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8일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로고 앞을 지나는 사람들.(사진=연합뉴스)
2018년 3월 28일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로고 앞을 지나는 사람들.(사진=연합뉴스)

학생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치다 보면 종종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미디어는 권력을 감시하는 사회적 기구로서 국민의 알권리를 구현해야 한다고 규범적 이론을 가르친다. 하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내용보다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온라인미디어들이 창궐하고 매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성 매체들처럼 정제되고 완성도 높은(well-made) 콘텐츠보다 주목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더 강조할 수 밖에 없다. 학생들도 객관성·사실성·공정성 같은 고리타분한 이론보다 먹방 유튜브나 카드뉴스에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매스미디어 문법은 진실까지는 아니어도 사실에 근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중시해 왔다. 언론의 역할이나 책무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보다는 잘 표현하는 것이 더 강조되고 있다. 텍스트 미디어에서 영상미디어 시대로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가상/증강현실이나 메타버스는 그런 변화의 최근 모습이다. 이런 신기술들은 결국 메시지가 지닌 의미(signified)보다 전달/표현 수단인 전달 방법(signifier)을 더 중시하게 만들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B급 콘텐츠나 가짜뉴스는 바로 이같은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전달 내용이 중요하지도 않아도 되고, 사사로운 것이어도 괜찮고, 설사 거짓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주목만 끌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폭발적으로 증가된 미디어 경쟁 체제에서 일단 주목받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미디어 생존 공식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작년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터뜨렸던 ‘더 탐사’라는 인터넷 매체가 슈퍼챗 잭팟을 터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 TBS에서 쫓겨난 김어준이 개설한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가 방송개시 1주일 만에 111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또한 첫날 9,350만 원의 슈퍼챗 수입을 올리는 신기록을 세웠고, 1월 두 번째에는 1억 4,100만 8,845만 원을 벌어들여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유튜브는 저질·가짜 콘텐츠? (CG). (사진=연합뉴스)
유튜브는 저질·가짜 콘텐츠? (CG). (사진=연합뉴스)

세계 1위를 했다지만 뒷맛은 어딘가 씁쓸하다. 통상 대중적 인기가 높은 오락이나 예능 콘텐츠가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 유튜브 그것도 거짓과 편파적 내용으로 논란이 많았던 인사가 진행하는 채널이다. 또 유튜브 데이터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가 발표한 2020년도 우리나라 슈퍼챗 상위 10개 유튜브 중에 7개가 시사·정치 채널이라고 한다.

시사타파, 열린공감TV, 더탐사, 가로세로연구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한 정치 성향과 강도 높은 표현 수위를 자랑하는 채널들이다. 아마 전세계에서 이렇게 정치 채널이 그것도 정파성이 매우 강한 채널들이 각광받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듯하다. 어쩌면 군중심리에 기반한 한국의 펜덤정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좋아 펜덤정치지 지지하는 정파나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우중정치(demagogia)’라는 표현이 훨씬 정확하다. 이처럼 반민중적 패거리 정치문화를 만든 것은 대중선동으로 몇 차례 집권했던 좌파정권들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선동 하나로 연명했다고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중청치가 만든 맹목적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동반 성장한 비즈니스가 바로 정치 유튜브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신념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돈을 버는 일종의 ‘신념산업’인 것이다.

이들 신념 유튜버들에게 정치적 진실과 올바른 정보, 합리적 판단처럼 공자님 말씀 같은 미디어 윤리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오직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립 서비스하면서 슈퍼챗 올리는 것만 관심이다. 졸업식장 주위의 꽃 장수나 야구장 입구의 치킨집 사장님에게 누가 졸업하고 누가 이기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졸업식 행사가 있고 야구경기가 벌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과 똑같다. 그들에게 대중들의 정치적 충성심은 새로운 형태의 ‘수용자 상품(audience commodity)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과잉으로 병들어있는 한국 사회를 중증으로 몰아가는 공범이기도 하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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