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펜앤드마이크TV에 출연해 정규재 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 [사진=펜앤드마이크TV]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안철수 후보가 6일 오전 라디오 전화 인터뷰 이후로 공개 일정을 모두 취소한 후 하루동안 잠행에 들어갔다. 안 캠프 측에선 "경선이 과열돼 확전은 자제해야 한단 메시지"라며 "잠행은 아니고 정책 구상에 몰두하며 다음날부터 다시 일정을 소화할 것"이란 메시지를 냈다.하지만 안 후보는 '윤안 연대' '윤핵관' 등의 단어를 앞으로는 쓰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한 만큼,선거운동을 재개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파이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안 후보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가 잠시 보여줬던 패기를 잃고 다시 '간철수(간보는 안철수)'로 돌아감으로써 당대표 후보로서의 매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안 후보는 이날 오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윤안 연대'란 표현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정말 충실하게 존중하면서 실행에 옮기겠다는 그런 뜻이었는데, (대통령이) 그걸 나쁜 표현이라 생각하신다면 저는 쓰지 않을 생각"이라 했다. 이어 "('윤핵관'도) 부정적인 그런 어감들이 있어서 저도 쓰지 않기로 했다. 제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고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실 줄도 사실은 제가 몰랐었다"고 말했다.

이는 5일 윤 대통령이 자신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려 했다며 안 의원을 엄중 경고해야 한다고 당에 의견을 전달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안 의원의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초지일관 윤 대통령에게 도움을 주는 당대표가 되겠다고 천명해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 핵심 친윤들을 구분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해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윤핵관'을 감싸는 모양새가 되면서 더 이상 '투트랙 전략'을 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윤심'을 고려하면 안 후보는 당대표가 되어선 안될 지경이 됐다.

윤 대통령이 안 후보에 완전히 돌아서게 된 지점은 어디쯤일지 확실하진 않다.인수위때부터 좋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적어도 이번 경선에서는 의미있는 득표를 하게될 것이란 여론조사가 나오면서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중 기폭제의 하나는 안 후보가 지난 3일 펜앤드마이크TV에 출연해 "윤핵관의 지휘자는 장제원 의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발언했던 것일 수 있다. 안그래도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 발언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랐다. 일부에서는 안 후보가 인터뷰 진행을 맡았던 정규재 고문의 유도 심문에 걸려들었다고 분석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안 후보는 애매모호한 화술을 구사하던 평소의 그답지 않은 패기를 보여주면서 직설화법을 구사했다. 안 후보가 나름대로의 메시지 수위를 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 고문도 안 후보가 많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안 후보가 의도적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즉 일부러 '윤핵관'을 도발해 이들과 싸움을 벌임으로써 김기현 후보를 당대표 선거전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려 한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 후보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지상가치로 내세우고 대통령의 당무 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당에서 이준석 전 대표·나경원 전 의원에 이어 안 후보까지 몰아내려는 시도는 치졸하고 졸렬한 정치 공작이 돼 버린다. 이렇게 되면 갈곳 없는 젊은 당원들과 '비윤' 성향의 기존 당원들이 안 후보를 열렬히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强)철수의 탄생이다.

하지만 호기있게 나가던 안 후보가 6일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이러한 분석도 소용이 없게 됐다. 안 후보가 다시 '약(弱)철수'내지는 '간철수'로 전락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펜앤TV에서 "당대표 후보 사퇴는 절대 없다. 끝까지 간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무색해질 가능성마저 생겼다. 대통령실과 친윤이 몇번 더 도끼질을 하면 버틸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보인 셈이다.

안 후보는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느새 비윤의 구심점이 돼 가고 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을 지지하긴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즉 '대통령과 윤핵관들이 점찍은 후보를 위해 다른 후보들을 말도 안되는 절차로 죽이고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윤 대통령의 무리한 개입에 대한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무비판적으로 윤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이럴 거면 당대표 선거 하지 말고 그냥 윤 대통령이 당대표를 지명해라'며 성토하고 있다. 이에 더해 '개인적으로 안철수를 좋아하지 않지만(또는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무시할수 없다.

이같은 정황은 안 후보가 정치인으로서의 호불호를 떠나 이번 논란에 대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내년 총선의 최전선인 수도권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는 수도권 사령관이 필요하다'는 안 후보의 출마의 변이 주목을 받으면서 '안 후보 아니면 내년 총선에서 필패다'란 의견이 나름 설득력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키는 여전히 안 후보가 가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 있으며 김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신평 변호사는 5일부터 연일 "안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폭탄 발언을 내놓고 있다. 반면 안 후보는 펜앤TV와의 인터뷰에서 "절대 국힘을 나가지 않을 것이며 정치 인생을 마친다면 이 당에서 끝낼 것"이라 했다. 보수층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당의 분열·신당 창당에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의 주변에서 이러한 발언이 나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공산이 크다. 정 안되면 당대표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는 윤 대통령을 보호할수 있는 방안이언정, 본인은 '철수' 이미지를 영원히 가져가게될 것이어서 그런 결정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게 안 후보측 설명이다.

반면 안 후보가 윤 대통령의 압박에 급격히 패기를 거두고 예전의 '간철수'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매력을 완전히 잃고 그저 그런 당대표 후보가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가 '강철수'로서 자신이 처한 딜레마를 정면 돌파하지 않으면 설령 전당대회에서 이기더라도 여당의 개정된 당헌당규에 의해 최단기간에 물러날 수 밖에 없는 허수아비 당대표가 될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이미 공정언론국민연대는 6일 "언론노조를 지지해 온 안철수 의원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며 성명을 냈다. 앞으로 한달간 안 후보에 대한 주변의 '흔들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가 대규모로 발발하자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 '대구 봉쇄'를 거론할 때 홀로 대구에서 의료 활동을 벌였던 안철수의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란 평가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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