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한반도위원회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도 모두 불가하다면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전술핵이 언젠가 한국에 재배치될 경우를 가정해 양국 간 사전대비를 할 필요는 있다는 입장을 냈다. CSIS 한반도위원회는 존 헴리 CSIS 소장과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공동위원장이다. 여기엔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캐트린 캐츠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 부대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 등이 참여한다.

CSIS는 18일(현지시간) '대북 정책과 확장억제 보고서'에서 이 같은 시각을 강조하며 어느 시점에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그에 필요한 준비작업과 관련한 모의(테이블탑) 계획훈련을 양국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한미 실무급에서 이를 진행하되 재배치 시기와 무기 종류를 모호하게 두고 아직 재배치를 결정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것을 제안했다. 계획훈련에는 재배치의 환경 영향 연구, 핵무기를 저장할 시설을 둘 위치 파악, 핵 안전·보안 관련 합동훈련, 주한미군 F-16 전투기의 핵 임무 수행을 위한 인증 작업, 핵무기 저장시설 건설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미국의 전직 안보·외교 분야 관료들이 전술핵 재배치를 직접 언급하고 세부 준비까지 거론한 것이어서 워싱턴 내 기류도 앞으로 조금씩 바뀌는 것 아니냔 전망이 나온다.

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확장억제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메시지를 최고위급에서 계속 공개적으로 발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 기획그룹'(NPG)과 유사한 핵 공동기획 협의체를 만들어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

미 전략사령부에 한국군 고위 연락장교를 계속 파견하고 고위급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한편 한국이 인공위성을 활용한 미국의 미사일 조기경보체계인 '우주 기반 적외선 시스템'(SBIRS)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할 것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이미 미국이 이스라엘과 일본에 이런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위원회는 "확장억제가 효과가 있으려면 한국과 북한 모두 미국이 서울이나 도쿄를 구하기 위해 워싱턴DC나 뉴욕을 위험에 빠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확장억제력을 동맹 방어에 사용할 의지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장억제에는 물리적 역량만큼이나 심리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위원회는 한국이 핵무장이 가능한 전투기를 확보해 괌 등 미군기지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도 제안했다.

아울러 확장억제력 강화에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일 3국이 중국에 대한 대응을 조율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한미일이 대북 3자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채널로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을 재개하고 정보 공유와 대잠수함전, 미사일 방어, 위기 대응 계획, 3자 훈련 정례화 등으로 군사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미국이 한국의 '킬체인' 능력 확보와 한국형 아이언돔 조기 배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각에선 미국 최고의 싱크탱크가 사실상 전술핵 재배치 논의 시작을 제안한 것에 주목해 향후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 비확산 기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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