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주도의 단극세계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중국의 시진핑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에 앞서 백악관 NSC대변인 존 커비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협력을 강화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구축한 국제질서에 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규칙에 의거한 국제질서 Rule-based World Order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러중회담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이니셔티브가 나오더라도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중국외교부 대변인 친강은 2022년 미국민주정황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진실을 잃었으며 정치는 엉망이고 사회질서 악성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금권정치와 신분제 정치로 사회는 분열되고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강은 미국이 자신의 난제도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보다 높은 데 앉아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민주주의의 교사인 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정도로 중국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무시하고 있다.

시진핑 역시 자신의 명의로 러시아 언론에 발표한 문장을 통해 동일한 견해를 밝혔다. 세계에는 홀로 1등인 국가는 있을 수 없다면서 전세계가 따라야 할 국가통치모델도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나라가 지정하는 국제질서도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러시아방문은 우정과 협력, 평화의 여정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위기의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는 것은 우리로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현실자체에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 현실을 알아야만 거기에 맞는 정책을 세울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침반이 고장나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항해 할수 없는 것과 같다.

우크라이나 분쟁을 계기로 진영이 다변화되면서 중국은 굉장한 어부리지를 얻고 있다. 러시아와 한 진영으로 묶이면서 그동안 미국주도의 서구질서에 반감을 가졌던 글로벌 사우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라틴 아메리카도 중국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시진핑은 러시아 방문에 이어 베이징에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브라질의 룰라는 레오파르트1 전차용 105mm포탄을 판매해 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단칼에 거부하면서 중국에 대해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 나서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분쟁에서 중립을 고집하면서 사실상 러시아의 편을 들었던 룰라는 이번 베이징 방문에 240명이나 되는 기업인 단체도 데리고 갈 예정이다. 룰라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홀로 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브릭스BRICS 회원국으로 인구 2억 1600만명에 자원대국이기도 한 브라질은 중국과 기술 에너지 부문에서 합작하기로 했다.

20일(현지시각)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또 라틴 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도 가까워지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영국과 앙숙인 아르헨티나는 중국제 군사무기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중국제 전투기 J-10과 보병전투차 구매계약에 서명하기 직전이라고 여러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뿐만이 아니다.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오랜 반목을 접고 화해하기로 한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움직임도 놀랍기만 하다. 화해발표에 이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를 리야드에 초청했다. 7년만에 외교관계를 회복한 두나라는 외교장관회담도 계획중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의 초청서신에서 이란을 형제국이라고 표현한 점이다. 수세기 동안 원수로 지낸 수니파사우디 아라비아와 시아파 이란이 형제로 변했다. 이로서 미국의 중동전략은 뒤집혀 버린 셈이다. 미국의 중동 맹방인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연합해 이란을 적대시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데 좌절을 겪은 것이다. 사우디는 이와 함께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영사관도 개설하기로 했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간주하고 있는 시리아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리아가 독재국가라는 인식은 사실 이 지역을 분할 통치하려는 서방진영의 거짓 선전이다. 아사드가 자국민들을 독가스로 살해했다는 것은 날조된 것이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UAE를 방문했다. 아사드는 아부다비 공항에서 셰이크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햔 UAE대통령의 대대적인 영접을 받았다. 시리아와 UAE정상은 양국간 관계정상화와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과거 6년동안 UAE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시리아와 UAE는 사실상의 적국이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여기에는 마침 시리아를 강타한 대지진도 전화위복이 됐다. 지진직후 UAE외무장관이 다마스커스를 방문하면서 구호품도 보냈다. 시리아는 10년동안 서구와 아랍연맹의 22개 회원국으로부터 고립돼 있었으나 다시 아랍의 품으로 회귀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동지역에서 영향력을 증강하고 있는 러시아의 후원도 한몫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극화로 재편되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의미하다. 국익에 따른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눈부시게 이뤄지고 있다. 적이 우군이 되고 우군이 적으로 뒤바뀌고 있다. 나쁜나라도 없고 좋은 나라도 없다. 국제질서는 선악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패러다임 자체가 급변하는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우선 현실과 팩트 자체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맞는 유연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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