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전 조달청장

 지난해 말에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상속세법이 개정되었다. 공제 대상이 매출 4천억원에서 5천억원으로, 최대 공제한도가 500억 원에서 600억 원으로 조금 늘어났다.

그렇지만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이렇게 꼭 매출규모에 따라 한정해야 되는 지 의문이 든다. 세금은 가급적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매출 5천억까지는 상속세 공제를 허용하고, 매출이 5천억을 1억만 넘겨도 적용되지 않는 제도를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가. 

  가업상속공제는 중소기업 보호정책이 아니다. 가업 승계가 국가경제와 고용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의 존속으로 고용이 계속 유지된다면 재벌이나 중견, 중소기업 가리지 말고 허용해야하지 않을까. 기초공제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듯이…. 어차피 재벌기업은 대주주 지분율(40%)을 채우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고, 설령 혜택을 본다하더라도 매년 수조원의 법인세를 납부하고 10조원 이상 상속세를 내는 사람에게 600억 원 정도 깎아주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독일은 상속세 최고세율은 30%이지만 규모에 상관없이 기업 상속후 7년간 자산과 급여 총액이 승계 당시보다 감소하지 않으면 상속세의 85%가 공제된다. 영국은 명목 최고세율은 40%이지만 자녀가 기업을 승계하면 상장기업의 경우 50%, 비상장기업은 100% 공제를 해줘 상속세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프랑스는 최고세율이 45%이지만 기업을 상속받은 경우에는 50%가 면제된다.

한편 지난 연말 세법 개정시에도 대기업의 최대주주 주식 상속시 할증(20%)하는 제도는 폐지하지 못했다. 최대주주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으므로 할증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대기업에만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는지 모르겠다. OECD 대부분 국가에서 주식으로 상속할 때 할증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은 주식으로 상속하면 고용유지 차원에서 세금을 깎아주는데 우리만 할증하니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주식할증제도는 조속히 폐지해야 한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상속세 완화추세에 있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뉴질랜드 13개국에서 상속세가 사라졌다. 미국은 상속세가 있지만 우리보다 세율이 낮고(최고세율 40%), 2018년 500만불에서 1170만불(140억원)로 1인당 상속세 공제금액을 늘려 국민의 대부분이 상속세를 모르게 되었다. 게다가 1997년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물가가 오르는 만큼 상속증여세 공제도 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2000년에 상속세 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높이고 그 적용대상도 과세표준 ‘50억 원 초과’에서 ‘30억 원 초과’로 강화했는데, 이 기준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간 국민소득은 2.9배(2021년/2000년)로 늘어나고 물가도 2배 이상 뛰었다(짜장면, 설렁탕값 2배 이상). 그 결과 2018년 독일에서 1000만유로(약 130억원)를 상속받은 사람은 평균 5%(6억5000만원)를 세금으로 냈는데, 같은 해 한국에서 비슷한 규모(150억7956만원)를 상속받은 사람의 상속세 부담은 31.9%(48억543만원)였다<한경, 2020>. 상속증여세수도 2016년 5.4조원이었으나 2020년 10.4조원, 2021년 15조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율의 상속세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못한 것은 부자감세라는 비판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기업 승계 곤란, 국부유출 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일자리 문제를 겪을지 모른다. 상속세제의 존재이유와 근본적인 수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상속세를 중과하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불로소득이므로 세금을 많이 매겨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둘째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여 빈부 차를 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본의 자기 확장성 때문에 돈이 돈을 벌고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극단적인 경우 새로운 귀족계급이 생겨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 진보 측 인사들은 재벌이 그런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상속세 부담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상속세(相續稅) 부담을 완화하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첫째 복지비용 때문에 선진국들의 조세 부담률이 40%를 넘어서는 등 피상속인이 살아있는 동안 소득세, 법인세 등 세금을 많이 냈고, 과도한 상속세는 탈세와 부의 해외 유출만 초래해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경제와 재산의 주축이 기업이고, 기업은 주식의 형태로 소유되고 상속된다. 주식에 상속세를 과도하게 매기면 기업이 해체될 수도 있다. 그러면 물적 자산과 기술인력 등의 해외 유출이 될 수 있고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또한 상속세는 아버지와 아들이 개별 주체라는 입장에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아버지와 자녀들은 한 가족의 구성원이고 아버지의 상속재산이 가족공동체의 재산으로 볼 수도 있다. 가정은 가장이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다치고 지쳤을 때 쉬고 치유하는 진지(陣地)다. 직장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일도 가족끼리는 함께 논의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아내가 대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도의 위험에 몰렸을 때는 그 가족의 모든 인적 네트워크가 동원되어 돈을 꾸러 다닌다. 상속재산은 피상속인 혼자만의 업적이 아닌 것이다. 

  또 자식은 희망이다. 자식이 자기보다 더 잘 될 것이라 기대하며 아버지는 현실의 고통과 부조리를 견디고, 결단의 순간에 가장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집을 나선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고 그 자식이 커서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사회 안전판이자 가장 작은 단위의 조직이다. 국가는 사회 안정을 위해 이 가족제도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상속되었을 때는 제3자에게 상속되었을 때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한고, 포르투갈은 배우자에게는 10% 세율을, 자녀에게는 비과세한다. 미국도 그 배우자가 상속한 재산은 상속세를 전부 면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는 상속재산은 가족의 재산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가족 재산으로 보면 상속으로 인한 부의 이전은 없고 상속세 부과 근거도 사라진다. 

점점 심화되고 있는 빈부차와 사회갈등을 생각할 때 상속세를 폐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유재산제도가 무색할 정도로 재산의 반 이상을 정부가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 조만간에 상속세 부담완화 등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제도 개편을 기대해 본다./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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