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반도체특별법’이 3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보다 반도체 세액공제 비율을 상향하는 쪽으로 돌아서며, 여야가 16일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논의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3일 여야는 합의로 반도체 관련 시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설비 투자 세액공제를 대기업과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로 합의한 바 있다. 기존의 세액공제 비율은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였다. 대기업만 고작 2% 올리는 데 그치고, 실질적으로 세액공제 필요성이 절실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3일 기획재정부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투자금액 세액공제는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직전 3년간 평균 투자액 초과분에 대한 10% 추가 세액공제 등을 포함하면 공제율은 최대 25~35%로 늘어난다.

주호영, “野, 15% 세액 공제 찬성 고맙다”...진짜 고마운 대상은?

이와 관련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15% 이상 세액 공제를 하겠다는 안에 찬성하겠다’는 것을 놓고 감사함을 표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169석 의석으로 국정 방해가 많지만, 오늘 모처럼 한 가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정부가 지난 예산 법안에서는 8%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 당은) 다른나라(상황을) 보니까 (관련) 보조금이 많아서 세액 감면으로는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없다는 사정이 밝혀져 세액 공제 15% 법안을 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해당 법안을) 반대하다가 각국의 ‘반도체 전쟁’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간사를 통해 협조 뜻을 밝혀왔다. 모처럼 협조에 감사하다”면서 “국익 경제 관련해서는 여야 없이 국민을 보고 가는 풍토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15% 이상 세액 공제를 하겠다는 안에 찬성하겠다’는 것을 놓고 감사함을 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15% 이상 세액 공제를 하겠다는 안에 찬성하겠다’는 것을 놓고 감사함을 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민주당은 주 원내대표의 언급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기획재정위원회에 (법안을 처리)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진 일부 의원이 있으나 당의 방침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 차원에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펜앤드마이크는 반도체 세액공제율 상향에 미온적이던 기획재정부와 민주당의 입장을 비판한 바 있다. ▶펜앤드마이크 지난해 12월 27일 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을 떠나라고? ... 기재부와 민주당은 정신 차려야’ 제하 보도 참조.

지난해 12월 23일 국회가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기존 6%에서 겨우 2% 인상한 8%로 정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세수 감소를 우려한 기획재정부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방안(대기업 기준 10% 세액공제)보다 낮은 세제지원책을 우긴 결과라는 점을 보도했다.

또 대기업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가 8%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재개정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 소속 민간위원들과 학계가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 인상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민간위원들은 미국의 25%에 비해 크게 부족한 점을 들어, 반도체 미래가 없어졌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그때 국민의힘은 2030년까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20%, 중견기업은 25%, 중소기업은 30%로 대폭 상향하자는 안을 냈다. 반면 민주당은 ‘재벌 특혜’라는 판에 박은 논리를 펴며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를 주장했다.

문제는 민주당보다 기재부가 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폈다는 점에 있었다. 기재부는 ‘세수 감소’를 우려하며 대기업 세액공제율 8%를 관철시켰다. 기재부의 주장에 국회는 여야 합의로 ‘최악’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자국내 반도체 신규 투자에 대해 각각 25%와 최대 100% 세액공제 정책을 실시하는 데 반해, 우리 정부는 ‘반도체 투자 홀대 정책’을 공식화했다. 민주당의 ‘재벌특혜’ 논리와 기재부의 ‘세수 감소’ 논리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게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과 다름없는 셈이었다.

윤 대통령, 대기업 8% 공제 비율 재검토 지시...기재부, 공제 비율 높인 개정안 국회 제출

이처럼 최악의 반도체 지원책을 선택한 여야가 재개정에 나선 데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기재부가 통과시킨 8%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함에 따라, 기재부는 지난 1월 3일 공제 비율을 더 높인 개정안을 발표해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더 일찍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 하고 요청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뒤늦게 문제 인식을 갖고 세법 개정안을 냈으니 도와 달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말 국무회의에서 기획재정부에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말 국무회의에서 기획재정부에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처럼 기재부가 정부안의 미흡함을 인정함에 따라, 여야가 합의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는 오는 16일 기재위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을 심사한 뒤 합의 처리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모았다. 여야 합의로 소위 문턱을 넘으면 22일에 열리는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안에는 반도체 세액공제 비율을 기존 정부안보다 상향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 측 기재위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이미 조세소위나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세액공제 비율과 관련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16일에 논의해 처리를 하려고 한다"며 "정부·여당은 정부안이 제출돼 있기 때문에 정부안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안보다 더 세액 공제율을 높이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야당 측 기재위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세액 공제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민주당 내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이 돼 있다"며 "세수 문제가 없을 경우 정부안보다 더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의 입장을 의식한 듯 "일단 충분히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당내 및 업계 등 추가적인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민주당, 반도체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정책 정당인 양 급선회?

‘대기업 감세’에 비판적인 민주당이 이렇게 세액공제율 상향에 동조하는 데는, 최근 미국 반도체지원법 시행에 따라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당대표를 비롯해 정책위의장까지 ‘반도체를 지원 대책’ 마련에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반도체지원법 대응 긴급 간담회’에서 “반도체를 포함해 첨단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자칭해 왔는데 정작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일반 회사 같으면 해고됐을 영업 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지원보다는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쪽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김성환 정책위의장 역시 정부안보다 세액공제 혜택을 높이는 안을 검토중이라며 “정부안보다 더 하자는 일부 의견이 있고, 어떻게 할지 가급적 빠르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까지는 사안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책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겠다고 나서는 모습이다. 민주당이 늦었지만 반도체 세액공제 확대에 협조한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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