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위안부·징용공 문제는 한국 측의 억지 논리에서 발단된 것
위안부 문제, 징용공 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선언하여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앞장서 달라

[편집자 주] 이 글은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교수)이 2022년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역사분쟁의 청산'을 주제로한 서한이다. 이 서한에서 이영훈 교장은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는 위안부·징용공 문제는 한국 측의 억지 논리에서 발단된 것이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폐기할 것을 주문했다. 즉, 위안부 문제와 징용공 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선언하여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앞장서 달라는 고언을 전한 것이다. 이 서한을 보낸 지 1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아직도 두 가지 문제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어,이번에 전문을 공개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귀하

귀하의 대통령 당선에 이 나라의 자유민주 시민이 크게 안도한 것은 귀하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튼튼하게 재건하겠다는 공약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민주 시민은 귀하가 우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우방인 일본과의 관계도 정상화해 줄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 위해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두 가지 큰 장애를 과감히 치워야 합니다. 저는 귀하가 조속한 시일에 일본과의 소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 동원 문제를 둘러싼 역사분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선언해 주시길 바랍니다.

외교는 야당과의 타협이나 예산의 제약을 받지 않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귀하의 그러한 선언은 당장은 야당과 언론의 반발을 살지 모르나 점점 다수 국민의 뜨거운 지지를 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다수 국민은 그것이 우리나라가 나아갈 역사의 광명정대한 방향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지난 30년간 위 두 문제에 관하여 우리 정부가 어떻게 잘못 대처해 왔는지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안부 문제

1) 1991〜199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터졌습니다.

2)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일본 정부에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강하게 압박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양국의 우호·협력관계를 위해 구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에 일본 정부와 군이 간여하고 강제 연행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고노(河野) 담화를 발표하였습니다.

3) 일본 정부가 책임과 사과의 뜻을 표하자 김영삼 정부는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면서 생존 위안부의 생활 안정과 기념사업을 지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3년 단계에서 양국 간의 우호·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원만하게 타결되었습니다. 이를 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의 제1차 합의와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 그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으며, 강압으로 모집된 사례가 많았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요헤이 당시 일본 관방장관. 그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으며, 강압으로 모집된 사례가 많았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4) 1995년 이후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의 후속 조치로 아시아 각국의 생존 위안부에 대한 사과의 편지를 전함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 여성 기금을 통해 인당 300만 엔의 생활과 건강을 위한 자금을 전하였습니다.

5) 그렇지만 위안부 문제를 주관해 온 민간단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는 그 같은 일본 정부의 후속 조치를 거부하였습니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그의 전쟁범죄를 법률을 제정하여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일본 정부가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여지는 없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배경과 실태에 대한 이해가 너무 달랐기 때문인데, 그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6) 1998년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정대협과 일본 정부와의 대립에서 정대협의 입장을 지지하고 그의 사업을 지원하였습니다. 정부는 1965년 일본과의 이른바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남아 있다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교섭을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노 담화에도 불구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관련 시위를 하는 정대협(후에 정의기억연대) 회원들.
고노 담화에도 불구하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관련 시위를 하는 정대협(후에 정의기억연대) 회원들.

7) 2006년 정대협은 정부가 일본 정부와 외교적 교섭에 나서지 않음은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으며, 2011년 헌법재판소는 정대협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의 진행 과정에서 정부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 같은 정부의 대외 표리부동과 대내 무사안일의 자세가 위안부 문제를 지금까지 미해결로 남게 한 한 가지 중요 원인이었습니다.

8) 박근혜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부응하여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2015년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여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생존 위안부에 1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이것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제2차 합의입니다.

9) 동 협정의 체결을 앞두고 정부는 정대협에 협정의 내용을 통보하고 그에 관한 동의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대협은 이후 동 협정을 거부하였습니다.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미제인 채 장기 지속함이 유리하다는 단체의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10) 2017년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고 기금을 일본 정부에 반환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와 어떠한 교섭도 시도하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1) 다른 한편 2016년 일부 생존 위안부와 유족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법원은 국가는 타국 법원에서 동의 없이 피고가 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의 원칙을 무시하고 소송을 성립시킨 다음 2021년 1월 원고 승소를 판결하였습니다. 동년 4월 동일 요구의 다른 소송 건에 대한 다른 재판부의 판결은 주권면제의 원칙에 따라 원고 패소를 판결하였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이 나라의 사법부는 더 없는 혼란과 모순에 빠졌습니다.

12) 결론: 이상과 같은 30년간의 경과에서 명확하듯이 위안부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고 있지 못함은 정부와 민간단체의 표리부동, 무사안일, 약속위반, 국제법 무시가 기본원인이었습니다. 이미 두 차례나 크게 합의한 바가 있어서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일본 정부에 요구할 것은 없습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정직하고 과감하게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이나 교섭의 과제가 아님을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후에 이 문제들 둘러싼 과거 30년의 역사를 백서로 편찬하여 이 문제를 국내에서도 종결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 국민에게 널리 홍보해야 합니다.

강제 동원 문제

1) 태평양전쟁기에 일본의 일본제철이란 회사에서 노동한 2명의 한국인이 1997년 강제 동원과 강제노동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이들은 2003년 일본 최고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 소송에서 모두 패소하였습니다. 이후 2005년 이들은 2명의 소송인을 더하여 국내 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들은 국내의 1, 2심에서도 패소하였습니다.

2) 2012년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하였습니다. 2018년 대법원은 고등법원을 거쳐 올라온 해당 안건에 대해 일본제철을 잇는 회사 신일철주금이 원고 4명에 대해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이 압류되고 매각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이것이 지금 일본과 심각하게 진행 중인 분쟁의 출발입니다.

3) 2012년과 2018년의 대법원 판결은 사실관계에서나 법리에서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서 지우기 힘든 일대 오점을 남겼습니다. 사실관계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이 진술한 피해 내용을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진술을 그대로 취신(取信)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원고들이 남긴 별도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일본제철의 공원 모집에 자발적으로 응하여 높은 경쟁을 뚫고 채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일본제철에 채용된 1943년 9월은 징용이 실시되는 1944년 8월 이전이었습니다. 일본제철의 미불금 공탁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높은 수준의 임금을 정상적으로 수령하였습니다.

4) 법리의 면에서 대법원은 1965년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체결한 조약과 협정을 오독하거나 무시하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동 협정은 일본이 한국에 3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하며 이로써 양국 간의 재산 및 채권·채무에 관한 청구권과 더불어 식민 지배에 따른 고통과 손해를 포함한 일체의 피해를 영구히 청산한다고 하였습니다.

5) 동 조약과 협정은 체결 이후 국회의 비준을 얻음으로써 국제법의 지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설령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법리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수단을 통해 추구되어야 하며, 재판을 통해서는 불가합니다. 재판은 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법의 판결에 대한 법조계와 학계의 광범한 비판은 이러한 이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제 시절 징용공의 강제동원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
일제 시절 징용공의 강제동원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

6) 결론: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이 매각되면, 일본 정부는 곧바로 상응하는 보복을 조치할 것이며, 이는 양국 관계를 걷잡을 수 없는 파탄으로 이끌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예견되는 사태를 방관해 왔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공개적 선언으로 신일철주금 자산의 매각을 중단함과 더불어 대법원의 2012년과 2018년 판결이 지닌 심각한 모순을 사법부와 공유하면서 재심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3월 28일

이영훈 드림(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정년 교수, ㈜이승만학당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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