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 부자. 사진/연합뉴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 부자. 사진/연합뉴스

한화그룹은 문재인 정권 내내, 그리고 윤석열 정권 들어서도 가장 약진하고 있는 기업이다.

문재인 정권 때는 태양광 사업, 최근에는 K9으로 대표되는 방위산업 분야를 필두로 우주 항공분야까지 진출함으로써 미래 첨단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한화그룹의 도약에 새로운 날개까지 달았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세계 1위 한국조선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계의 가장 큰 불만사항은 해외시장, 특히 유럽시장에서 대우조선의 저가수주, ‘덤핑’이었다.

대우조선이 일감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배를 만들면서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온 이유기도 했다. 대우조선의 적자가 누적되면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메워주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이다.

이같은 저가수주는 역설적으로 EU 당국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허가하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는 한화의 대우조선을 반기고 있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지스함 한척 건조에만 조(兆) 단위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조선분야의 방산시장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한화가 다른 방산장비와 묶어 불공정행위를 할 가능성 때문이다. 공정위가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에 조건을 단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재계 안팎의 관심은 한화그룹이 민노총의 핵심이자 최강성 노조인 대우조선 노조를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한화의 기업문화 속으로 포용할 수 있을지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한화그룹이 무노조 정책의 삼성, 인화(人和)를 앞세운 LG와 더불어 노사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승연 회장의 통큰 리더십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김승연 회장에게 붙여진 별명은 ‘의리왕’이다. 김 회장이 ‘의리왕“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수 없이 많다.

2003년 6월 한화 이글스의 투수였던 진정필 선수가 백혈병으로 투병, 사망하자 치료비와 장례비 전액을 지원했다. 2011년 9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있던 한국 야구 ‘레전드’ 최동원이 별세했을 때도 치료비 지원은 물론, 그룹 차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는 유가족을 한화그룹 계열사에 우선 채용하기도 했다. 2014년 한화건설의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어회 600인분을 비행기로 공수하는 등 직원들에게 ‘통큰 선심’을 아끼지 않았다.

경향신문을 인수해 무려 5,000억원을 지원하고 어느 날 기자들이 자주 가는 회사앞 맥주집에 들러 밀린 외상값 전부를 갚아준 일화도 유명하다.

김승연 회장은 1993년, 2007년, 2012년 세 차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세 번 모두 구속됐다. 1993년 횡령사건은 ‘6공 실세’ 박철언 전 장관을 지원했던 것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정치보복’ 성격이 강했다.

이후 2007년 3월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에 대한 ‘보복폭행’으로, 2012년 8월 차명회사 불법지원과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와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세번의 검찰 수사와 구속 중 앞의 두 건은 ‘의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에게 직접 ‘응징’한 이른바 ‘보복폭행 사건’은 김 회장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2007년 3월8일 새벽,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서울 청담동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손님 8명과 시비 끝에 집단폭행을 당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 격노한 김 회장이 아들을 때린 사람들(술집 종업원)을 찾아내 직접 폭행을 가했다.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는데, 다수의 비난여론과 함께 청소년층에서는 “우리 아빠였으면...”하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김구라 같은 개그맨은 당시 김 회장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이 사건 검찰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거침없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법정에서 폭행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검사님은 복싱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오른손, 왼손'이라고 말하며 쉐도우모션을 보여 줘 재판장과 변호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김승연 회장의 선친이자 한화그룹의 창업주인 고 김종희 회장은 생전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 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라며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며 호연지기를 강조했다고 한다. 호탕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김승연 회장의 스타일은 ‘가풍(家風)’인 셈이다.

현재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으로의 3세 승계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김승연 회장이 근 5년간 공개활동을 하지 않는 등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계기로 한 한화그룹의 새로운 도약은 김동관 부회장의 리더십에 달려있는 셈이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 중, 여러 가지 구설에 휘말렸던 둘째, 셋째와 달리 장남 김동관 부회장에 대해서는 유독 ‘훈훈한’ 이야기가 많다.

김동관 부회장은 집안, 키, 외모, 학벌 등 여러 가지 스펙에서 ‘엄친아’의 요소를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아주 잘 해서 구정중학교(현 압구정중학교)를 다닐 적에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미국 명문 사립고교인 세인트폴고등학교를 거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세인트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001년에 ‘쿰 라우데 소사이어티(The Cum Laude Society)’ 회원으로 선정됐다. 성적이 우수한 미국 중·고등학생 중에서 회원을 뽑는 우등생 모임이다. 하버드 대학 재학 중에는 한인학생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평소 “내 아내를 닮아서 공부를 잘한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김동관 전무의 모친이자 김승연 회장의 부인으로 지난해 8월 작고한 서영민 여사는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의 장녀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시 ‘퀸카’로 교내에 소문이 자자했을 정도로 미모와 실력을 갖춘 재원이었다.

김동관 부회장은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후, 보통 재벌 3세들이 거치는 석사나 MBA 과정을 밟지 않고 곧바로 귀국해서 군에 입대했다. 공군사관후보생 117기 통역장교로 2006년 8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3년 4개월을 복무하고 중위로 제대했다.

2010년 1월 (주)한화 차장으로 입사해 비서실에 근무하며 그룹 전반의 현황을 파악한 뒤 2011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입사 8년뒤인 2019년 11월 결혼했는데 재벌, 권력자 자제와의 정략결혼이 아닌, 한화그룹 입사 동기와 10년간 연애 끝에 짝을 맺었다.

김승연 회장은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그룹에 입사한 뒤 매년 그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 보내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한편 비즈니스계에서의 인맥을 쌓도록 했다.

2010년 다보스 포럼에 처음 참석한 김 부회장은 “기업과 사회 지도층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세계 기업 지도자들이 실질적 이익보다 기업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이 이타주의를 고취시키고 모두를 더 낫게 하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라고 잘 다듬어진 메시지를 날려, 지켜보던 아버지 김승연 회장을 흐뭇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주요기업 오너 경영인은 창업주 2세부터 4세까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 대표적인 2세 경영인이고, 삼성 이재용 SK 최태원 현대차 정의선 회장은 3세대, 경영인이고 LG 구광모 회장은 4세대 경영인이다.

3세대 경영인인 김동관 부회장은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등 다른 3,4세 미국 유학파 오너 경영인들처럼 창업주나 2세대 경영인과 비교할 때 개성 차이가 크게 없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건희 정몽구 김승연 회장 등 2세대들이 각기 다른 개성과 리더십으로 그룹 성장을 이끌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의리와 카리스마를 앞세운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은 한화그룹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모범생 김동관 부회장을 둘러싼 한화그룹 안팎의 우려가 적지않은 편이다. 당장 김동관 부회장 앞에는 3세승계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리스크가 놓여있다.

추후 김동관 부회장이 김승연 회장의 그늘을 벗어나서 보여줄 리더십, 그리고 김승연의 한화와 김동관의 한화의 차이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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