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근대사를 연구하면서 필자가 발견한 것은 한국인들은 유난히도 ‘독립’을 좋아하고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교과서에도 독립이란 단어로 도배되어 있으며, 항일과 저항이 한 세트로 독립을 강조한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의 선대들이 어떻게 일제와 용감히 저항했던가를 기술하는 것이 최대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처럼 해방 후 만들어진 ‘독립 이데올로기’는 가장 신성한 ‘신화(神話)’로 조작되고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발견되는 것은 일정기 한국인들은 대일본제국의 순민(順民)으로 ‘조선 민족’이 아닌 ‘일본 국민’으로 살았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하지만, 좌파들은 절대 다수의 우리 선대들이 ‘민족’이 아닌 ‘국민(일본인)’을 긍지를 느끼며 살았던 진실을 극성스러운 정도로 덮고 감추고 왜곡해 왔다.

민족이란 무엇일까? 민족은 실체성을 결여한 ‘상상의 정치 공동체’다. 민족은 개개인에게 생명은 물론이고 일상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민중들은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일삼던 중국군보다 민중을 위해 의리와 선심을 베풀던 기강이 잡힌 근대 일본군을 더 지지했다.

일정기 조선인들 역시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 왕조보다도 일본의 선진적 근대문명에 더욱 매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민족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의 국민으로서 만족하고 행복을 느꼈다. 역사상 타민족의 침략과 지배로 서로 동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민족이 재생하기도 한다. 이는 흔하디 흔한 역사적 현상이다. 인류사는 이민족과 타문명의 침략과 정복이 거듭되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김문학 원장이 그린 조선 시대 풍속도. [사진=김문학]

 

일본 동양학의 태두 교토대학 미야자키 이치사타(宮崎市定) 교수는 1989년 펴낸 걸작 『동양의 소박(素朴)주의와 문명주의 사회』에서 근세 중국의 문명주의 민족인 한족에 대해 비문명인 주변의 몽골족과 만주족의 침략과 정복으로 문명의 판도가 바뀌고, 한족이 끊임없이 신선한 혈연으로 재생했던 사실을 실증적으로 논증했다.

세상엔 절대적 100% 순도의 독립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를 둘러보면, 19세기 초엽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 당시 독일 지식인들의 대응이 두 가지로 분열되었다. 예를 들어, 철학자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란 유명한 연설에서 나폴레옹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국민적 저항을 호소했다.

한편,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大)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오히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고루한 독일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는 유익한 혁명이라 주장했다. 결국, 독일은 나폴레옹 혁명군을 옹호했고, 민족의 유지보다 구체제 타도를 선택했다. 헤겔은 민족주의가 아닌 진보주의 입장에서 나폴레옹 침략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일정기 조선인 엘리트를 비롯한 절대 다수 민중들 역시 ‘진보주의’를 택했다. 좌파들에게 이른바 친일파로 매도당하는 조선인들은 모두들 헤겔의 진보주의를 받아들인 선각자들이자 건국의 공로자들이다. 따라서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악(惡)’으로만 규정하지 말고 민족을 초월함으로써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장대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시각 속에서 ‘독립’이 무조건 정의롭고 민중들에게 좋은 것인가에 의문도 가져봄 직 하다. 

근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독립이 국민에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북한은 ‘독립’된 국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실은 김씨 봉건왕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씨 왕조 이상으로 자국민을 불행과 고통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따로 없는 나라다. 

실제로는 민족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까지 박탈해버린 북한의 비극적인 체제는 '독립'의 대의명분을 이른바 '개도 안 먹는' 수준으로 격하시켰음을 잘 증명하고 있다. 독립이 이른바 ‘독립(毒立)’으로 변질하면서 자민족을 독살(毒殺)하는 국가적 시스템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201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 민주화 운동의 리더 류효파(劉暁波)가 떠오른다. 그는 1988년 홍콩 《해방월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대륙이 자유 민주의 나라로 변하려면, 약 300년 동안 서양 문명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것도 과연 충분할는지 의문이다”라고 직언했다. 필자도 역시 300년으로 부족하고, 약 500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필자가 제언하고 싶은 것은 ‘독립’을 무조건 찬미하고, 강조하기보다는 독립의 내용과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독립’이 자민족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차라리 선진문명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이 보다 좋을 수 있다.

약 80년 전 일본의 조선 지배도 크게 보면 이 같은 진리를 증명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북한을 일본 혹은 미국이 인수해서 민주국가로 통치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 인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좌파들은 한국마저도 북한식 공산국가로 만들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악랄한 거악(巨悪)이 또 어디에 있을까?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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