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본청 현관 모습.(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원 본청 현관 모습.(사진=연합뉴스)

북한식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종하다 위헌심판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격 정당 '진보당'의 제주지역 지구당 총책과 그 관계자들이 지난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 예상된다. 특히, 이들은 北공작원과 접선해 강령규약을 하달 받았다는 점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국내 지하조직망에 대한 추가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원장 김규현)을 포함한 경찰청 등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진보당 제주지구당 전직 총책 2명과 전국농민회총연맹 전임 사무총장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이들 조직(보안명칭 'ㅎㄱㅎ')은 '단선연계·복선포치(單線連繫·複線布置)'라는 형태의 간첩망을 편성해 보안성을 유지해 왔다고 보안당국은 평가했다.

이에 <펜앤드마이크>는 이번 편에서는 간첩망 편성방식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간첩망에 관한 근거는, 그동안 공개되어 오지 않았던 북한의 <대남공작사>라는 자료(해석본)이다. 공작망(工作網), 통칭 간첩망(間諜網) 방식의 원리를 들여다봄으로써, 일명 '제주간첩단'이라는 조직이 왜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약칭 자통)'로 이어지게 되는지를 밝히고자 함이다.

그동안 간첩단 사건이 포착되면, 전혀 상관없는 업종 관계자들이 연루되거나 혹은 타지역 정치조직이 연루되면서 일각에서는 이를 '공안탄압'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번에도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에 <펜앤드마이크>는 이번 간첩단 사건에 대하여 ▲사상노선원리 ▲투쟁노선원리 ▲조직노선원리 등 3대 요소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편에서는 3대 요소 중 '조직노선원리(단선연계복선포치)'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기자는 최근 '대남공작사' 해석본 일부를 확인했다.2023.01.14(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최근 '대남공작사' 해석본 일부를 확인했다.2023.01.14(사진=조주형 기자)

#1. 제주간첩단, '단선연계 복선배치' 공작망 형태 포착···조직원리 뭐길래?

지금부터 밝히는 이야기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입수한 북한의 <대남공작사> 해석본에 수록된 내용임을 우선선 밝힌다. 북한 대남공작의 핵심은 '지하당 사업'으로, 3대 혁명 역량 중 하나인 남조선 혁명역량의 고양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정부전복'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도래했을 때 '북한식 혁명'을 배가시키기 위함이다. 북한식 혁명이 일어날때까지 지하당을 통해 수년간, 길게는 십수년간 매복활동을 벌인다는 뜻이다.

북한이 이런 지하당 공작을 벌인 이유는, 6.25전쟁 당시 남한 내 혁명역량이 총궐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무력통일이 실패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성(黨性)이 강력한 인물들(정예간부, 精銳幹部, 약칭 정간)에 의한 지하당을 조직하되 그 형태를 '단선연계'로 '복선조치'화된 지하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선이란, 1명의 공작원 아래에 포섭 인물 1과 그 아래 2차 포섭인물, 3차 포섭인물이 각각 위계를 갖고 배치되는 것을 뜻한다. 이때 포섭되는 1차 인물과 2차 인물, 3차 인물은 모두 각기 다른 업종·업계에 속한 인물이다. 이같은 단 1줄의 연결선을 여러개 배치하는 것을 '복선화'라고 한다. 단, 여러개의 단선을 복선으로 배치하되 각개의 단선은 인접 단선의 어떠한 인물의 지하당 포섭 여부를 알지 못한다. 보안기관에 의해 적발됐을 때 노출도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보안조치이다.

각 단선연계 선에서 1차, 2차, 3차 포섭인원은 최대 4차까지만 포섭이 허용되며, 5차 포섭부터는 조선노동당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적발된 제주·창원 간첩단 사건의 조직원리는 모조리 '단선연계 복선포치' 형태였다고 공안당국은 전했다.

단선연계 복선포치 형태를 가진 이번 제주간첩단 사건 혐의자들은, 진보당 제주지역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인물이 2명(A, B) 포함돼 있다. A와 B의 경우, 이미 당적을 가진 인물이지만 그중에서도 A는 이미 캄보디아에서 2017년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만큼 당성이 더욱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A는 1차 포섭원으로 볼수 있고, B는 2차 포섭원이다. 그에 이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직 사무총장 C가 3차 포섭원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단선연계 복선포치 형 지하당 조직 원리에서, 이같은 단선 연결선으로 구성하게 될 경우 각 포섭원 별 당성의 위계적 단계에 따라 배치된 포섭원들은 자기의 소속과 계통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동조자' 계층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 1차 포섭원이 지역의 본거지가 되어 각계 세력을 확대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주간첩단 외에도 창원지역에서 적발된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가 제주조직의 상부조직이라는 보안당국의 분석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 것. 北공작원-1차포섭원(A)-2차포섭원(B)-3포섭원(C) 형태가 드러난 이 조직이 하부조직일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2일 오후 국가정보원 제주지부 앞에서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가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조작 규탄 및 허위사실 유포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2(사진=연합뉴스)
12일 오후 국가정보원 제주지부 앞에서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가 '정권 위기 탈출용 공안 조작 규탄 및 허위사실 유포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2(사진=연합뉴스)

#2. 지역정가 노린 3차 포섭원 C 섞인 공작망 조직화 포착에 수사 확대 불가피

제주조직은 단선연계 복선포치화된 조직으로 알려졌지만, 상부에 창원조직이 있을 경우, 연결선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창원 조직 역시 北공작원에 의한 공작 포섭활동으로 1차 포섭원과 2차 포섭원으로 이어지는 구성인데, 그 하위 조직선이 제주조직이 되는 셈이다.

이때의 단선연계 복선포치 형태는 약간의 변화가 나타난다. 북한 공작원에 의해 포섭된 1차 포섭원에 이은 2차 포섭원, 그 뒤의 서열에 있는 3차 포섭원 C에 의해 그 하위 말단 포섭원들이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C는 C와 같은 업종, 업계, 계통에 있는 이들에 대해 '우회선전 동정자' 조성 목적으로 한정 포섭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A와 B가 아니라 C의 경우 정계에 침투할 수 있는 실력자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실제로, C는 제주지역 전농에서 20년이 넘도록 활약해왔고, 제주지역을 궤뚫고 있는 인물인 만큼 지역 정가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농 간부로 선출되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C는 '정계 침투 가능자'로서 적발시 조직와해 가능성을 안고 있는 A와 B와는 달리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으나, 다만 C의 위치에서는 3선 이상의 조직화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지하당 역량을 편성하여 '당 역량'을 보존축적하려는 목적은, '장기매복을 위한 군중공작'이라는 데에 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노동자들 속에 당이 뿌리를 박아야 한다"라는 기치 아래 '농민역량'을 강조한다. 지하당 구축의 주 포섭 대상 중 하나로 '농민'을 강조한 것인데, '농업협동조합, 농민회'를 비롯하여 '사회단체 간부', '청년 조직'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지하당 역량 편성을 위한 조직원칙으로, '남한의 기성단체'를 최우선 활용 조직으로 겨냥하고 있다. 운영 원리로는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라는 것으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펜앤드마이크>에 "일명 민주집중제란 맑스 레닌이 창안한 당 운영원칙으로 당에 의해 결정된 원칙에 철저히 복종한다는 방법인데, 공산당 특성상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복종의 원리를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무조건적 복종의 원리 만으로 간첩망이 운영되는 만큼, 北공작원에 의해 조종되는 A, 그리고 또다른 단선의 새로운 A를 통해 조직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北공작원을 만났다는 제1포섭원 A에 의해 B이하 단계의 모든 공작원들은 보안당국의 수사과정에서 北공작원과의 접선에 관한 추궁에 반박함으로써 최대한 조직보위(組織保衛)하게 된다. 세포조직에 대한 밀봉식 조직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종국에는 은밀성을 보장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는 최근 통일혁명당에 대한 간첩수사 보고서 내용이 담긴 30년 전 주요 문서집 사본 일부를 확인했다.2021.08.07(사진=조주형 기자)
기자는 최근 통일혁명당에 대한 간첩수사 보고서 내용이 담긴 30년 전 주요 문서집 사본 일부를 확인했다.2021.08.07(사진=조주형 기자)

#3. 통일혁명당 사건에서 포착된 조직원리, 50년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

이처럼 북한의 대남공작용 간첩망 운용 원리에 대한 실마리가 최초로 포착된 사건은, 바로 '통일혁명당 사건'이다. 성공회대 故 신영복 교수가 당시 중간책으로 있다가 중앙정보부 등에 의해 적발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0년간 복역후 출소했다.

<펜앤드마이크>는 지난 2021년 8월7일자 기사 <[탐사기획] 박지원 국정원 속 통혁당 신영복의 '스텔스 여론전 공작 사건' 간첩망 추적>를 통해 통일혁명당 수사보고 조직도를 밝힌 바 있다. 이때 포착된 북한의 공작망 편성 방식이 '단선연계 복선포치'였는데, 이 공작망 편성 방식은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적용돼 '제주조직단', '창원조직단'이라는 지하조직으로 계속 적용되고 있다.

지하조직이 위험한 조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결성 목적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과 국체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 조선노동당이라는 반(反)국가단체를 추종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존재목적 외에도 운용 원리 때문이기도 하다. 유동열 원장은 "지하조직은 공개조직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그에 따라 공개조직이 각종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하당 공작이 수년~수십년 까지도 계속된다는 본질적 특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북한은 통일혁명당에 대해 "남조선 각처에서 군중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나, 산만성을 극복하고 정세를 유리하게 이용하여 혁명투쟁을 전진시키지 못한 것은 지하당 지도부의 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남공작사>를 통해 질책한다.

지하당을 통해 '혁명의 주(主)기지화' 하도록 일종의 지침을 밝힌 것인데, 이때 "어느 나라의 혁명을 보더라도 로동계급과 농민이 혁명주력부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궁극적으로 남조선 계급·사상관점부터 검토할 것"을 주문한다. 이는 지하당 구축 이후 우리나라의 각계각층의 계급갈등 모순을 극대화하여 계급투쟁의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 처음으로 포착된 이번 제주지역 및 창원 지하조직 사건은 각 지역과 각계 업종 및 업계, 계통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계조직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이다. 보안당국 측은 "보다 자세한 것은 수사 진행 상황 등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에 A를 포섭한 北공작원은 그 소속이 북한 조선노동당 직속 대남공작 기관 중 하나인 '문화교류국'이다. 北 문화교류국은 공작원을 양성해 밀봉교육(密封敎育)하여 대한민국으로 우회침투시키는 조직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국무총리를 지냈던 김부겸 전 총리와 접촉했던 北 공작원 이선실 등이 속했다(관련기사 : [탐사기획] 文 회전인사 끝판왕 '김부겸' 과거 '北 중부지역당 사건' 왜 조명되나)./

조주형 기자 chamsae9988@pennmike.com

북한의 고위급 공작원 이선실의 국내 공식 호적 등본 자료(왼쪽)와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는 문헌 자료(오른쪽).(자료 제공=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사진업로드=조주형 기자)
북한의 고위급 공작원 이선실의 국내 공식 호적 등본 자료(왼쪽)와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는 문헌 자료(오른쪽).(자료 제공=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사진업로드=조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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