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의 자화상. [사진=김문학]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의 자화상. [사진=김문학 제공]

 

누가 말했던가, 춘원은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라고. 그러나 사실 만지면 만질수록 춘원은 지성의 샘물이다. 누구보다도 풍부하고 지혜로운 지성으로 사회에 공헌했던 국보(國寶)급 인물이다. 한국 근대사 한복판에서 민족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춘원의 문학, 사상, 식견, 전략 등 최고의 지성상(知性像)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그의 민족 사랑, 민족을 위한 희생정신,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 등 국사(國士) 춘원 이광수의 마음을 결코 간과하거나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춘원 연구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춘원의 새로운 면모에 늘 경탄을 금치 못한다.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춘원은 비범한 통찰력을 지닌 탁월한 예언가였다는 사실이다. 

춘원처럼 일본과의 관계에서 민족의 병폐와 위험성을 일찍부터 감지하고 멀리 앞날을 내다보면서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한 민족의 전략가도 흔치 않다. 필자는 춘원 이광수가 탁월한 예언가임을 증명하는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940년 중일전쟁 와중에서 춘원은 조선인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육군특별지원병제 지원을 필설을 다해 호소하고 권유했다. 그는 왜 세간의 질타에도 이른바 ‘친일’에 그토록 열중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민족의 장래를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을 자원한 조선인 청년들이 군사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서 장차 독립된 조국을 지켜내는 물리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나의 고백』)

물론 조선인 일반 대중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의 역사는 춘원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증명한다. 이를 입증하는 책이 바로 기예(氣銳)의 역사학자 정안기의 거작 『충성과 반역』이다. 이 책은 육군특별지원병제를 연구해서 식민지 군사동원의 역사적 공백을 메꾸었다는 귀중한 의의를 갖는다.

정안기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은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전문적인 군사지식과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았다. 투철한 국가관, 군인관, 사생관을 내면화했다. 1946년 이래 이들은 여러 군사학교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이들은 미군정기, 건국기, 6·25전쟁기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데 희생과 헌신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1950~1960년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내각수반(국무총리)으로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김문학 원장이 그린 춘원 이광수. [사진=김문학 제공]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1947년 당시 춘원은 모택동의 중공군이 장개석의 국민당군과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중국 공산화가 불가피할 것이라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해방공간 한국에서 논의되던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이 좌우합작과 통일정부 수립을 시도했던 중국처럼 공산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 내다봤기 때문이다. 

춘원은 “좌익의 사람들은 군대적이요 교파적(教派的)이어서 주의(主義)에 있어서는 개인의 자유가 없는 만큼 … 모스크바를 그대로 서울에 떠오려 하는 것 같다. … 그러므로 좌익 사람들을 향하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하고, 민족적인 자주독립 국가를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고,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자와 소련 계통의 공산주의자와 합작한다는 것은 다른 일에는 몰라도 국가를 건설하는 정치적인 일이면 되지도 아니할 요술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갈파했다.(『돌벼개』)

해방정국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군정은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김구는 중국의 국공합작을 모델로 삼아 좌우합작에 찬성했다. 반면, 이승만은 좌우합작이 공산화의 지름길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춘원의 예언대로 한국은 단독정부를 수립했고, 오늘날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 만약, 춘원이 그토록 경계했던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정부가 수립되었다면, 대한민국은 금방 북한에 귀속됐을 것이고 한반도의 공산화는 이미 오래 전에 실현됐을 것이다.

필자가 춘원 읽기에서 깊이 체득한 것은 춘원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무진장한 지혜의 샘물이라는 점이다. 그의 풍부한 예지와 식견들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지적향도(知的嚮導)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또 확신한다. 

그럼에도 춘원의 걸출한 지성으로 충만한 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민족의 변절자로 몰아세우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한국 사회가 무척이나 한심하다. 한국은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와도 비견되는 위대한 현자(賢者) 춘원을 너무나 소홀히 대접하고 있다. 이 또한 한국인들 스스로가 자초하는 커다란 비극 아닐까.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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