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창업 신화를 성공시켰던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이 2년만에 경영복귀한다. 서 명예회장은 오는 28일 셀트리온그룹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 돌아온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이 2년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사진 출처=나무위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이 2년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사진 출처=나무위키]

이에 앞서 지난 3일 셀트리온그룹은 사별 이사회를 열어 서 명예회장을 셀트리온홀딩스를 비롯한 셀트리온그룹 내 상장 3사인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의 사내이사 겸 이사회 공동의장 후보자로 추천하는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임기는 2년이다.

서 회장은 지난 2021년 3월 공식 은퇴하면서 원격의료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인생 3막이라고 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 최연소 임원 시절이 인생 1막, 셀트리온 신화 창조가 인생 2막에 해당한다.

2020년 연말 인생 3막으로 ‘U헬스케어’ 비전 밝혀... “사기로 드러난 테라노스 창업자 찾아 갈 것”

서 명예회장이 인생 3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지난 2020년 연말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은퇴 뒤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Anne Holmes)를 언급했다. 홈즈는 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학 키트를 개발했다고 했으나, 그 주장은 사기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서 명예회장은 당시 피검사로 원격진료를 실현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기로 밝혀지긴 했지만 미국 테라노스가 그런 꿈을 꿨다”면서 “은퇴하면 테라노스 창업자를 찾아가 ‘넌 정말 어디까지 한거냐’고 물어볼 생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그야말로 혁신가의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된 사업가의 비전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는 셀트리온의 창업과정을 연상시켰다. 자동차 회사 출신인 서정진은 외환위기로 실직한 상황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제약바이오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라는 신산업을 개척했다.

서정진이 주목했던 엘리자베스 앤 홈즈는 2014년 극소량의 혈액으로 25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학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었다. 테라노스는 미국 최고의 메디컬 유니콘 기업으로 회자되면서 2015년 시장 가치는 90억 달러로 평가됐다. 약 45억달러의 자사 주식을 보유한 홈즈는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자수성가형 여성’이 됐다.

하지만 1년 뒤에 사기극이 드러났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테라노스를 탐사보도했다. 그 결과 광고에 언급된 250여 개의 질병 중 실제로 에디슨이 진단할 수 있는 것은 헤르페스를 포함해 16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머지 200여 개의 병은 실제로는 다른 기업이 출시한 의학 기기로 진단한 것이다. 2016년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0원으로 폭락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전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스(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가족들과 함께 연방 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전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스(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가족들과 함께 연방 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 회장은 테라노스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려고 했다. 유비쿼터스와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한 건강 관리 서비스인 ‘U헬스케어(U-healthcare)’ 진출을 선언했다. 몇 방울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제품을 시발점으로 삼아 ‘U헬스케어’ 산업을 구축해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3막과 관련한 족적 없이 돌연 2막으로 복귀...‘서정진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 됐다?

하지만 그가 이같은 인생 3막의 비전과 관련해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돌연 인생 2막으로 다시 복귀한 까닭은 무엇일까? 오너인 서 명예회장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셀트리온은 현 경영진이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재정비하던 중 서 명예회장이 공동의장으로서 주요 제품을 미국에 신속하게 출시하고 현지 유통망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의사결정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줄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전략 제품 승인 및 출시,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 계열사 합병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서 명예회장의 의사결정이 요구됐다는 것이다.

사실 서 명예회장은 은퇴 당시 그룹을 둘러싼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현직으로 돌아오겠다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따라서 서정진의 귀환은 셀트리온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변화가 발생했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결단하기 어려운 현안이 적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서정진, 국내 제약바이오 사상 최대인 5조원 규모 빅딜 추진 확인돼

우선 서정진의 역할과 관련해 대규모 인수합병건이 당장 거론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1일(현지시간) 셀트리온과 미국 과학 기기·서비스 제조 기업 써모피셔사이언티픽 등이 박스터의 '바이오파마솔루션' 사업부 인수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사업부는 바이오의약품, 백신 등 의약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부서다.

셀트리온은 이날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미국 의료기기 업체 '박스터인터내셔널'의 바이오의약품 사업부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대해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해당 보도에 대해 "바이오파마솔루션 사업 부문 인수와 관련해 검토한 바 있으나 현재 확정된 사항은 없다"면서 "해당 내용에 대한 결정 사항이 발생하면 재공시할 것이며 추후 진행 상황에 대해 1개월 이내에 다시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확정된 사항’은 없지만 서정진이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이 빅딜이 성사될 경우 거래 규모는 40억달러(약 5조2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분야 최대 규모 M&A이다.

박스터 CMO 사업부는 ‘램시마’ 파트너, ‘거대한’ 미국 시장 진출 포석인 듯

특히 셀트리온은 박스터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부문 사업부와 지난 2017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의 위탁생산 계약을 한 바 있다. 램시마는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이자 셀트리온의 출발점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가 글로벌 누적 처방액 12조 원을 돌파했다고 21일 밝혔다.

셀트리온헬스케어 관계자는 “올해 중남미 지역을 비롯해 내년에는 미국에서 램시마SC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램시마로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도 박스터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부문 사업부 인수는 필요한 것이다. 셀트리온이 생산한 원료의약품(DS)을 박스터가 주사 제형의 완제의약품(DP)으로 생산하는 구조가 작동될 수 있다.

미국내 바이오시밀러 생산 및 물류 효율성의 대폭적 향상이 예상된다. 거대한 미국 제약바이오시장에 대한 본격적 진출을 앞두고 창업자가 귀환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