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는 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거쳐 기준금리를 4.50∼4.75%에서 4.75∼5.00%로 0.25%포인트(베이비스텝) 인상한다고 밝혔다.

연준은 아홉 번의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함으로써, 기준금리 최상단을 5%로 높였다. 초저금리 시대를 유지하던 미국이 글로벌 복합위기에서 비롯된 고물가와 전쟁을 벌인지 1년여만에 초고금리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22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22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파월 연준 의장,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열어놓아 주식시장 급락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FOMC정례회의를 앞두고 쏟아져나왔던 시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부담감을 느낀 연준이 결국 일보 후퇴한 것이다.

연준이 베이비스텝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긴축기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파월 연준 의장은 ‘2% 물가 목표 달성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서비스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잡는 과정이 험난할 거라고 예고했다.

또한 연준은 올해 최종 목표 금리는 5.1%로 지난해와 같은 수치를 제시하면서,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올리겠다고 말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열어놨다.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 긴축완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연준의 일관된 긴축 기조 유지 기조에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국채금리는 하락했으나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63% 하락한 3만2030.11로 장을 마쳤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도 1.6%대의 비슷한 폭으로 하락 마감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후 뉴욕증시는 급락세를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후 뉴욕증시는 급락세를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시장 급락세 부추긴 제3의 변수는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의 발언

이처럼 시장의 급락세를 불러온 데는 파월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의 상반된 메시지도 작용했다는 진단이 제기돼 주목된다. 두 사람은 ‘은행 위기 속 예금 보호’에 대해 같은 날 상반된 메시지를 던졌다. 시장에서는 ‘파월이 살린 불씨를 옐런이 꺼뜨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 스티브 차바론은 “옐런과 파월이 동시에 은행 예금에 대해 모순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파월은 본질적으로 모든 예금이 안전하다고 말했고, 옐런은 그저 허세를 부렸다는 것이 차바론의 분석이다.

이날 파월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회견과 옐런 장관의 의회 출석이 겹쳤다. 두 주요 인사가 공식 석상에서 같은 날 발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파월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계속 은행 시스템 여건을 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은행 시스템의 안전성과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파월의 이러한 발언은 시장을 안정시키고, 은행 사태가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에도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객에게 신뢰감을 갖게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는 의도로 평가됐다.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은행 시스템 안정을 위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파월 연준 의장은 FOMC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은행 시스템 안정을 위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옐런 장관,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냐”

반면 옐런 장관은 이날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모든 예금을 보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앞서 주요 외신은 재무부 당국자들이 FDIC의 지급 보장 대상을 모든 예금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전날 옐런은 “필요할 경우 예금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혀 지역 은행들에 대한 우려를 크게 낮춘 바 있다. 이에 은행주들이 크게 반등했고 증시 전체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그러나 옐런은 이날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과 관련해 어떤 것도 논의하거나 고려한 바가 없다”며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화당 의원의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자금 출처에 관한 질문에 옐런이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같은 답변을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시장은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옐런의 발언은 파월 의장이 동부 표준시 기준 오후 3시경 “미국의 은행시스템은 건전하고 회복력이 있다”고 말한 직후에 나왔다. 이에 트레이더들은 은행주가 옐런의 발언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지역 은행을 추적하는 ‘SPDR S&P 지역은행 ETF(KRE)’는 5.7% 하락했다.

FBB캐피탈파트너스, “파월과 옐런의 상충적 메시지는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FBB캐피탈파트너스의 연구 책임자 마이크 베일리는 “파월과 옐런은 정부가 사적 위험을 감당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하는 것 사이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행히도 투자자들은 파월과 옐런의 발언 이전에 이미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는데 이들의 상충되는 메시지는 S&P 하락에서 볼 수 있듯이 투자자들을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옐런 재무장관의 발언이 증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YTN 캡처]
옐런 재무장관의 발언이 증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YTN 캡처]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퍼싱스퀘어 최고경영자(CEO)인 빌 애크먼은 옐런 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은행에서 예금 유출이 가속화될 것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월가에서 '리틀 버핏'으로 불리는 애크먼은 SVB 파산 이후 미국 규제당국이 은행 예금을 전액 보장해야 된다고 주장해왔다.

애크먼은 트위터 게시물에 "오늘 옐런 재무장관이 모든 은행과 예금자의 예금을 암묵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면서 어떤 보증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적인 발언을 했다. 게다가 연준은 금리를 5%로 올렸다"며 "5%의 금리는 은행 예금을 훨씬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예금 유출이 즉시 가속화 되지 않는다면 놀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크먼은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 차원의 일시적 예금 보증이 필요하다"며 예금 보호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소규모 은행들에 대한 피해는 더욱 오래갈 것이고, 이들 은행이 다시 고객을 다시 유치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옐런이 공화당 의원 질문 받고 당황했다는 분석도 제기돼

하지만 옐런의 발언이 ‘질문자가 공화당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옐런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낀 데서 나온 해프닝성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재정적자를 내지 않으면서 은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순인 상황에서, 공화당 의원이 그 모순을 지적하자 당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 소스닉은 “옐런 발언은 분명히 은행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발언은 예상보다 더 많은 금리 인상을 포함해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데 필요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파월의 발언과 대략 일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들을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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