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대사관 인근 인공위성 사진 / 출처=구글어스

옥외집회 개최 장소와 관련한 경찰의 편파적 법집행에 과연 제동이 걸릴 것인가? 오는 25일 열리기로 예정된 한 행정 소송 본안 사건의 가처분 사건 심문 결과 여하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서울행정법원 2023아73).

◇경찰 ”日 대사관 앞 反日 집회는 괜찮지만 美 대사관 앞 親美 집회는 안 돼”

소송의 당사자는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고(故) 김학순 씨의 1991년 ‘첫 증언’ 이래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일본군 위안부’ 논의에 제동을 건 당사자이기도 한 김 소장은 지난 2020년 9월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을 결성하고 서울 종로구 수송동 소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개최돼 온 정의기억연대 측 ‘수요시위’에 대항해 맞불 집회를 열어 왔다.

그런 김 소장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상대로 옥외집회 금지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해당 금지 처분의 일시적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자신이 개최하겠다고 한 집회에 대해 전면적인 금지를 한 경찰 측 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김 소장이 집회를 열겠다고 한 장소는 바로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주한미국대관 정문 옆 인도와 1개 차로. 김 소장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과 또다른 시민단체 ‘한미동맹강화운동본부’ 소속 회원 30명이 참가한다는 내용으로 ▲1월27일(금요일) ▲1월28일(토요일) ▲2월3일(금요일) ▲2월4일(토요일) 총 네 차례 해당 장소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관할 경찰서인 서울 종로경찰서는 해당 집회가 ‘외국 공관 경계 100미터(m) 이내’라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 제5호에 따른 ‘옥외집회 금지 장소’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어 김 소장에게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이번 행정 소송과 그에 따른 가처분 신청은 경찰의 이같은 처분에 대한 불복이다.

김 소장은 경찰의 행정이 매우 편파적이고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강력 반발 중이다.

이에 앞서 김 소장은 서울 종로경찰서에 “정의기억연대 측이 매주 수요일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개최해 온 ‘수요시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5호에 따라 ‘외국 공관 100m 이내에서 열리는 집회’로써 금지 대상인데 어째서 그같은 금지를 하지 않고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민원을 제기했는데, 이에 대해 동(同) 경찰서 측은 “해당 법률은 ‘해당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 숙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집회를 개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즉, ‘수요시위’가 외국 공관에 해당하는 주한일본대사관 경계 100m 이내의 장소에서 개최되고는 있으나 해당 집회는 ‘평화로운 집회’로써 일본대사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김 소장은 “우리가 미 대사관 앞에 신고한 집회는 참가 인원이 30명으로써 ‘대규모로 집회로 확산될 우려’가 없다고 할 것이고, 집회 내용도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 협력 체제 강화를 촉구하는 내용으로써 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집회임이 명백한데, 우리 집회는 금지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일본대사관 정문 코앞에서 열려온 ‘수요시위’에 대해서는 금지를 통고하지 않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모순”이라며 “미 대사관의 업무가 없는 토요일에 개최할 예정인 집회까지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본 대사관 앞 반일 집회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도 않으면서 미 대사관 앞 친미 집회를 규제하는 경찰의 태도는 필시 외교 문제로 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한 미대사관 주변 반미시위 2017.6.24/사진=연합뉴스

◇집회 장소 둘러싼 금지-허용 공방 문제, 이번 소송으로 해소될까?

김 소장이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소송과 관련해 다음 주 중 열릴 가처분 신청 심문에 경찰 조직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번 가처분 결과에 따라서 미 대사관을 포함해 주한중국대사관 등 국내 주재 외국 공관에 대한 경찰의 행정 처분 태도가 재고(再考)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주로 미 대사관 또는 일본대사관(영사관)이 집회의 대상이 돼 왔는데, 국내 좌익 세력이 ‘반미’와 ‘반일’이라는 두 개의 깃발을 앞세워 이들 두 나라의 공관을 타겟으로 집회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간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중국대사관 경계 100m 이내에서 개최되는 반미 또는 반중 성격의 집회에 대해서는 적극 금지를 하는 한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이뤄지는 반일 성격의 집회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등 이중잣대를 적용해 왔다. 외국 공관에 따른 경찰의 태도 차이는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고려된 정치적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가처분 신청이 전격적으로 인용될 경우 경찰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변경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지금껏 주한미국대사관을 대상으로 한 집회들 가운데 대사관 정문 앞을 포함한 집회는 손에 꼽는다. 지난 2017년 6월24일 시민단체 ‘6·24사드철회평화행동’이 ‘미 대사관 포위 시위’를 한 것이 거의 유일한 사례.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을 둘러싸는 형태로 행진하겠다는 시민단체 측 시위에 대해 대사관 정문 쪽 행진만 허용하고 대사관 뒷길 행진은 금지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집회 개최 예정일이 토요일인 만큼 대사관 업무가 없는 휴일에 해당하고 해당 집회가 대사관에 위해(危害)를 가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없어 보인다며 종로소방서의 긴급 출동이 방해받지 않도록 ‘20분 내 신속 통과’를 조건으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집회에 운집한 시민들의 숫자는 3천명에 달했다.

해당 사례를 제외한 다른 반미 성향 집회들은 주한미국대사관 남측 벽으로부터 남쪽으로 50m 떨어진 KT광화문지사 건물 앞에서 개최돼 왔다. 이마저도 애초 경찰은 집회를 금지해 왔으나 사법부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거나 폭력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주한미국대사관을 대상으로 한 집회라고 하더라도 금지돼선 안 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경찰이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2019. 8. 14. 일본 대사관 앞 제1400차 수요시위 / 사진=연합뉴스

◇”美 대사관 정문 앞 집회는 전례가 없다”… 비상 걸린 경찰

그럼에도 경찰은 주한미국대사관 정문 인근의 집회는 필사적으로 막아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의 몇몇 변호사들 또는 일부 좌익 단체 및 정당 관계자들이 주한미국대사관 정문 인근에서 ‘1인 피켓 시위’를 진행해 온 정도다.

김 소장의 집회가 허용될 경우 앞으로 반미 성향 단체들이 해당 장소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나선 때 경찰로서는 막을 명분이 없어 대사관 경비 업무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게 경찰 측 우려다. 어느 경찰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앞으로 미 대사관 코앞까지 들이닥칠 좌익들의 집회를 통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해당 경찰관은 “이번 소송에서 김 소장 측이 이기게 된다면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소장은 이번 소송을 관철해 내겠다는 입장이다.

펜앤드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개최되는 반일 집회가 관계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미국대사관 앞 친미 집회는 더더욱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이라며 “금지하려면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허용하려면 일률적으로 허용해야지, 일본대사관 앞은 봐주면서 미국대사관 앞과 중국대사관 앞은 미국과 중국 눈치 보며 법집행을 강력하게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경찰의 수준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가처분 심문은 오는 25일 오후 4시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B222호 준비절차실에서 있을 예정이다.

펜앤드마이크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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