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1일 –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첫 사용

 1897년 10월초 ‘광무 황제’가 되었음을 하늘에 고한 고종은, 즉위식 다음 날 새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대신들과 논의했다. 고종은 “우리나라는 원래 삼한(三韓 : 마한, 진한, 변한)의 땅인데, 나라 초기에 하늘의 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그러니 지금 국호를 큰 한, 즉 ‘대한(大韓)’이라고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제의했다. 대신들이 이에 동의하여 우리 역사상 최초의 황제국의 이름이 ‘대한’으로 정해졌다. 

 1910년에 맺어진, 한반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에서는 대한제국을 ‘한국’이라 칭한다. 그 주요 내용은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완전히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라는 것이었다.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안중근은 곧바로 “코레아 우라”라고 외쳤다. ‘우라’는 러시아어로 ‘만세’이다. 그러니 ‘대한 만세’ 혹은 ‘한국 만세’라고 외친 셈이다. 또 1919년 3월 3‧1만세운동에서도 군중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까지의 ‘대한’ 혹은 ‘한국’은 일본에 의해 문을 닫은 ‘대한제국’을 일컫는 말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였다. 임시 정부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국무총리는 이동휘였고 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대한제국 때 나라가 망했는데 다시 ‘대한’이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겠느냐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보자”라는 의견이 나오자 재론하게 되었고 다수결로 ‘대한’이 선택되었다. 대한제국 때 쓰던 태극기도 계승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에 설치되었던 임시 정부 요인들 기념물. [사진=윤상구]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민주공화제와 대통령제를 선택하였다.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에서 나라를 잃었으니 나라를 되찾으면 다시 황제의 나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화제 정부를 선택함으로써 왕조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깨끗이 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임시 정부 수립은 우리 역사상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의미 깊은 임시 정부 수립의 배경에 3·1만세운동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대한민국’이 나라 이름으로 정해진 것은 1948년이었다. 5‧10선거에서 당선된 임기 2년의 제헌 국회 임무는 헌법을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것이었다. 제헌 국회에서 새 나라 이름이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임시 정부 이름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새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다수결로 정한 ‘새 이름’이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임시 정부 수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라 이름이 같다는 점과 그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이 그들 주장에 큰 힘을 싣는다. 하지만 그들이 굳이 그렇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1948년에 세워진 우리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사가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임시 정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도 이승만이었다는 점은 여러 이유를 들어 인정하지 않는다.

제헌 국회가 열렸던 옛 국회의사당. [사진=윤상구]

 

 
 나라 이름이 같아도, 법통을 계승했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1919년 수립된 임시 정부의 계속이 아니다. 그 대한민국과 이 대한민국은 엄연히 다르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표방하고 고구려라는 국호도 사용했지만 고구려와 고려가 같은 나라가 아닌 것과 다를 바 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가가 되려면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 나라를 국적으로 등록한 인구, 명확한 영토, 영토에 거주하는 인구를 통제할 수 있는 정부,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권이 그 조건이다. 임시 정부에 ‘정부’는 있었지만 영토나 국민, 주권이 없었으니 임시 정부를 정식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무엇보다 임시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로 만들어진 정부 아닌가.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임시 정부와 같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혀 제3의 이름으로 국호를 정했으면 어땠을까? 대한민국 건국일을 식민지에서 해방된 8월 15일이 아니라 완전히 제3의 날짜로 정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지금 귀 얇은 국민을 미혹에 빠지게 하는 많은 논란이 없었을까? 아닐 것이다.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부질없는 역사의 가정에 에너지를 쏟을 일이 아니다. 다만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국민 스스로가 똑똑해지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 글 황인희 / 사진 윤상구

황인희 작가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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