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에도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9.12.27(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저지를 뚫고 의장석에 착석한 뒤에도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2019.12.27(사진=연합뉴스, 편집=조주형 기자)

서: 입법의 역할과 졸속 입법의 문제점

현대 민주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으로 국가권력을 나누는 삼권분립은 기본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항상 삼권 중에서 입법을 제일 먼저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과거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을 국회의 앞에 놓은 적이 있지만, 이러한 비정상적 예외를 논외로 하면 말이다.

이처럼 입법이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은 삼권의 상호 관계 때문이다. 입법에 의해 국가질서 형성의 기본 방향이 설정된 이후에 행정은 –법치행정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수행되며, 사법은 최종적으로 이러한 국가작용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올바르게 수행되었는지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법률의 우위 내지 법률 유보는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의 중요한 요소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입법이 제대로 되었을 때, 그 바탕 위에서 행정과 사법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 입법이 왜곡될 경우에는 국가질서 전체에 혼란이 커질 것이다. 이처럼 입법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영국처럼 대통령이 없는 민주국가는 있어도 의회(국회)가 없는 민주국가는 없다.

그런데 최근 졸속 입법의 반복과 관련하여 입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비판받고 있다. 졸속 입법은 -법률의 내용에 대해 찬반이 있는 것과는 달리- 입법의 절차 자체에서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는 경우이다.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민주국가에서 법률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언제라도 대립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합리적 절차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졸속 입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견의 대립 속에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할 때, 다수결의 절차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민주적 입법이라 부를 수 있는가?

더욱이 어쩌다 한번 졸속 입법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졸속 입법 논란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를 더욱 납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런 와중에도 입법의 미비가 문제되는 경우도 계속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에 의해 입법 개선이 요구되는 것조차도 제때 개정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함이 지나친 경우도 많은데, 또 어떤 분야에서는 졸속 입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 관계자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국민공청회를 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2022.5.3(사진=연합뉴스)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 관계자들이 3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국민공청회를 열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2022.5.3(사진=연합뉴스)

민주화 이후에도 졸속 입법이 계속되는 이유는?

한때 졸속 입법은 권위주의 정부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했다.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입법도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처리될 것을 요구하는 경향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민주화 이후에 졸속 입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민주적 입법절차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추진하는 입법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에 차서 입법절차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민주적 입법과정은 국민 의사의 다양성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국가의사를 엮어 내는 어려운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절대적 정의를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서만 반대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둘째, 입법의 의미와 비중에 대한 국회의원 및 보좌진의 전문성 부족이다. 입법절차의 주역인 국회의원들이 모두 법률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보좌진의 전문적 도움을 전제로 입법의 절차와 내용에 대한 올바른 식견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입법에 대한 전문성 부족에서 비롯된 졸속 입법이 적지 않다.

셋째, 입법절차의 중요성보다 입법을 추진하는 정치세력 내지 정당의 목적이 더 큰 비중을 갖는 것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는 첫째 원인과 일맥상통하지만, 당리당략에 의한 졸속 입법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한 경우이다.

예컨대 제20대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 민주당에서 서둘러 검수완박 입법(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과시키려 했고, 이를 위해 민형배 의원의 위장탈당이라는 불법까지 동원해서 정권교체 이전에 법개정을 끝내려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는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그런데 검수완박 입법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거운 상황에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입법절차 위반을 불사한다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록 헌법재판소에서 위장탈당의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 입법의 효력은 유효한 것으로 결정했지만, 그것이 이러한 졸속 입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법절차의 주역은 국회의원들이지만, 국회의원들의 지위 및 활동은 국민의 위임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졸속 입법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졸속에 의한 정략적 입법이 많아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강행처리와 관련한 긴급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2020.12.8(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강행처리와 관련한 긴급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2020.12.8(사진=연합뉴스)

졸속 입법의 폐해

졸속 입법의 폐해는 국가 전체, 국민 전체에 광범위하게 미친다. 추상적으로 입법에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국가질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제도 실패의 원인이 졸속 입법에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그런 심각한 사례들을 제외하더라도 졸속 입법의 폐해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공수처법을 들 수 있다. 수십 년의 논란 끝에 도입된 공수처는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공수처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공수처법이 졸속으로 제정되고, 개정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공수처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해 놓고,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조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실퍠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는 비판이 공수처법 제정 초기부터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법이 졸속 제정되고, 개정 당시에는 오히려 공수처 소속 검사들의 전문성마저 약화시켰던 점이 –공수처 실패의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 다른 졸속 입법의 대표적 사례로는 김여정의 말 한 마디에 졸속 제정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을 들 수 있다. 국내의 비판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언론자유에 대한 불합리한 제한이라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당시 거대 야당의 힘으로 강행된 대북전단금지법이 졸속 입법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밖에도 졸속 입법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남해안발전특별법과 윤창호법, 성범죄자 취업제한 등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보고서까지 나와 있으며, 최근에도 한전공대 특별법, 간호법 등에 대해 졸속 입법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안 발의 건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졸속 입법의 문제도 함께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졸속 입법은 여야의 견제와 균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더욱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제21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은 이후에 입법 폭주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졸속 입법이 많았고, 그밖에도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졸속 입법이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졸속 입법은 단순히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법률 내용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다수당의 독선의 산물이며, 여야 협치의 심각한 장애물이기도 하다. 더욱이 졸속 입법에 많아질수록 국민의 정치불신은 심화된다. 이는 졸속 입법이 절차적⋅내용적 정당성을 결여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졸속 입법에 의한 정치의 혼란, 나아가 행정의 혼란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처리됐다. 2020.12.10(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처리됐다. 2020.12.10(사진=연합뉴스)

졸속 입법의 뿌리를 뽑으려면

졸속 입법을 막는 것은 간단하다. 위장탈당과 같은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정상적인 입법절차를 존중하고 준수하면 된다. 그러나 설령 여야 모두가 이를 공언하더라도 -동물국회의 재발을 막자는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던 것처럼- 언제 또 같은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일시적인 졸속 입법의 소강상태가 아니라 졸속 입법의 뿌리를 뽑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이를 감시⋅통제하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세 가지가 매우 중요하다.

첫째,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대한 평가를 종래와 같이 법안 발의 건수를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법안의 내용에 대한 질적 평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양적 평가에 비해 질적 평가가 훨씬 어렵고 복잡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질적 평가 없이는 졸속 입법을 막기 어렵다. 어떤 것이 좋은 입법이고, 또 어떤 것은 나쁜 입법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의 개발을 포함하여 입법에 대한 질적 평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둘째, 법안 발의 당시에만 반짝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법률의 시행과정을 계속 추적⋅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입법 당시의 기대효과가 과연 현실로 나타났는지, 아니면 현실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더 컸는지 등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유사한 잘못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셋째, 이러한 평가가 법안 발의를 주도한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 나아가 이에 찬성한 국회의워들에 대한 평가에 반영되어야 하며, 나아가 차기 선거에서도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국회의원들도 졸속 입법에 대해 경각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졸속 입법의 문제는 특정 법률의 문제도 아니고, 특정 국회의원의 문제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입법과정 전체의 문제이며, 입법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졸속 입법의 반복을 막는 것은 입법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국민의 정치불신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 의미와 중요성을 누구보다 정치권에서 피부로 느껴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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