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년 5월 2일 – 소련군, 베를린 함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한 것은 1945년 8월 8일이었다.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기 때문에 이미 일본 패망이 확실해졌을 때였다. 그래서 소련은 전쟁 막판에 숟가락 하나 올려서 승전국이 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태평양 전쟁 상황일 뿐이다. 소련은 유럽에서 독일과 사상 최대의 혹독한 전쟁을 치렀고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전쟁 직전에 독일과 맺은 불가침조약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은 소련 사람들에게 더욱 큰 피해를 입히고 충격을 안겼다. 독일군은 소련이 방심한 틈을 타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히틀러를 믿었던 스탈린은 공격 개시 후 1주일 이상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는데, 그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독일군은 소련 서부 전선 전체에 걸쳐 총공격을 했고 소련군은 거의 모든 전투에서 번번이 패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스탈린이 이름난 군인들을 대거 숙청해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영웅은 위기에서 탄생한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소련 국민은 어머니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도시가 통째로 영웅이 되기도 했다. 900일 봉쇄를 이겨낸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그)와 인간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는 엄청난 전투를 치른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가 영웅 도시가 되었다. 러시아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레닌과 스탈린이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련군은 후퇴하면서도 독일군을 괴롭혔다. 독일군이 쳐들어오면 농작물을 불태우고 다리를 파괴하며 공장까지 모조리 철수했다. 소련 사람들은 서쪽 끝에 있던 철강 공장과 군수품 공장 생산 설비를 동부 우랄산맥 근처로 옮겼고, 그곳에서 다시 조립하여 강철과 군수품을 생산했다. 두 나라 철도 폭이 서로 달라 독일군은 소련 철도망을 이용할 수 없었지만 소련은 철도까지 대부분 파괴하거나 철수했다.  

 1943년 가을 이후 소련은 수많은 희생 끝에 독일에 점령당한 영토를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1945년 들어 독일군의 패색이 완연해졌고 5월 2일에는 치열한 전투 끝에 소련군 주코프 원수의 부대는 마침내 독일의 심장 베를린을 함락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게오르기 주코프는 승리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소련이 독일로부터 승리를 얻어낸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강력한 군사력이나 선진화한 무기가 아니었다. 나치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소련 국민의 단결이 소련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소련 국민을 하나로 만든 것은 공산 혁명 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민족과 가족 이름으로 똘똘 뭉쳤고 소련 정부도 이 점을 적극 활용했다. 결국 소련 국민은 흉포한 나치 독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싸웠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인 사망자는 2,700만 명에 이르렀다. 1억5천만 명인 지금 러시아 인구로 생각해도 다섯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신체장애인이 되거나 정신적 트라우마에 오래도록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엄청난 전쟁을 치러서인지 오늘 러시아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른 어떤 역사보다 아프게 간직하고 그 희생자들을 간절하게 추모한다. 지금도 러시아 대도시 어디에나 어김없이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그것도 외곽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 있고 꺼지지 않는 불 가까이 서 있는 벽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그 지역 사람들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모스크바 승리공원. 오른쪽에 141.8m 높이의 승전탑이 보인다. [사진=윤상구]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구조물들이 있는, 모스크바의 ‘승리공원’은 전승 기념 시설의 총합판이다. 그곳에는 141.8m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탑이 서 있는데 이는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기간인 1,481일을 상징한다고 한다. 까마득히 높은 그 탑에는 격전지 지명과 전투 장면이 새겨져 있다. 

 모스크바 붉은광장 바깥 크레믈 외벽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그 옆 국립역사박물관 앞에는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기마상이 서 있다. 주코프는, 러시아에서 대조국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다. 그는 1942년 8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을 궤멸시켰고 1944년 1월에는 레닌그라드 포위를 해제시키는 등 러시아 승전에 큰 공을 세웠다. 마침내 1945년 5월 베를린을 점령하여 독일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1945년 붉은광장에서 전승 퍼레이드를 할 때 주코프는 스탈린을 대신하여 말을 타고 참여부대 사열을 받았다. 역사박물관 앞 기마상은 그때 모습을 따서 만든 것이다. 

모스크바 붉은광장 입구에 서 있는 주코프 장군 동상. [사진=윤상구]

 

 주코프의 인기가 치솟자 스탈린은 전리품 약탈 등 혐의로 그를 좌천시켰다. 주코프는 스탈린 사후에도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어 명예를 잃었다 되찾았다 하는,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그래도 1974년 사망할 때 군인으로서 최고 영예를 받으며 크레믈 벽 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소련은 독일에게 승리함으로써 태평양전쟁에는 이름만 걸고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 되었다. 엄청난 세계대전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는데 두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안기고 있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언제쯤이나 끝날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뿐이다.

황인희 작가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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