워진다.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말도 못 꺼낼 거라고 했다. 특정 종교에 갇혀 사는 까닭에 이스탄불 대학에 다니는 똑똑한 여학생이 그 정도 시도도 못해 본다는 말에 살짝 서글퍼졌다(이스탄불 대학은 우리로 치면 서울대학교다).

이날부터 터키는 나에게 딜안의 나라였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신문에 관련 기사가 뜨면 꼼꼼히 읽었다. 그런 터키가 또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포퓰리즘으로 정치를 한다. 포퓰리즘은 되로 받고 말로 내주는 시스템이다. 정치가 뿌리는 돈에 당장은 행복하지만 나중에 그 몇 곱절을 토해내야 한다. 터키의 물가상승률은 심각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해 72.3%였는데 에르도안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기준 금리를 내렸고 덕분에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한 끝에 수입물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에르도안의 정치를 시골 이장 정치라고 꼬집었다. 집권 기간 동안 그는 외국 자본을 쫒아내고 경제의 모든 지표를 후퇴시켰다. 오는 28일의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또 다시 에르도안이 승리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터키 증시가 하락한다고 하니 막연한 예측이 아니다.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는 그렇게 꾸준히 망가지는 중이다.

세계 최강의 제국과 식민지였던 최빈국의 현재

딜안과 아쉽게 작별을 하고(나중에 꼭 이스탄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한 때 지중해를 장악하고 세상을 뒤흔들었던 제국은 몰락하여 타국의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고 5천 년 내내 못 살다가 기어이는 이웃 섬나라의 식민지까지 경험한 최빈국은 이제 경제 강국, 문화강국, 군사강국이 되었다. 어디서 갈렸을까. 박정희다. 그리고 5.16이다. 5.16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 그는 이승만이 닦아놓은 터전 위에 레일을 깔고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 초라한 땅에 실현했다(이는 좌파들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현재는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부의 쏠림 현상과 정경유착 등을 더 주목하는 이상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리더를 잘 만나야 나라의 형편이 핀다는 사실을 증명한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이 날을 우리는 너무 홀대한다. 기념일로 지정해도 부족할 판에 열심히 침을 뱉는다. 참 고마운 것을 모르는 민족이다. 감사한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민족이다. 5.16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다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이틀 뒤인 5.18 기념식은 아마 전혀 다를 것이다(이 글은 5.18 전에 쓴 것이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 나는 오늘 문득 이스탄불에서 만난 여인을 생각한다. 갈린 팔자 그리고 감사에 대한 단상이다. 터키 하면 딜안이 떠오르고 딜안을 생각하면 박정희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안쓰럽고 한 사람에게는 너무 고맙다.

* 여행 갔던 게 터키 시절이라 국명이 바뀌었지만 튀르키예 대신 터키로 적었다. 원래 자국어에서 정착된 명칭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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