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정부의 쌀 수매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매년 과잉 생산된 쌀에 대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 쌀값의 폭락을 막고,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취지이다.

지난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법안은 본회의 재석 266명 중 찬성 169명, 반대 90명, 기권 7명으로 최종 가결처리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부 재정이 부담이 됨은 물론, 장기적으로 쌀 생산량 감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했다.

국민의힘은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쌀의 과잉생산을 초래해 오히려 장기적으로 쌀값 하락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농업생산력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몇 차례에 걸쳐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농민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라며 "법으로 정부의 쌀 매입을 의무화하면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과잉공급 물량을 결국 폐기해야 하는데, 농업 재정 낭비가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당·정·대'가 한목소리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강하게 입법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문재인 정부 때는 손을 놓고 있던 민주당이 이처럼 윤석열 정부 하에서 양곡관리법을 몰아붙이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① 주호영, 정진석 등은 “현 정부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한 방법” 비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국회 본회의 직전에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신들이 집권할 때는 전혀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법을 만들려고 한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의 입장은 ‘양곡관리법이 농업을 파괴하고 정부를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그런 방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1조 넘는 돈이 양곡 매입에 들어가고 5년 후에는 10분의 1 가격으로 내다 버리다시피 하는 이런 법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점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민주당에서 이런 것을 주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2월 27일 페이스북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 "본인들이 여당일 때는 신경도 쓰지 않던 법안들을 야당이 된 지금 법을 어기면서까지 입법 폭주를 멈추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여당일 때는 부담스러워서 처리하지 못했던 법안들을 야당이 된 상황에서는 ‘정부에 부담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정 의원은 양곡관리법 외에 간호사법, 노란봉투법 등을 예로 들었다. 특히 정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방송법 개정안은 민노총 언론노조가 진작에 요구한 법안이었지만 문재인 정권 때는 (민주당은) 통과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며 "본인들 집권당일 때 임명해왔던 공영방송 시장을 정권을 잃고 나니 좌파 시민 단체가 뽑게 하자며 국회과방위원장 직에 그렇게 목을 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20년 집권' 호언장담하던 민주당이 5년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건 민생을 외면한 채 본인들의 정권 연장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며, 국민들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반성 없이 그 잘못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고 있다고 민주당의 법안 처리 행태를 비판했다.

② 본격적인 드라이브는 이재명이 걸어...이유는 ‘이재명 구하기’?

양곡관리법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논의 때부터 지난 23일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논의가 지지 부진했고 지난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딪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전북 김제시 김제농협 미곡창고를 찾아 도정된 쌀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전북 김제시 김제농협 미곡창고를 찾아 도정된 쌀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16일 전북 김제를 방문해 시장격리 자동개입 의무조항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언급하면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날 이 대표가 김제를 방문해 ‘쌀갑 정상화’를 내건 이유는 민생 드라이브에 집중하는 동시에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우회해 정부 여당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당시 이 대표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을 굳이 인용할 것도 없이 농업은 우리 미래를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라며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일에 대해서 과거 대통령께서도 후보 시절 시장격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정부 여당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여러분의 마음이 타들어가지 않도록 낱알이 익어가는 벌판을 보다보면 뿌듯하지는 못할망정 불안과 초조, 긴장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반대 토론에 나선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궁지에 몰린 이재명 대표를 구출해 보려는 정략적인 의도가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는 항의 고성이 쏟아졌다. 안 의원은 "오늘은 민주당 이 장악한 의회 권력을 이용해 대한민국의 농업 미래를 약탈한 농업 국치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난하며 토론을 마쳤다.

③ 1조원의 쌀보관 비용 추가 지출...호남에 몰려있는 민간 창고업자 이익 극대화 돼

양곡관리법이 통과될 경우, 시장격리(의무 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에 수확한 쌀 가운데 37만톤을 2022년에 사들이는 데만 7900억원이 소요됐다. 22년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5만톤을 매입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2023년에 이 45만톤을 매입하는 데는 산술적으로도 96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미애 원내대변인은 23일 법안이 통과된 이후 "국가 농업예산이 쌀 의무매입에 매년 1조원 넘게 투입될 가능성이 커서 한정된 농업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막고 미래 농업 투자를 어렵게 하는 '반농업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무리한 양곡관리법 처리 강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농업·농촌이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매입한 쌀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쌀 1만톤을 2년 보관하는 데 229억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2년에 사들인 37만톤을 2년 보관하는 데에만 8473억원이 드는 셈이다. 37만톤을 매입하는 데 7900억원이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공공비축미가 보관된 쌀 보관창고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공비축미가 보관된 쌀 보관창고 내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은 지난 20일 “해당 법안이 통과될시 수혜를 받게 될 쌀창고의 절반이 호남 지역(광주, 전북, 전남)에 몰려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날 최 의원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 올해 2월말 기준 정부양곡(공공비축 및 시장격리)의 저장을 위하여 보관 계약이 완료된 전국 쌀창고 3480동의 50.6%인 1761동이 광주(19동), 전북(738동), 전남(1004동) 등 호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최 의원은 농림부의 자료를 분석하여, 민주당이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올해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8년간 365만톤의 쌀이 초과생산돼, 총 1조 85억원의 쌀 보관비용이 추가 지출될 것이라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최 의원은 “민주당의 무제한 쌀수매 법안이 통과될시, 남아도는 쌀을 보관하기 위한 국민혈세 비용이 불필요하게 일부 지역 민간 창고업자 등의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문화일보 이현종 논설위원은 유튜브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양곡관리법이 시행될 경우 이익은 전부 창고업자한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수하게 되면 오히려 쌀값이 폭락하기 때문에 농민들에게는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남지역 의원들이 양곡관리법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로 ‘쌀 보관업자와 국회의원 간의 유착 가능성’을 제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돼 쌀 시장격리 규모가 확대되면, 매년 쌀 매입과 보관에 조 단위의 세금이 들어가게 된다. 최 의원의 분석대로 호남 지역에 밀집한 쌀 보관창고의 소유주인 민간 창고업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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